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 포스터.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교육계에서 불문율처럼 사용된 유명한 문구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줘라'라는 <탈무드>의 말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아이가 정말 물고기를 먹고 싶은지 또 물고기를 잡고 싶은지다. 물고기를 먹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들, 아이가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물고기야 당연히 좋은 것이니까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으면 무조건 좋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고기가 무조건 좋다는 건 부모의 생각일 뿐, 아이는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물고기를 원치 않는 아이에게 알려주는 낚시법들은 그저 노동이고 부담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고치고 싶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고 싶다면, 물고기를 잡아서 주지도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말자. 그저 아이가 스스로 물고기를 잡고 싶게 하자.'
 
우선 아이에게 아주 맛있는 생선요리를 먹게 해 준다. 맛있는 생선요리를 먹어본 아이가 배가 고파지면 물고기를 잡고 싶어질 것이다. 다양한 생선요리를 맛본 아이라면 아무 물고기나 잡지 않을 것이다. 입맛에 딱 맞는 맛있는 물고기를 찾을 것이다. 맛있는 물고기가 물가에 없어 배를 타고 나가야만 잡을 수 있다고 해도, 아이는 물고기를 잡으러 갈 것이다. 낚시법도 필요하다면 터득할 것이다. 그렇게 터득한 물고기 잡는 법과 물고기의 종류들은 절대로 잊히지 않고 마음속 깊이 남아있을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부모가 기억해야 할 아이 '공부'의 원리다. 공부는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울 때처럼 말로 설명해주고 시범을 보여주거나 뒤에서 잡아줄 수도 있지만, 결국 아이 혼자 스스로 페달을 굴리고 균형이 잡히는 느낌을 느껴봐야만 자전거 타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공부하면 좋으니 공부하라고 아이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다.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공부하고 싶게 하고 나아가 직접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동기'다. 아이의 학년이 낮을수록,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시키면 잠시 노력해 성과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건 정말 어렵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공부의 내용이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져 아이는 결국 혼자 해야만 하는 영역과 마주친다. 동기부여가 되어있지 않은 아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스스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원래 힘들고 어렵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 속에선 새로운 뉴런 간의 연결이 생겨나고 확장된다. 뇌가 발달하는 과정인 것이다. 마치 번데기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에너지가 쓰이고 부담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아는 것에는 새로운 자극을 느끼지 못하기에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반복해 연습하고 복습하는 것들이 쉽게 지루해지는 이유다. 그러므로 새로운 걸 배우든 이미 아는 걸 복습하든 공부는 원래 힘든 게 맞다.
 
그럼에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가 있다. 물론 동기가 우선이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동기는 한 번 만들어졌다고 마냥 지속되진 않는다. 배터리처럼 소모되는 것이어서 주기적으로 다시 채워줘야만 한다. 배터리를 오래 사용하려면, 충전을 자주 하든 배터리의 용량을 높이든 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는 용량이 크고 또 어느 정도 소모되었을 때 스스로 충전이 되기도 하는 최신형 배터리 같은 동기를 가지고 있다. 동기를 갖는 중요한 원인은 '목표'의 유무에 있다. 동기는 목표를 보며 자라나고 또 오랫동안 유지해 주는 공급장치와 같다.

충분한 동기와 명확한 목표에 불구하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처스

 
우리의 뇌는 스스로 선택한 어려운 도전을 할 때 도파민을 분비해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돕는다. 뇌를 각성시키고 주의력을 높여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가에서 낚시를 하면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잡고 싶은 물고기가 바다 깊이 산다면 아이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목표가 분명한 아이는 힘도 들고 시간도 더 많이 들겠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나옥분 할머니도 그와 같다. 나옥분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노력이 대단한데, 그녀의 집안 벽과 가구들에는 영어단어와 회화를 적어둔 종이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매일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는 건 물론 일하면서도 영어를 중얼거린다. 거실 한편에는 언제든 공부할 수 있도록 책과 노트가 펼쳐져 있다. 젊은이보다 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어서다.

