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여겨진다. 서울 대치동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반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대학 입시철이 되면 의대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런데 왜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걸까. 

지난 23일 MBC < PD수첩 >에서 '의대 블랙홀' 편을 방송했다. 대치동 의대반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으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의대 광풍과 의대 정원 문제를 짚었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의대 블랙홀' 편을 연출한 황순규 PD를 지난 25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MBC <PD수첩>의 한 장면

MBC 의 한 장면 ⓒ NBC

 
다음은 황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방송 다음 날(24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9차 의료현안 협의체를 열고 의대 정원 관련 회의를 했습니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줄였던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대가 우선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송으로 현명한 결정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의대 입시 실체와 의료 현장의 실태를 심층 취재하셨잖아요.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인구 절벽 1부-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편을 방송했잖아요. 사실 이번엔 '인구절벽 2부'를 기획하고 취재 중이었어요. '인구절벽 1부'가 결혼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면 '인구절벽 2부'는 결혼해서 아이낳고 육아하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아이 키우는데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조사하던 중 요즘 사교육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것이 바로 '의대 쏠림' 현상이었죠. 물론 '의대 선호'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열풍을 넘어 광풍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에 보내기 위한 '초등 의대반' 현장은 심각해 보였어요. 그래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초등 의대반과 의대정원확대 등 논쟁이 두 개로 보여요. 두 아이템을 묶은 이유가 있을까요?
"초등 의대반의 사교육 열풍 현장으로도 아이템 할 수 있고,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도 아이템 할 수 있어서 어떻게 보면 두 개의 아이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이 의사가 되겠다고 아우성을 치죠. 반면, 전국 각지의 의료 현장엔 고액 연봉에도 의사가 부족하고요. 의대 정원은 18년째 묶여있는 상황이죠. 조금 달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작가님께서 고생하셔서 잘 구성해 주신 것 같습니다."

- 이번 아이템을 취재하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저도 이번에 취재 들어가면서 18년간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묶여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가장 신기했습니다. 18년 전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의료 시장이 커졌고, 또 다양한 이유로 병원을 자주 찾고 있는데 의대 정원 수는 3058명으로 묶여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어요."

- 전국 대학이 200개가 넘는데 의대는 39개더라고요.
"'의대 정원 확대하자'라고 하는 말에는 기존 39개 의과대학에 정원을 증원하자는 의견과 새로운 의과 대학을 늘리자는 의견이 공존합니다. 특히, 안동대, 창원대, 목포대, 순천대 등은 의대를 신설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의대 신설이 지역의 공공의료 공백을 메우고 지역소멸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어요. 각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 부분은 취재했지만, 방송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 취재는 뭐부터 하셨어요?
"다양한 의대생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의대 정시로 들어간 친구들 보면 77%가 재수, 삼수, 사수 이상입니다. 77%가 넘는 친구들이 노력과 비용, 시간을 투자해서 의대에 오려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친구들을 만나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친구들을 섭외하는데 많은 취재 노력을 투입시켰습니다."

- 서울 대치동에 초등 의대반 학원이 있던데.
"'초등 의대반'이라고 간판까지 달아 놓았어요. 여기서는 수학을 대부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친구들은 사실 상위권에 있는 친구들이고 그 친구들은 국어, 영어, 과학 등은 기본적으로 다 1등급을 받는 친구들이에요. 그런데 변별력이 수학에서 난다고 생각해서 빨리 선행학습을 시키는 거죠. 고등학교 수학을 반복해야 하니까.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커리큘럼 짜놓고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의사 수 늘린다고 모든 문제 해결되진 않지만..."
 
 황순규 PD

황순규 PD ⓒ 황순규 제공

 
- 'N수생'들이 의대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거 같아요. 
"'N수' 해서 의대간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의사라는 직업의 '안정성'을 우선으로 꼽았어요. 최근 4년간 N수생으로 의대에 들어온 비율이 77%예요. 저는 이 수치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대에 가려는 학생들은 최상위권 학생들이에요. 공대나 다른 곳에 들어가 있던 친구들이 대학 와서 공부해보고 의사만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죠. 자기는 점수 1~2점 차이로 의대를 못 갔는데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서 N수생들이 77%나 차지하고 있는거죠.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거죠."

