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인생극장 포스터

▲ 줄리아의 인생극장 포스터 ⓒ 해피송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삶의 지나간 선택의 순간에서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오늘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시간의 강력한 영향 아래 놓여져,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리하여 지난 선택이 달랐다면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를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못하다고 믿는 결정이 삶을 더 낫게 이끄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반면 더 안전하고 나아보이는 결정이 어떤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삶이란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 어제 나은 선택이 오늘 나빠지기도 하고, 오늘 못한 선택이 내일 나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때 < TV 인생극장 >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코미디언 이휘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예능프로그램은 매일 하나의 이야기를 소재로 결정적인 선택에 따라 갈라지는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이휘재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그래, 결심했어!"하고 외친다. 프로그램은 그로부터 그가 행한 상반되는 두 결정을 따르며, 결정으로부터 비롯된 삶의 물줄기가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추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회한이며 아쉬움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자극했는지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겠다. 분명한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까지 이따금은 이 프로그램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해피송

 
그 선택 하나가 삶 전체를 바꾼다면
 
모처럼 이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프랑스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프랑스 영화 <줄리아의 인생극장>은 줄리아라는 한 여성이 삶의 순간 내린 여러 선택에 따라 갈라지는 게 다는 여러 인생길을 추적해 내보이는 작품이다. < TV 인생극장 >에서 따온 한국 제목만큼이나 유사한 설정으로, 단 하나의 선택이 아닌 여러 선택에 따른 여러 삶을 보여준다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줄리아는 프랑스의 고등학생이다. 평생 피아노를 쳐온 그녀는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해 성공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길을 차근히 따라가는 중이다. 그러나 영재로 자라온 그녀에겐 제 꿈에 대한 열망보다는 그 길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대한 압박감이 더 두드러진다. 제가 진정으로 피아노를 좋아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달려온 삶 속에서 오늘에 이르고 만 탓이다.
 
영화는 줄리아의 삶을 가르는 첫 번째 선택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때는 독일 통일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해소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시기, 학생들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몰래 나가 베를린에 가기로 모의한다. 남몰래 좋아하던 기타치는 학생과 단짝 친구도 함께하기로 한 베를린행에 줄리아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인생은 정말이지 크게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해피송

 
나아보이는 선택이 삶을 정말 낫게 할까?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나가려던 줄리아가 땅바닥에 흘린 여권을 친구가 바로 주워주느냐, 아니면 줄리아가 다시 기숙사에 들어와 가져가려 하느냐에 따라 삶은 그야말로 전혀 다른 모양으로 달라지게 된다. 영화는 이어 줄리아가 겪는 삶의 수많은 굴곡이 이와 같은 작은 차이로부터 파생됐음을 조명하며 그 결과를 보여준다. 이 과정이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을 긁듯 꽤나 기대가 되어 보는 내내 마음을 쏟을 수 있다.
 
<줄리아의 인생극장>은 수시로 나아보이는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또 못한 결정이 삶은 무너뜨리지도 않는다는 걸 보인다. 더불어 수많은 결정 가운데 잘 변하는 것과 좀처럼 변치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알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 가운데 진정으로 귀한 것은 고통 뒤에야 얻어진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메시지가 누군가에겐 과하거나 편협하고, 또 누군가에겐 공감가고 교훈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양이 크게 다르고, 누구도 이 삶의 진면목을 안다고 자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영화가 이른 귀결, 이를테면 삶의 가치며 가족의 소중함 따위의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충분히 호소력 있게 다가올 것이란 사실이다. 그 점만으로도 <줄리아의 인생극장>은 제법 흥미로운 작품일 테다.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줄리아의 인생극장 스틸컷 ⓒ 해피송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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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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