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
영화로운 형제
윤화와 윤화의 삶에 대한 메타포, 영화적 장치로 감독은 늙은 대왕 오징어와 낡아빠진 자전거를 사용한다. 조류에 맞설 힘이 없는 늙은 대왕 오징어 한 마리가 조선소로 밀려 내려온 날, 직원들은 안주 삼아 먹자며 신이 나지만 윤화만 홀로 썩은 표정이다. 남편 기일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술을 권하는 동료들을 뿌리치며, 남편 제사라고 쌀쌀맞게 대꾸해 버린 덕분에 떠들썩한 분위기는 돌연 숙연해졌다.
어쩌면 윤화는 파도를 헤치고 나아갈 힘이 없어서 살을 뜯어 먹히고 마는 늙은 대왕 오징어에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바다낚시 장면은 클라이맥스 그 자체였다.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윤화가 무력하게 주저앉아 오열하던 장면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말을 들은 후, 하루하루가 절박한데,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마저 도둑맞자 윤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친한 직장동료 태민(임정민 님)은 얼마 전에 새 차를 뽑았는데, 자신은 낡아빠진 자전거마저 도둑을 맞았으니 어처구니없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이었을 때부터 함께한 손때 묻은 낡은 자전거는 윤화의 삶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자신의 삶을 도둑맞은 기분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런데, 자전거를 훔쳐간 범인은 대체 누굴까?
"집이 내고, 땅이 내고, 용접이 낸데, 왜 내한테서 다 뺏아갈라 카는데?"
절규하듯 토해내는 윤화의 대사들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해고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늦은 밤, 홀로 회사 옥상을 찾아간 윤화의 눈 속에서 조선소 풍경과 함께, 용접공 윤화 자신의 삶도 같이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녀가 옥상에서 조선소 깃발을 하나 훔친 게 무슨 대수겠는가. 자신의 몸과 마음은 뒤로 한 채, 20년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왔을 고달팠던 삶이 조선소 깃발 하나 훈장삼겠다는데.
우리들의 형수
▲영화 <울산의 별> 스틸컷영화로운 형제
"형수, 언젠가는 또 좋은 일 안 있겠나."
윤화는 조선소에서 직급이나 직책이 아닌 "형수"로 통한다. 윤화의 남편을 아는 직원도, 윤화의 남편을 모르는 직원도 모두 윤화를 "형수"라 부른다. 그래서 그녀는 종종 "니는 내 남편도 모르면서 왜 형수라 부르는데?"라며 응수하지만, 그녀는 직원들에게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가여운 한 여인이자, 가족 같은 사람, 형수다.
영화 속에는 윤화와 조선소 직원들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생은 한 방이라며 빚내서 비트코인 했다가 돈을 날린 아들 세진(최우빈 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울산이라는 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딸 경희(장민영 님), 전근대적인 걸 싫어하면서도 어른으로도 남자로도 살아본 적 없다는 도련님 인혁(도정환 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체득한 남편의 작은아버지 한섭(임형태 님), 그리고 그의 아내 금순(변중희 님) 등.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인물들 간의 호흡이 간혹 삐걱대거나 급박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굳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 연출이 담백해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지고, 또 다시 별은 빛나고, 새로운 자전거가 또 다시 굴러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빛나는 윤화의 얼굴이어서 더욱 좋았다.
우리가 알든 알지 못했든, 눈치챘든 눈치 못 챘든,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안에는 자신의 삶을 소모하고 희생하며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도시의 광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모두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빛나는 별들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가여운 한 여인이자, 형수인 윤화처럼, 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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