- 산청의료원의 경우 연봉 3억 6천을 준다고 해도 내과 의사를 못 구한다고 하던데요. 
"산청이 물론 지방 도시이기는 합니다만, 내과는 필수 진료 과목이잖아요. 1년 넘게 구해지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방의 의료공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 취재를 했고요. 내과 전문의 채용에 월 3천만 원, 연봉 3억 6천만 원의 조건으로 5차례 재공고가 나왔습니다. 결국 방송 직전 1년 2개월 만에 한 분을 채용했고 6월 12일부터 진료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렵게 내과 전문의가 구해졌다고 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지방의 필수 진료 과목이 1년 넘게 공백이었다는 사실은 문제죠."

- 인천의료원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던데요.
"수도권에 위치하고 시스템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인천의료원도 1년 2개월째 신장내과 의사를 못 구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리고 혈액투석기 35대가 의사가 없어 멈춰 있는 모습을 직접 봤는데 안타까웠습니다. 저희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인천의료원뿐만 아니라 대구, 청주, 충주, 천안, 포항, 군산의료원 등 시 단위의 규모가 큰 의료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절반 이상이 의사가 없어 휴진하고 있었습니다.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님은 절대적으로 '의사 수 부족'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의대 정원을 늘려서 의사 숫자가 많아지면 결국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계셨습니다."

-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까요? 지금도 돈 되는 과로만 몰리고 소아청소년과 등은 안 가려고 하잖아요.
"맞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그 논리가 바로 대한의사협회가 주장하는 논리예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숫자가 늘어나면 쏠림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라는 거죠. 저는 의사협회의 논리가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대 정원 확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18년 동안 의대 정원수를 묶어놓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동시에 의사협회가 얘기하는 배치의 문제, 환경과 시스템을 같이 고민해야겠죠. 의사 수가 어느 정도 있어야 그러한 배치의 문제도 고민할 수 있는 거죠. 다시 말해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필요 조건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의사협회는 왜 의대 정원 증원 반대하는 거죠?
"첫 번째가 방금 말씀하신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공백이나 필수 인력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거죠. 두 번째 대한민국 인구는 자연 감소추세에 있어서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고 늘리면 나중에 의사 과잉이 될 것이라는 거죠. 그러나 일각에서 '인구는 줄고 있지만 고령화가 훨씬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을 많이 찾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해요. 의사 수 부족으로 일어나고 있는 의료 시스템 붕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죠. 의사 숫자가 어느 정도 있어야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도 생길 것이고, 의료 공백이 어느 정도 해결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의사분들도 많았습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직업의 자유라는 게 있잖아요. 의사들도 본인이 근무하고 싶은 시기, 지역을 선택할 자유가 분명히 있죠. 그렇지만 이걸 거꾸로 생각해 보면 '특정 자격이나 직업에 진입할 정원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라는 건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펼치는 정책의 일부라는 생각입니다. 즉, 의대 정원수를 전체 국민의 도움이 될 적정선을 판단해 정해야지 한쪽의 주장만 받아들여 18년 동안 늘리지 않고 있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권익을 대신하는 대한의사협회 쪽에서는 충분히 그런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의료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국민에게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이 명확하다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저희에게 보내온 답변을 보면 '필수 의료인력 부족과 고령화 등 의대 정원 확대는 꼭 필요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이제는 국민만을 생각하며 결정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지금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여러 가지 의제를 놓고 회의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역은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도 잘 아실 거예요.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의료 서비스 질을 유지하고 의료 공백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인지 프로그램 댓글 등 시청자 여론이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6월 초에 있을 회의에서는 조금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 합니다.
황순규 PD수첩 의대 광풍 의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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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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