▲퓨리오사의 모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남성성으로 뒤덮인 세계가 얼마나 위험하고, 포악한지 묘사한다. 디멘투스와 임모탄은 부족한 자원을 두고 공생이 아닌 전쟁을 택한다. 서로 협정을 약속해도, 불신 탓에 싸움의 규모만 커져갈 뿐이다. 남성 캐릭터들이 모든 걸 정복하겠다는 욕구를 분출하며 싸우는 동안, 세상은 점점 피폐해지고 절망적으로 변해간다. 그들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조차 시위하고 분노하며 사회의 엔트로피는 폭주한다.
야만의 연쇄고리를 끊는 건 퓨리오사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디멘투스'에게 복수하던 찰나,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을 움직이는 건 허망함이 기다리는 분노가 아닌 사람들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결국 퓨리오사는 임모탄이 지배한 도시로 돌아가 갇혀있던 '자궁' 같은 여성들과 함께 도망친다. 그렇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막을 내리고, 2015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시작된다.
여성들을 해방한 퓨리오사, 정작 그를 해방한 건 남성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장하지 못한 남성들이 퓨리오사를 자극했다. 무자비한 학살자이면서 유아적인 디멘투스, 여성과 자원을 착취해 남성성을 입증하는 임모탄, 도움은 줘도 삶을 책임질 순 없었던 잭. 갇혀있던 퓨리오사는 남성성의 한계를 직면할 때마다 자신에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구원자로서의 정체성을 수용하게 된다.
영화 초반, 어린 퓨리오사는 남성 캐릭터들의 소유물이었다. 디멘투스의 딸이자 또 다른 곰 인형이었고, 임모탄의 자궁이자 장난감이었다. 그랬던 그가 남성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단 하나의 여성으로 돌아왔다.
복수극과 성장물, 그 어딘가에 놓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2018년, 미국 체조 대표팀의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가 130명 이상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피해자 카일 스티븐슨은 법정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처참한 세계를 박살 내고, 구원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이래도 <매드맥스>가 마초 영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