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차 라인업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차 라인업 ⓒ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날씨가 더워질수록, 여름 페스티벌 시즌이 임박했했음을 체감한다. 나처럼 페스티벌을 즐기는 '페스티벌 고어(festival goer)'들은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면서 여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곤 한다. 그것이 무더운 계절을 기다리게 하는 유일한 이유다.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2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라인업 공개 이후, 한정 수량으로 판매된 마니아 티켓은 두 시간이 되지 않아 매진되었다. 이번 2차 라인업의 뜨거운 감자는 금요일 헤드라이너인 일본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엘르가든이다. 엘르가든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밴드다. 한국 TV 광고에도 삽입되었던 'Marry Me'는 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들어보았을 법하다. 'Make A Wish', 'Missing', 'salamander' 등 엘르가든 특유의 밝은 멜로디는 많은 팬들을 록 음악에 입문하게 했다.

엘르가든은 1998년에 결성해 2008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갔지만, 2008년 인천 펜타포트 공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엘르가든의 보컬 호소미 타케시는 이후 모노아이즈, 더 하이에터스 등의 활동을 통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엘르가든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밴드는 2018년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오랜만의 정규 6집인 'The End of Yesterday'를 발표했다. 많은 록 팬들이 자신의 음악적 첫사랑을 만날 기회다.

'응답하라 2000년대', 추억 자극하는 헤드라이너
 
 17년만에 한국을 찾는 미국 록밴드 스트록스(The Strokes)

17년만에 한국을 찾는 미국 록밴드 스트록스(The Strokes) ⓒ The Strokes

 

1차 라인업에서 발표된 토요일 헤드라이너 스트록스(The Strokes) 역시 오랜만에 한국을 찾는 손님이다. 스트록스는 2006년 첫 펜타포트의 첫날 헤드라이너로 출연한 이후, 17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되었다. 미국 뉴욕 출신의 스트록스는 2000년대 초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당시 '록의 구세주'라는 극찬까지 받았던 밴드다.  

7~80년대 포스트 펑크를 재구성한 데뷔 앨범 < Is This It > (2001)은 2000년대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이다. 스트록스 특유의 미니멀한 록 음악은 하나의 문법이 되었고, 악틱 몽키즈나 프란츠 퍼디난드, 킬러스 등 동시대 밴드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트록스는 데뷔 20년차를 넘긴 지금도 전세계 뮤직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를 맡고 있는 록스타다.

스트록스의 한국 방문은 단 한번이었지만,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겼다. 특히 첫 내한 공연에서 'Take It Or Leave It'을 부르기 전,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짧게 불렀던 장면이 대표적이다(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학창 시절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었기 때문). 올해에도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슬로다이브 등과 함께 슈게이징 록을 대표하는 영국 밴드 라이드(Ride)역시 같은 날 출연한다. 특히 오아시스의 후반기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앤디 벨이 이 밴드의 리더를 맡고 있기도 하다.

전설과 트렌드 고민한 '락페의 고유명사'
 
 검정치마

검정치마 ⓒ 비스포크

 
국내 뮤지션의 면면도 탄탄하다. 일요일에는 김창완 밴드가 헤드라이너로 나서 한국 록의 자존심을 세운다. 자우림 대신 솔로 아티스트로서 공연하는 김윤아, 6년만에 펜타포트 무대로 귀환하는 장기하 역시 합류했다. 지난해 펜타포트에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백예린의 밴드 더 발룬티어스, 새소년, 실리카겔, 체리필터, 이승윤 등의 이름도 다시 찾아볼 수 있다. 헤비 메탈 밴드 메 세 번째,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이자, 뉴진스의 프로듀서로 알려진 '250' 역시 출연한다.

검정치마의 토요일 출연 확정도 음악 팬들 사이의 소소한 화제다. 조휴일의 원맨 밴드인 검정치마는 2017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이후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주로 단독 공연이나 소규모 클럽 공연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트록스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많이 받은 검정치마를, 스트록스와 같은 날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상징성도 있다.

최근 일본 대중음악과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올해 펜타포트에서는 일본 뮤지션의 비중이 적지 않다. 헤드라이너로 나선 엘르가든을 비롯, 개성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펑크록 밴드 오토보케 비버, 시티팝의 유행과 함께 재조명받고 있는 관록의 밴드 키린지(KIRINJ), '양문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히츠지분가쿠 등이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대중적인 라인업을 구축하면서도, 마니아들의 기호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2013년 여름, 수도권에서만 대형 락 페스티벌이 다섯 개 이상 열리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적인 뮤지션이 연이은 내한 소식이 음악 팬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의 작은 규모에 비해 과열된 경쟁이었다. 현대카드나 CJ 등의 큰손은 수익성을 확인하지 못한 채 손을 뗐다. 그 중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사라졌다. 그리고 펜타포트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수도권 락 페스티벌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후 열린 지난해 펜타포트에는 사흘간 12만 명 이상의 관관객이 모였다. 펜타포트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옛말의 좋은 예다. 한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오는 8월 4일부터 6일, 인천 송도 달빛 축제공원에서 사흘간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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