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tvN 판타지 사극 <구미호뎐 1938>에는 두 개의 대립 구도가 나타난다. 한국과 일본 두 민족뿐 아니라 두 민족의 신들도 드라마 속에서 함께 부딪힌다. 일본 요괴들이 인간으로 변신해 한국인과 한국 신들을 괴롭히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실제 역사에서도 일어났다. 종교를 앞세워 아시아·아프리카를 침략하는 서양열강의 방식이 일본의 한국 침략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래서 일제 침략은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보면 일본 신들의 한국 침략이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궐기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 tvN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 tvN

 
1919년 3·1운동 당시의 민족대표 33인은 각각의 종교 교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기독교에서 이승훈을 비롯해 16명, 천도교에서 손병희를 비롯해 15명, 불교에서 한용훈을 포함한 2명이 배출됐다. 이들의 궐기는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모시는 신들의 궐기이기도 했다.
 
3·1운동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대중이 참여한 항일운동이었다. 한국 민중의 자발적 호응도 커다란 역할을 했지만, 종교인들이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운동이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종교인들의 주도로 일어나났다는 것은 한국의 신들도 일제 침략을 원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제 침략이 한국인들에게는 해로울지라도 한국 종교들에는 그렇지 않았다면, 일제에 대한 한국 종교인들의 태도는 어느 정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종교인들이 민족대표 33인을 형성하고 앞장서서 항거했다는 것은 일본의 침략이 한국 종교의 이해관계와도 상충됐음을 의미한다.
 
종교인들의 저항이 그처럼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일본의 압박도 강도 높게 전개됐다.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을 대하듯 한국 종교인들을 견제했다. 그러면서 자국 국교인 국가신도를 한국에 이식하고자 했다.
 
일제는 모든 신사를 황실신도하에 일원화하는 국가신도 체계를 수립했다. 국가신도의 정점에는 일왕(천황)이 있었다. 그래서 국가신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작업은 일왕과 그 조상신을 한국의 신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일제 동화정책인 내선일체는 두 민족의 신들까지 병합하는 정책이었다.
 
2000년에 <한국 종교> 제24집에 수록된 류성민 한신대 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의 한국 종교와 민족주의'는 "국가신도를 통한 한국의 일본화라는 목표를 위해 일제가 우선적으로 택한 정책은 한국의 종교들을 정치적 통제하에 놓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었고, 각종 법령을 제정·공포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시행되었다"라고 한 뒤 일제가 구사한 맞춤형 전략을 이렇게 소개한다.
 
"한국의 전통적 종교였던 유교와 불교는 각기 적용된 '경학원규정'과 '사찰령'에 의해 일제에 장악되었고, 외래 종교인 개신교와 천주교는 사립학교와 관련된 법령들과 '포교규칙'에 의해 총독부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민족종교들은 종교로 공인되지도 못하고 식민지에 적용되는 보다 강력한 일반 법령들로 다스려졌다."
 
인상적인 것은 민족종교에 대한 대책이다. 민족종교는 그 자체가 한국 민족주의와 연관됐다. 그래서 일제는 민족종교를 아예 종교의 범주에서 제외했다. 종교단체가 향유하는 일반적 권리를 차단할 목적에서였다. 불교·유교나 개신교·천주교를 제도권 내로 수용하려 한 것과 대비되는 접근법이다.
 
위 논문은 "대종교의 경우, 포교규칙에 따라 종교단체로 등록하려 하였으나 종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런 민족종교는 '교육부'가 아닌 '경찰청' 관할하에 들어갔다고 기술한다.
 
"결국 민족종교들은 총독부의 학무국 종무과로부터 관할되던 신도·불교·기독교와는 달리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보안법과 '집회취체에 관한 건' 등의 법령에 의해 더 강한 탄압을 받았다"라고 위 논문은 서술한다.
 
민족종교는 말살하고 여타 종교는 순치시키는 방법으로 일본이 추구한 것은 한국인들을 일본 국교의 신자로 강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대표적 정책이 유명한 신사 참배다.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tvN <구미호뎐1938> 한 장면. ⓒ tvN

 
독립기념관 자료과장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역사학자 김승태(생명평화교회 목사)가 2019년 3월에 <내일을 여는 역사>에 기고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부일협력의 거두 김길창 목사'는 일제가 얼마나 강도 높게 신사 참배를 강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도발한 이후에 일제는 전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황민화정책을 강화하였고 신사 참배를 독려하였다"라고 한 뒤 "총독부 경무국은 1938년 2월 이른바 '기독교에 대한 지도 대책'이라는 것을 수립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학교와 학생들에게뿐만 아니라 교회와 일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다"라고 설명한다.
 
종교단체를 상대로 일반 행정인력이 아닌 경찰력을 동원했다. 이런 방식으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했으니, 당시의 종교인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논문은 1938년 9월 30일 평남경찰부가 '신사참배 문제 해결 공로 경찰관'에게 표창을 수여한 사실을 설명한다. 이 표창을 받은 일제 경찰이 무려 89명이나 됐다. 신사참배 강요에 참여한 경찰관 전원이 표창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일본이 한국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공권력을 얼마나 많이 동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가 위 논문의 주인공인 주기철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를 대하는 방식은 독립투사를 대하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사상범 혐의자들을 미리 잡아 가두는 예비검속 제도가 이런 종교인들을 상대로도 구사됐다.
 
위 논문은 신사참배 거부로 탄압을 받은 주기철 목사가 1938년 8월에 다시 붙들린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해 9월 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앞둔 예비검속의 성격이 강하였다"라고 설명한다. 교단 회의 때 신사 참배를 반대할 만한 인물들을 미리 잡아 가뒀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 종교 내부의 문제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한국 종교인들의 희생
 
한국 역사에서 인상적인 것은 국난이 벌어질 때마다 종교인들이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사명대사와 서산대사를 비롯한 승병들이 맹활약한 임진왜란 때뿐만이 아니었다. 외국 군대가 침략할 때마다 무기를 들고 일어나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은 한국의 종교인들이었다.
 
1123년에 송나라(북송) 사신단의 일원이 되어 고려를 방문한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그런 풍토가 소개돼 있다. 이 책은 고구려 조의선인 및 신라 화랑의 후예인 이른바 재가화상(재가승)들이 "변경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단결해서 나아가는데, 말 타는 일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아주 용감하다"고 소개했다.
 
유목국가가 아닌 농경국가에서, 그것도 종교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승마가 서툰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주 용감'했다는 점이다. '용감한 종교인'이 '용감한 군인'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서긍은 "이전에 거란이 고려에 패배한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강감찬 장군이 거란족 요나라에 맞서 싸우던 시기에도 고려 종교인들이 무기를 들고 전투 현장으로 몰려나왔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종교인들의 모습은 외국 군대가 진저리를 내며 말머리를 돌리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종교인들이 열심히 싸운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신과 종교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외국의 정치적 지배는 종교적 지배로도 이어지기 쉽다. 이질적인 신앙 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올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일제강점기 역사는 한국 종교인들이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악착 같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신사참배 일제 식민지배 주기철 일제강점기 종교정책 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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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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