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
(주)쇼박스
03.
영화의 이야기를 '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극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딸의 현재와 엄마의 과거로 이루어지는 대화와 정확히 반대로 딸의 과거와 엄마의 현재로 구성되는 대화, 그리고 엄마의 결심으로 인해 두 현재가 만나게 되는 마지막 대화다. 대화가 나열된 순서는 서로 알지 못했던 각자의 자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며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조금씩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딸의 현재와 엄마의 과거, 딸의 과거와 엄마의 현재는 중심 화자에 따라 달라질 뿐, 교환되어도 문제가 없다).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소재는 공통적으로 '외로움'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엄마 복자가 갖는 외로움은 현재와 과거의 존재적 대비로 인해 시작된다. 역시 단일한 방향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딸과 대화를 하거나 접촉할 수 없다는 설정은 생전에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과 교차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끌어낸다. 딸이 자신을 볼 수 없는 현재만큼이나 외롭던 과거의 자리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그의 바로 곁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나 둘 펼쳐지고 떠올려지는 엄마의 기억 속 자신의 모습은 외로움을 버티고 서 있는 인물이다.
한편 딸 진주의 외로움은 홀로 간직해 온 비밀과도 같은 감정이다. 어린 시절 작은 삼촌의 집에 맡겨져 엄마와 오래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시간과 재혼한 엄마를 만나러 갔던 때에 마주해야 했던 속상하고 슬픈 장면은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낼 수도 없게 했다. 오래 묵은 외로움이 미움으로 바뀌고, 그 미움은 엄마를 외로움 속에 방치하도록 만드는 기저가 된다. 어느 누구의 외로움이 먼저인지 알지 못한 채, 서글픈 악순환 속에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곧게 자라나 버린 것이다.
04.
"벌주는 거야 나한테.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그마저도 늦어서 차가운 냉동고에 이틀이나 더 있게 만들었어."
지금 진주의 시간이 안고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그녀의 오롯한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과거가 원인이라면 현재는 그 결과에 가깝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공백을, 그 부재의 자리를 이제와 자신의 온몸으로 채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딸은 엄마의 흔적을 이 시골집에서 어루만지고 또 들이마신다. 언젠가 꿈에서라도 한번 엄마를 마주하리라는 믿음을 안은 채로. 규칙을 위반하면서까지 딸과 직접 마주하고자 하는 복자의 행동은 그래서 안타깝다. 생전에 놓인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무책임과 외면 때문이 아닌 나름의 노력과 인내로 인한 것임을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영화는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기억 속에서 딸이 잊혀진다는 다소 가혹한 페널티를 선언한다. 정확히 언제가 또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는 딸을 만나러 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먼 훗날 딸이 생을 다하고 하늘로 올라오더라도 알아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과와 위로의 행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알게 만드는 대목이다. 감정적 이해와 전이의 영역이 규칙과 이치의 당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법이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주)쇼박스
05.
"나중에 내가 니 이자뿌도 날 차자 온내이."
영화의 중반부 즈음에서 진주는 마을 어르신들께 잔치 국수를 만들어 대접한다. 엄마 복자의 집을 팔지 않는 자신 때문에 마을에 골프장이 들어오지 못한다며 항의를 하던 때다. 이 작품을 다시 생각하면 꼭 그 장면이 떠오른다.
크게 필요한 내용물은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애가 쓰이고, 다소 평범하고 심심해 보이지만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충분히 가능한 음식이다. 영화 속 어르신들도 그녀가 엄마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국수를 먹고 조금 성나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 작품 <3일의 휴가>가 꼭 그렇다. 무해하고 온기로 가득 찬 3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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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