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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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받고 출동한 무장 경찰이 노리스 홀에 도착했지만, 입구가 봉쇄된 상황이라 진입에 시간이 걸렸다. 범인을 수색하던 경찰들에게 누군가 "저 사람이 범인이다"라고 가리켰다. 학생이 가리킨 곳에는 조끼를 입은 아시아계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주변엔 빈 탄창과 권총이 놓여있었다. 범인 조승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조승희가 범행을 저지른 시간은 단 9분에 불과했고, 그동안 조승희가 쏜 총탄은 무려 174발이었다. 사망자는 총 32명, 부상자는 29명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라 불리며 미국과 온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 집요하고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살인마가 한국인 유학생으로 밝혀지면서 우리나라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조승희는 대체 누구이며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경찰은 학교에서 조승희의 행적을 수사하다가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놀랍게도 조승희는 3년이 넘는 학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친한 친구가 없었고, 피해자들도 대부분 조승희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승희는 미국 영주권자였고, 국적은 한국이었다. 혹시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따돌림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일까. 하지만 주변인들은 소통을 거부한 건 조승희 쪽이었고, 심지어 방을 함께 쓴 룸메이트와도 대화 없이 지냈다고 한다.
조승희는 8살이던 1992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던 조승희는 중학생이 되면서 언젠가부터 말을 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선택적 함구증'(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불안장애 증상)이란 진단을 받는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선택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질환이었다. 이로 인하여 조승희는 중·고등학교 내내 약물, 심리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큰 문제없이 학교를 졸업했고 성적도 우수해 명문대인 버지니아 공대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이틀 후 미국의 한 방송국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조승희가 보낸 것이었다. 우편물 안에는, 조승희가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과 DVD, 범행 선언문 등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조승희는 본인이 테러범임을 증명하듯 총과 망치 같은 무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고, 영상에서도 본인이 직접 범행동기를 설명했다.
우편물은 범행 당일, 오전 9시 1분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숙사에서 1차 범행 이후, 노리스 홀에서의 2차 범행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범행 지역인 버지니아 주에서는 총기를 한 달에 한 자루만 살 수 있다. 조승희는 사건 두 달 전에 미리 총기를 구입했고, 학교 근처 사격장에서 범행을 위한 연습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승희는 오래전부터 이 범죄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조승희는 영상에서 "누군가 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쓰레기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너의 무덤을 파는 느낌이 어떤지 알아?", "너희들은 오늘을 피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피를 흘리게 했어. 너희는 나를 궁지로 몰았고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결정은 너희가 한 거고, 이제 너희 손엔 절대로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을 거야"라고 말한다. 평소엔 말이 없었던 조승희가 영상에서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는 모습이다.
학교에서 조승희는 항상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수업에 들어왔으며, 선글라스를 벗으라는 교수의 지적에도 대꾸가 없었다고 한다. 조승희와 함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도 "동양인이 범인이라고 했을 때 그 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조승희는 글을 쓰는 데 관심이 많았고 소설을 출간하고 싶어 했지만, 출판사에 글을 몇 번 보냈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이야기이거나, 인간 혐오 정서로만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작문 수업에서 서로의 글을 돌려보던 학생들은 조승희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담당 교수조차도 조승희가 차라리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
반면에 학과장 루신다 로이 교수처럼 조승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람도 있었다. 로이 교수는 조승희와의 면담에서 "'외로워요. 친구가 전혀 없어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네가 정말 슬플 때 아무도 옆에 없으면 얼마나 힘드니'라고 말해줬다. 그가 달라지기를 바랐고 가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회상했다.
작가이기도 했던 로이 교수는 조승희와 개인 교습을 하며 내면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조승희도 로이 교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여는 듯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면담에 나오지 않고 다시 혼자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조승희가 쓴 마지막 글을 보면 "축하한다. 너는 내 삶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어. 너 때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내 형제자매 자식들 같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죽을 거야. 내 인생을 파괴해 버리고 나니 행복해? 이제 행복해?"라며 끝까지 원망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피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현재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한 장면SBS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정적인 트리거는 주위로부터의 거부"라고 분석하며 "조승희는 '나의 잘못이 아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그것이 자꾸 쌓이면서 세상을 향한 증오, 분노, 공격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23세의 조승희는 꿈 많던 서른두 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생존자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안겼다. 당시 총상을 4발이나 맞고도 기사회생한 피해 생존자들은 지금도 총기규제 캠페인이나 폭력예방재단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안타깝게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 역시, 총기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큰 일을 겪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또 어떻게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프리실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심을 말하고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어떤 이유로든 괴롭게 되니까.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앞으로 생길 비극과 고통을 방지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사람들 마음속에 악은 왜 자라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총기 사고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최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 범죄', '묻지마 범죄'들이 속출하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든 끔찍한 범죄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한다. 그것은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미래의 또다른 피해자들이 같은 비극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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