나옥분 할머니에겐 꿈이 있다.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일을 위해선 영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영어를 배우고 공부해야만 한다. 명확한 꿈과 동기가 확실히 부여된 상태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노력할 수 있는 한에서 실력도 있다. 웬만한 단어나 기본 회화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원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기도 충분히 부여되었고 목표도 명확히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 걸까.
 
동기가 빠르게 소모되는 이유
 
확실한 동기가 부여된 상태라 해도 공부는 어려울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가게 하려면 새로운 동기를 계속 부여해야 한다. 동기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요소라서 다양한 이유로 소모된다.
 
첫 번째로 동기를 무력화시킬 만큼 공부가 어렵고 힘든 경우에 그렇다. 아이가 소화할 수 없는 분량이나 '난이도'로 공부하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학년에 맞는 교과과정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말이다. 동기가 부여되면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생기긴 하지만, 힘의 정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아이가 좌절을 느끼지 않도록 난이도를 조절해줘야 한다.
 
나옥분 할머니의 경우, 회화가 필요해서 젊은이들이 다니는 비싼 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너무 빠르고 어렵고 배려 없게 진행된 수업은 할머니에게 맞지 않았다. 강사에게 조금만 천천히 말해 달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한국어 뜻조차 요즘 말로 진행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문제는 구청직원 박민재와 영어를 공부하면서 해결된다. 그는 할머니의 수준에 맞는 난이도로 수업을 진행한다. 옛날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노래에 맞춰 회화를 연습하게 한다. 수준에 맞는 난이도로 공부하자, 할머니는 영어 회화에 재미를 붙인다.
 
공부를 하게끔 하기 위해선 일단 공부가 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끔 해야 한다. 그 기분은 시상하부에서 생기는데 공부가 재밌는지 아닌지를 편도체가 판별한 다음의 일이다. 그러니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공부라는 행위를 하게 되기까진 공부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동기가 빠르게 소모되는 두 번째 이유는 좌절의 경험이 축적된 실패의 기억 때문이다. 성공보다 실패의 기억이 더 많다면 다시 열심히 할 의욕이 생기기 힘들다. 이번 시험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아이는 열심히 했는데도 실패한 좌절의 경험을 갖고 싶지 않기 때문에 노력하고 싶은 동기를 갖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좌절의 경험이 실패의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좌절의 크기를 줄여줘야 한다. 이미 좌절의 경험을 했다면 대화를 통해 실패의 기억이 아닌 도전과 성공의 동력으로 바꿔줘야 한다.
 
나옥분 할머니는 영어 회화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듣기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도, 말만 하려고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미국으로 전화를 해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끊어 버리기를 수차례, 회화 학원에서도 기회를 잘 주지 않고 이상하게 보는 강사와 학생들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다. 박민재는 이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하는 인사부터 시작해, 할머니에게 성공의 경험을 들려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점차 커졌고 후에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자아실현의 욕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처스

 
노력 끝에 나옥분 할머니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영어로 증언한다. 이 증언으로 국제 사회 최초로 공식 채택된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할머니의 꿈이자 목표를 이룬 것이다. 이후, 나옥분 할머니는 전 세계를 다니며 일본 위안부 문제를 알렸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라는 목표는 아이를 공부하게 한다. 그런데 메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목표는 매우 고차원적인 것이다. 메슬로우가 제시한 5단계의 욕구 중,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에 해당한다. 그보다 아래에는 생리의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가 있다. 이 욕구 피라미드에서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
 
아이가 분명하며 자아실현을 위한 꿈을 꾸길 원하면, 아이에게 존중과 애정, 소속감, 안정 등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아이의 동기에 부모의 애정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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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우는 방법과 잘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선생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수업 컨설팅 및 학습 컨설팅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학습 상담과 학습 프로그램 운영, 교육 콘텐츠 기획과 개발 그리고 연구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습니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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