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북클럽> 스틸컷
영화사 진진
나이 듦을 막을 수 있다면 좋을까? 노화와 죽음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연륜. 어른다움. 나무의 나이테 같은 주름을 보면서 경험, 지식, 관계를 축적한다고 생각해 보니 달리 보였다. 나이 들어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북클럽>은 20대부터 40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북클럽 4인방'이 제3의 인생을 사는 이야기다. 이들은 각자 사별(다이앤, 다이안 키튼, 무직), 이혼(샤론, 캔디스 버겐, 연방 법원 판사), 비혼(비비안, 제인 폰다, 호텔 CEO), 결혼(캐롤, 메리 스틴버겐, 요리사)을 겪은 상태다.
성격도 다르고 닮은 구석 하나 없지만 정기적인 독서 토론으로 교양과 우정 마일리지가 쌓여있는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이번 책으로 선정되면서 변화를 맞는다. '이런 걸 어떻게 읽냐', '격 떨어진다', '남사스럽다'던 여사님은 책을 손에 쥔 순간 놓지 못해서 안달 난다.
▲영화 <북클럽> 스틸컷
영화사 진진
영화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60대 이상 여성들의 성(性)과 시니어 라이프를 유쾌하게 다룬다. 책 한 권으로 삶의 윤기를 되찾고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나이 들었다고 지레 포기하고, 주책이라고 겁먹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테니까 망설임은 금물이다.
쉬쉬하기보다 드러내놓고 건강하게 즐기는 관계, 자식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실천하는 할머니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실제로 네 배우의 전성기가 떠올라 뭉클해진다. 60세가 넘은 배우에게는 어머니, 할머니 역할밖에 들어오지 않는다던 김수미 배우의 한탄이 떠오른다.
대화가 시급한 부부의 엇갈린 로맨스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
(주) 안다미로
결혼은 제도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약속이다. 그래서 <내 아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사연이 더욱 애처롭다. 처음부터 사랑보다는 목적이 앞선 결혼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기에 엇갈리며 시작했다. 사랑 없이 시작했음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서 믿음은 불신이 되고 집착이 되어간다. 결혼을 유지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공허함은 커져만 간다.
오랜 바다 생활에 지친 선장 야코프(헤이스 나버르)는 잦은 복통의 원인을 '아내가 없어서'라고 단정해 버린다. 마침 프랑스에 정박한 김에 아내를 만들자고 선언한다. 카페에서 친구(세르지오 루비니)와 대화를 나누다 카페에 처음 들어오는 여성을 아내로 맞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대책 없는 제안인가 싶었지만 리지(레아 세이두)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얼마 동안 나름 순탄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신혼의 달달함은 없었다. 일 년 중 6개월은 바다에서 보내야 하는 야코프의 직업 때문에 어색한 동거 생활에 틈이 생겨버렸다. 바다 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없어 곤경에 처한 남편은 아내와 친구 데딘(루이 가렐)의 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주) 안다미로
참다못한 야코프는 사설탐정까지 붙여 둘 사이를 미행하지만 보기 드문 아내라며 어떠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다. 탐정은 더 깊게 파보겠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아내를 그저 믿어 보려고 노력한다.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취한 죄를 짊어진 사람처럼 묵묵히 고통을 감내한다.
영화는 야코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몽환적인 연출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해간다. 멀쩡한 상태로 관람했어도 마치 취중 필터링이 된 것처럼 아득한 영화다. 남편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리지의 속마음은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몽롱하다.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아내, 아내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도 묻지 않는 바보 남편. 올바르고 고지식하며 성실하기까지 한 100점짜리 남편이지만 아내는 그게 지겹기만 했던 걸까. 영화는 무엇 하나 정확히 묘사하지 않았기에 치명적 로맨스를 더욱 오래도록 간직할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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