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 여행기> 포스터

<박하경 여행기> 포스터 ⓒ 웨이브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는 편 당 25분 내외로 간결하고 부담 없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미드폼 형식은 출퇴근길, 식사 및 취침 전, 카페 등. 5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 인기와 더불어 시청자를 사로잡을 만하다. 연출 방식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극장 개봉작이 점차 길어지고 무거워지고 있는 상황,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OTT 시리즈의 범람에서 무해한 시리즈다. 각각 연결되어 있지 않아 어느 회차를 골라 보든 상관없다. 국어 선생님 박하경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남을 그렸다. 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위로받고 싶거나 동경하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면?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 웨이브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속출했던 여행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실존했던 이들의 사례는 '이언 해킹'의 <미치광이 여행자>에 담겨 있다. 그들은 직장, 가정, 자신조차 잊은 채 여행길에 올랐는데, 유행병처럼 유럽에 번져 정신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을 미치광이에 빗대었다고 한다. 시대는 그들을 가리켜 둔주,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20세기가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과연 미쳐서 여행을 떠난 걸까,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떠난 걸까.
 
21세기가 되자 비슷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하나둘씩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교외, 캠핑, 세계 구석구석으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거다. 인생 자체가 삽질이자 긴 여행인 것. 너무 많은 정보와 관계, 일에 지친 사람들이 계속 있는 한 여행은 언제나 필요하다.
 
토요일 딱 하루, 당일치기 여행을 졸졸 따라가 봤더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은 기본 덤으로 여행까지 다녀온 기분이다. 우연이 거듭되다 만들어 낸 필연에 웃음 짓고, 과거의 약속을 지키러 떠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유유자적 여행을 다룬다.
 
번아웃이 온 적 있다면 공감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박하경의 가벼운 가방처럼 잡념을 비우고, 추억은 채우고, 돌아오면 되는 거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해야 하고 봐야 한다는 강박 없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이 아닌. 그저 발길 따라 걷고, 먹고, 멍 때리는 여행이다.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 웨이브

 
한국의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해남-군산-부산-속초-대전-서울-제주-경주. 그게 하루 만에 가능한 건지 의문이지만. 각 여행지마다의 다양한 재미 요소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 유명 관광지는 없고, 현지인만 알 식당이나 장소라 조용하고 편안하다.
 
개인적으로는 3화 '메타멜로'의 부산영화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이나영과 구교환과 케미가 상당했으며, '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다뤄서 좋았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어려운지 곱씹게 되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이 '에릭 로메르'의 <해변의 폴린>과 닮았다. 동네방네비프 프로그램으로 <달세계 여행>을 보는 장면, 밀면 먹는 장면, 지하철역에서 귀여움에 대해 엉뚱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 등. 부산영화제가 떠오르며 입꼬리를 올리게 했다. 부산 바다, 남포동, 밀면집, 카페, 보수동 책방, 벽화마을 등등 반가운 장면이 포진해 있다. 내친김에 박하경이 떠난 경로를 따라 훌쩍 떠나 보는 것도 좋겠다.
 
따스한 연출과 공감할 대사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박하경 여행기> 스틸컷 ⓒ 웨이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심은경부터, 선우정아의 묵언 연기, 무용전공자 다운 한예리의 춤사위도 볼 수 있다. 손미 작가의 대사가 가슴에 콕 하고 박힌다. 손미 작가는 동네 서점에서 만난 국어 교사가 매주 토요일마다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일화에 영감받아 이야기를 썼다.
 
일상의 소소함과 특유의 잔잔함이 무기인 일본 스타일이다. 분위기면에서 <리틀 포레스트> <카모메 식당> <안경>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 작품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나머지 시리즈가 궁금해진다. 박하경이 국어선생님인 거 말고는 과거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염정화에 이어 이나영 싱크로율까지 소화한 박세완이 연기하는 박하경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 밖에도 폰 배경화면, 액자에 걸린 청둥오리의 정체가 무엇일지, 왜 국어 선생님이 된 건지, 책 <춤추는 캥거루>에 얽힌 사연 등. 캐릭터의 전사가 더 알고 싶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박하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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