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들이 모두 전멸했다. 이제 살아남은 팀중 누가 정상에 오르던 U-20 월드컵 최초의 우승팀이 새롭게 탄생한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은 김은중호의 어깨에 달렸다.
 
김은중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20세 이하(U-20)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이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아르헨티나 U-20 월드컵에서 2회연속 4강에 도전한다. 한국은 6월 5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8강전에서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경기를 치른다.
 
이번 대회는 절대강자가 없는 이변의 연속이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강팀들의 이른 몰락과 함께 '언더독'들의 깜짝 돌풍이 이어지며, 전문가들의 뻔한 예측을 뛰어넘는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같은 F조에 속했던 프랑스(1회 우승)가 1승 2패, 조 3위로 와일드카드도 따내지 못하고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 이변의 시작이었다. 이어 토너먼트에서는 개최국이자 최다우승팀 아르헨티나(6회 우승)가 나이지리아에 0-2로 덜미를 잡혔고, 잉글랜드(1회 우승)은 이탈리아에 1-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변은 8강까지 이어지며 브라질(5회 우승)이 놀랍게도 U-20월드컵 첫 출전국인 이스라엘에게 연장접전 끝에 2-3으로 충격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브라질의 탈락을 끝으로, 이로서 이번 대회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국가들은 모두 사라졌다. 남미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남미국가들의 초강세가 예상되었지만, 역대 우승국 중 1, 2위팀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모두 언더독들에게 덜미를 잡히며 조기탈락할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난 대회 우승팀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가나 등 아예 이번 대회 본선진출 조차 실패한 못승국들도 다수였다. 변수가 많은 연령대별 대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2019년 폴란드 대회 이상의 이변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졌다. 당시 4강팀(우크라이나, 한국, 에콰도르, 이탈리아) 모두 이전까지 우승경험이 없는 국가들이었다. 우승팀 우크라이나-준우승팀 한국-3위팀 에콰도르는 모두 자국 역사상 U-20월드컵 역사상 최고 성적을 경신한 바 있다.
 
이번 대회 4강전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가 선착한 가운데, 5일 새벽에 열리는 한국VS 나이지리아, 미국 VS 우루과이전의 승자로 압축됐다. 이중 한국, 나이지리아, 우루과이는 결승전까지는 올라본 경험이 있으며 미국은 4위, 이탈리아는 3위가 최고성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첫 출전에 8강신화를 작성했다. 살아남은 팀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든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는 셈이다.
 
생존팀중 U-20월드컵 통산 성적에서 가장 앞선 팀은 우루과이다. 통산 16회 출전에 누적 승점 123점으로 브라질-아르헨티나-스페인에 이어 역대 4위에 올라있다. 비우승국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성적이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남미팀이라는 것도 사실상의 홈어드밴티지까지 기대하게 하는 요소다.
 
현재 기세가 가장 좋은 팀은 단연 이탈리아다. 성인축구 강국인 이탈리아는 그동안 U-20월드컵에서는 통산 성적이 19위(8회 출전, 승점 47점)로 한국(12위, 16회 출전 승점 71점)보다도 뒤질 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3회 연속 4강에 진출할 만큼 무서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한국 대회 3위로 자국 U-20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2019년 폴란드 대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브라질에 이어 D조 2위를 차지하며 16강전에서 잉글랜드, 8강에서 콜롬비아를 격침시키며 4강에 올랐다.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꺾고 준결승에 오른다면 만나게 될 다음 상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역대급 돌풍도 인상적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본의 아니게 이번 대회 판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팀이기도 하다. 당초 대회 개최지는 인도네시아였으나 이슬람 단체가 이스라엘 대표팀의 입국을 정치적인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FIFA는 인도네시아의 개최권을 박탈하고 아르헨티나로 변경하는 강수를 뒀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FIFA 랭킹은 78위에 그치고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이미 지난해 열린 UEFA U-19 선수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며 본선 티켓을 따낼 만큼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출전하게 된 U-20 월드컵 본선에서도 매경기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 다.
 
이스라엘은 조별리그 일본과 마지막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 1명이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동점골에 이어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로 기어이 16강 티켓을 따냈다. 우즈베키스탄과 16강전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또 한번의 극장골을 넣으며 1-0으로 이겼다. 심지어 8강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브라질에 연장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하며 첫 출전에 4강신화까지 이뤄냈다. 이스라엘은 4강에서 미국 VS 우루과이전의 승자와 격돌하는데 이제 '첫 출전국의 결승진출과 우승'이라는 만화같은 스토리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대륙별로 유럽 2팀,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남미가 사이좋게 각각 1팀씩 살아남았다. U-20 월드컵 역대 우승은 남미가 11회, 유럽이 10회 우승을 차지하며 성인월드컵과 마찬가지로 강세를 이어갔다. 다만 최근에는 4회 대회 연속으로 유럽팀(프랑스-세르비아-잉글랜드-우크라이나)들이 우승을 이어가고 있다.

남미와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우승팀을 배출한 것은 2009년 아프리카의 가나가 우승한 것이 유일하다. 북중미와 아시아는 아직 우승팀이 나오지 못했다. 1981년 카타르, 1999년 일본, 2019년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시아의 역대 최고성적이다.

이번 대회 아시아 최후의 생존자는 김은중호다. 한국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를 1승 2무, 2위로 통과한 데 이어 16강에서 에콰도르를 3-2로 제압하고 사상 첫 2회 연속 U-20 월드컵 8강진출이라는 역사를 수립했다.
 
8강 상대인 나이지리아와는 U-20 역대전적 2승 2패로 팽팽한 호각세다. U-20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에서만 두 차례 만나 1승 1패를 기록했다. 첫 대결인 2005년 네덜란드 대회에서는 당시 준우승팀인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이 2-1로 역전승하는 이변을 연출한 바 있다. 2013년 터키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3차전에서 만나 0-1로 패했다. 가장 최근 대결은 7년 전인 2016년 수원 컨티넨칼컵에서 한국이 3-0으로 승리한 바 있다. U-20 대회 토너먼트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의 강호이자 연령대별 대회에서 더 강세를 보이는 팀이다. 16강전에서 월드컵 최다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킨 데서 보듯 아프리카 특유의 기세를 타면 어떤 팀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했을 때 성인팀간 상대전적에서는 3승 2무, U-23 대표팀이 4전 전승으로 좋은 기억이 더 많다. 한국은 U-20 대회에서 아프리카팀을 상대로 5승 2무 3패로 유럽팀(3승 8무 13패)이나 남미팀(6승 1무 9패)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개최국이자 우승후보로 꼽힌 아르헨티나보다는 나이지리아를 만난 것이 차라리 상대하기 수월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 현재까지 생존팀 중에서도 여전히 언더독으로 분류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나 나이지리아의 이변에서 보듯, 이제 U-20 월드컵에서 기존의 랭킹이나 과거의 경험은 의미가 없어졌다. 슈퍼스타 하나 없이도 원팀으로 당당히 여기까지 올라온 김은중호의 선전 역시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이제 4강을 넘어 내친김에 우승 가능성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팀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김은중호가 과연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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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월드컵일정 나이지리아 이스라엘 김은중호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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