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부천영화제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

27회 부천영화제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 ⓒ 부천영화제 제공

 
판타스틱 영화는 대중의 상상을 뛰어넘는 특징이 있다.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영화 속에서 구현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한없이 따뜻하고 온화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극도로 잔인하거나 엄청난 공포를 유발할 때도 있다. 거친 전개 속에 이뤄지는 반전이나 현실에 대한 뼈있는 풍자는 깊은 생각을 남기기도 한다.
 
매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천영화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색깔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놨다는 점 때문이다. 상상 이상의 영화를 통해 복잡한 세상을 탈출하거나, 또는 더 힘든 세상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장르 영화를 즐겨보는 마니아들에게 결코 놓칠 수 없는 판타스틱 장마당이다.
 
27회를 맞는 부천영화제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상영작을 공개했다. 모두 51개국 262편(장편 121편, 단편 110편, XR 31편)을 상영하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흥미로운 장르 영화들을 잔뜩 모아놨다. 미국 영화로 막을 열고 일본 영화로 막을 내리는 올해 부천영화제는 부천시 승격 50주년(7월 1일)을 맞아 축하 행사에 발맞추기 위해 개최 시기를 2주 정도 당겨 6월 29일 개막한다.
 
개막작인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보'의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유전> <미드소마>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호러 마스터,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신작으로.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엄마에게 순종적인 아들 '보'는 호아킨 피닉스까지 열연했다. 감독 스스로 '10년 동안 구상한, 나의 개성과 유머가 고스란히 담긴 가장 나다운 작품'이라 밝힌 것처럼 충격적인 비주얼과 독특한 감성이 균형을 이룬 가장 독창적이고도 환상적인 작품이다. 상영시간이 179분으로 역대 가장 긴 개막작을 예약했다.
 
폐막작 <모두의 노래>는 J-호러의 대명사 시미즈 타카시의 신작이다. 월드프리미어로 부천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특색이 있다. 한 소녀의 허밍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저주에 걸리는 아이돌 멤버들과 원인을 추적하는 탐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멀거리는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시미즈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라고 부천영화제 측은 밝혔다.
 
부천에서 알아본 프로젝트, 완성돼 금의환향
 
 27회 부천영화제 부천초이스 상영작 <호랑이 소녀>

27회 부천영화제 부천초이스 상영작 <호랑이 소녀> ⓒ 부천영화제 제공

 
부천영화제를 대표하는 국제경쟁 '부천초이스 : 장편'은 도전적이고 신선한 장르영화의 새로운 시도들을 모았다. 주목할 작품은 아만다 넬 유 감독의 <호랑이 소녀>다. 2019년 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장르 영화 프로젝트 발굴 프로그램인 '잇 프로젝트' 수상 이후 팬데믹을 거쳐 완성됐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선정돼, 호평과 함께 대상을 수상했다. 부천영화제가 일찍부터 영화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기획단계에서 도움을 줬기에 일종의 금의환향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 오에 타카마사 감독은 <고래의 뼈>를 통해 디지털 세계의 잔상에 불과한 존재를 추앙하고 목숨까지 내던질 정도로 빠져드는 대중심리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펼쳐 보인다.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코리아판타스틱에서는 한국 장르 영화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서미애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명미 감독의 <그녀의 취미생활>, '검도'를 소재로 박진감 넘치는 촬영과 내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만분의 일초>, '모성애'라는 사회적 관습에 갇힌 가족들의 깊은 상처를 다룬 <독친>, 탄광촌에 들어선 카지노 주변 사람들을 통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위험사회>, 가상의 역사 혹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시간에서 마주하는 현재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끝까지 밀고가는 < 2035 >와 <영생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거장의 능란함과 깊이를 보여주는 신작들을 소개하는 매드 맥스는 올해 6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피 아비안토 감독의 <스리 아시>는 수퍼히어로로 각성하는 격투기 소녀의 이야기다. 인도네시아 장르영화의 아버지 조코 안와르 감독이 총괄하는 수퍼히어로 시리즈의 신작이다.
 
