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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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먼로가 배우로서 자리잡는 길은 쉽지 않았다. 먼로는 당시 할리우드에 관행적으로 만연하던 여배우에 대한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 캐스팅 관리자가 배우에게 일자리나 기회를 대가로 성적 요구를 하는 권력형 성범죄)'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훗날 먼로는 자서전에서 "돈과 권력으로 자신을 매수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배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고백했지만, 당시로서는 여배우에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할리우드 업계에서 찍혀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먼로를 구해낸 것은, 조니 하이드라는 인물이었다. 할리우드의 거물 에이전트이자 신인발굴의 귀재로 꼽혔던 하이드는 먼로의 남다른 스타성을 간파하고 손을 내밀었다. 먼로는 하이드의 권유로 성형수술을 하면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갖추게 됐다. 또한 하이드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먼로가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아끼지 않았다. 먼로는 1950년 거장 존 휴스턴 감독의 <아스팔트 정글>에서 주인공의 정부로 처음 비중있는 역할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하이드는 31살 연하의 먼로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먼로는 그의 프로포즈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이드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먼로가 폭스사와 7년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주선해놓으며 끝까지 먼로를 위한 순애보를 다했다. 훗날에도 먼로는 하이드를 "인생의 은인, 내 삶의 구원자"라고 정의하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기를 정면 돌파한 먼로의 용기
먼로는 < Home town story >(1951), < Don't bother to knock >(1952) 등의 작품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관능미 넘치면서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캐릭터를 열연하여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라이징스타로 주목받게 된다. 26세의 먼로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헨리에타 어워드'를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특급신인으로 부상했다. 당시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먼로를 가리켜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여자"라고 칭하며 그녀의 매력을 극찬했다고 한다.
당시 할리우드는 배우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고 관리해주는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이 보편적이었다. 먼로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당시 남성들이 선호하는 섹시한 금발에 순종적인 모습으로 판타지를 자극하는 '빔보(Bimbo, 외모가 출중하지만 머리가 좋지 않은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 캐릭터의 전형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먼로는 무명 시절에 촬영한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지에서 촬영한 누드 사진이 뒤늦게 이슈가 되며 첫 위기를 맞이했다. 당초 소속사는 이미지 타격을 우려하여 먼로에게 합성된 가짜 사진이라고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먼로는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생활고를 솔직하게 해명하며 누드 스캔들에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먼로의 누드 사진은 오히려 대박을 터뜨리며 전화위복이 되었다. 대중들은 생활고와 어두운 과거를 솔직히 인정한 먼로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먼로의 누드가 담긴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먼로의 인기에 힘입어 무려 5만 부가 판매되는 초대박을 터뜨렸고 이는 먼로의 스타성과 인지도를 높이는 전환점이 됐다.
먼로가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라잡게 된 계기는 '트렌드 세터'로서의 독보적인 매력이었다. 1953년 범죄스릴러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마침내 첫 영화 주연을 맡은 먼로는 연기력 뿐만 아니라 패션이나 하이힐 워킹(먼로 워크, Monroe walk) 등을 통하여 이른바 자신만의 '마릴린 먼로 스타일'을 유행시키며 뜨거운 인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미국 뮤지컬 코미디의 고전으로 꼽히는 1953년작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당시 27세의 먼로가 입고 나온 강렬한 '핫핑크 드레스'는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당대 여성들의 최고 패션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먼로가 인터뷰에서 애용한다고 밝힌 사넬 향수와 파이퍼 하이직 샴페인 역시 '먼로 향수', '먼로 샴페인'으로 불릴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처럼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등극한 먼로를 가리켜 언론에서는 "역사상 영화계에 등장한 사람들 중에 마릴린 먼로만큼 여성들에게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는 없었다"고 할 만큼 그녀의 남다른 영향력을 설명했다.
의외로 먼로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었다. 먼로는 1954년 1월, 12세 연상의 야구스타였던 조 디마지오와 재혼하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우연히 그녀의 열혈팬이었던 크리스텐 베리 미군 장군을 만나 한국 위문 공연을 제안받았다. 먼로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한국을 방문하여 미군 부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먼로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얇은 드레스 하나만 입고 공연을 소화했고, 장병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훗날 먼로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두고 "처음으로 스타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회고하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백치미 빔보 이미지 벗어나 여배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