파티 아킨의 신작 <라인골드>는 독일 래퍼이자 사업가 그리고 전과자이기도 한 사타르(Xatar)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영화로 에너제틱한 연출, 그리고 이주와 유럽 사회라는 감독의 일관된 관심사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27회 부천영화제 상영작 하드고어 법정스릴러 <스파링 파트너>

27회 부천영화제 상영작 하드고어 법정스릴러 <스파링 파트너> ⓒ 부천영화제 제공

 
'아드레날린 레이드'는 정통 마니아들을 위한 잔칫상으로 오싹한 소름이 돋고 심장의 피가 솟구치는 정통 호러, 하드코어, 액션 장르의 최신작을 모아 놨다.
 
일본 야마구치 유다이 감독의 <원 퍼센터>는 리얼 맨몸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액션영화고, <아파트 N동>과 <모두의 행복을 위해>는 집단적 믿음의 폭력적 모습을 잘 그려낸 포크 호러다. <스파링 파트너>는 하드고어 법정스릴러고, 나카지마 유토, 나오, 나가야마 겐토 주연의 <#맨홀>과 소이 청 감독의 <운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전 상영 매진을 기록해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다. 케네스 다카탄 감독의 <숲의 요정>은 2019년 부천 잇 프로젝트 아시아의 발견상 수상작으로 선댄스 미드나이트 섹션에 초대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20년 전 최민식 배우와 50년 전 이소룡
 
반짝이는 상상력과 스타일을 녹여낸 SF 및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소개하는 메탈 누아르에는 사회성 있는 소재들의 영화들이 여럿이다. 싱가포르 감독 안소니 첸의 <드리프트>는 참혹한 과거를 안고 유럽으로 돌아온 아프리카 난민 여성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작품이다. <누구도 그녀를 알지 못하다>는 성착취가 범람하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난 한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사이의 힘 관계가 예기치 못한 전개와 반전을 맞닥뜨리는 젠더 역학과 성 심리 등 민감한 이슈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다.
 
 <용쟁호투> 배우 이소룡

<용쟁호투> 배우 이소룡 ⓒ 부천영화제 제공


수위 높은 영화들이 많지만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영화도 준비됐다. <리놀룸>은 중년의 위기에 처한 전 어린이 TV 쇼호스트가 우주 비행사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음부터 우주선을 만들어 가는 경쾌한 공상과학 가족 영화고, <아미코>는 조금은 엉뚱한 소녀 아미코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려냈다. 중국 고전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결합시킨 중국 애니메이션 <신신방: 양전> 등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특별전으로 준비한 '최민식을 보았다'에는 1990년대~2000년대 작품이 상영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쉬리(1999), 해피엔드(1999) 파이란(2001), 올드보이(2003) 등 20~30년 전 작품들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
 
부천시 50주년 특별전에는 50년 전인 1973년 7월 20일 유명을 달리한 브루스 리(이소룡)가 할리우드 제작진과 합작한 마지막 완성작 <용쟁호투>가 상영된다. 전설의 액션 배우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전망이다.
 
 7일 오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부천영화제 기자회견

7일 오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부천영화제 기자회견 ⓒ 성하훈

 
신철 집행위원장은 스트리밍 서비스와 AI 등을 예로 들며 "만화의 웹툰 시리즈 등을 더해 영화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올해 슬로건으로 정한 '영화+(플러스)'를 설명했다. 이어 "영화계에 큰 위기가 왔지만, 이건 곧 장벽이 무너지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그런 기회를 잘 살려서 더욱 가치 있는 영화제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부천영화제는 29일(목) 개막해 7월 9일(일)까지 11일간 진행된다. 영화 상영 외에 이벤트 프로그램도 늘려 관객들의 즐길 거리도 많이 준비했다.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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