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매년 3월 새 학년에 올라가면 새로운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 학년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새 학년에서도 같은 반이 되기를 원하지만 반 배정은 무작위로 정해지기 때문에 친했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새 반에서 서로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하는 학기초에는 친구들끼리 한 동안 경계하고 오해도 하면서 조금은 어색한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은 어색하던 친구들의 사이는 반 대항 체육대회 같은 학교 행사를 거치면서 가까워진다. 서로 경계하던 친구들은 '다른 반을 이겨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하나로 뭉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유대감과 정이 쌓이게 된다.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직장에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을 법한 상극의 직장동료와 함께 회사의 업무를 소화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같은 업무를 맡아 힘을 합쳐 일하다 보면 성향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동료와 의외로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3명의 형사가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범죄 스릴러 영화 < L.A. 컨피덴셜 >처럼 말이다.
▲ 은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오스카픽쳐스
스타성과 연기력 겸비한 뉴질랜드 배우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와 뉴질랜드를 오가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러셀 크로우는 호주에서 음반 제작에 참여하고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1990년 조지 오길비 감독의 <더 크로싱>에 출연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크로우는 1995년 샤론 스톤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진 해크먼 등 호화캐스팅으로 유명했던 액션 서부극 <퀵 앤 데드>에서 성직자가 된 최고의 총잡이 코트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가상현실>에서 덴질 워싱턴과 호흡을 맞춘 크로우는 1997년 고 커티스 핸슨 감독의 < L.A. 컨피덴셜 >에서 다혈질 형사 웬델 '버드' 화이트를 연기했다. 크로우와 케빈 스페이시, 가이 피어스가 각기 다른 성격과 수사방식을 가진 형사로 열연을 펼친 < L.A. 컨피덴셜 >은 3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1억26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 L.A. 컨피덴셜 >을 기점으로 크로우는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1999년에는 알 파치노와 함께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에 출연했고 2000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레디에이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1년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천재수학자 고 존 내쉬 역을 맡아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미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2005년 론 하워드 감독과 재회한 <신데렐라맨>에서 전설적인 헝그리 복서 고 제임스 J. 브래독을 연기한 크로우는 2007년과 2010년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와 <로빈후드>에 출연했다. 2012년 개봉해 세계적으로 4억42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던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역시 관객들에게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의 건재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2014년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노아>에서 안소니 홉킨스, 엠마 왓슨과 연기호흡을 맞춘 크로우는 2017년 톰 크루즈 주연의 <미이라>에서 헨리 지킬 역을 맡았다. 작년 7월에 개봉했던 마블 히어로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는 토르의 어린시절 롤모델이었던 '올림푸스의 왕' 제우스를 연기했다. 크로우는 작년 11월 본인이 직접 감독과 각본, 주연을 맡은 두 번째 연출작 <포커 페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상극인 세 형사가 하나의 사건을 파고 든다
▲ 러셀 크로우는 < L.A. 컨피덴셜 >을 기점으로 할리우드에서 확실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 오스카 픽쳐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경찰이 되고 싶은 대쪽 같은 신임경관 에드먼드 엑슬리(가이 피어스 분), 여자와 아이를 때리는 것을 가장 혐오하는 열혈형사 웬델 '버드' 화이트(러셀 크로우 분),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것을 즐기는 마약반 형사 잭 빈센스(케빈 스페이시 분). < L.A. 컨피덴셜 >은 1950년대 미국 L.A.를 배경으로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명의 형사가 하나의 사건을 추격하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 영화다.
지금이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 L.A. 컨피덴셜 >의 세 주인공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 L.A. 컨피덴셜 >이 개봉할 당시만 하더라도 <유주얼 서스펙트>와 <세븐>, <아웃브레이크> 등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케빈 스페이시를 제외한 러셀 크로우와 가이 피어스는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극 중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섹시스타 킴 베이싱어가 포스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사실 < L.A. 컨피덴셜 >은 같은 해 개봉해 당시 세계 영화사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웠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 가려 그리 폭발적인 흥행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하지만 < L.A. 컨피덴셜 >은 미국의 영화평론사이트 로튼로마토의 신선도 점수 99%, 관객점수94%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 L.A. 컨피덴셜 >은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으며 이듬 해 아카데미 각색상과 여우조연상(킴 베이싱어)을 수상했다.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고 명예욕도 갖춘 에드와 전형적인 열혈형사 버드는 성격도 수사방식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잭 형사를 죽인 진범을 찾기 위해 힘을 모으고 공조수사를 하면서 의외로 호흡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했고 에드는 경찰의 영웅이 되며 훈장을 타고 버드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며 서로 원하는 바를 얻었다.
< L.A. 컨피덴셜 >을 연출한 고 커티스 핸슨 감독은 1992년 스릴러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을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세기 누아르의 마지막 걸작'으로 극찬 받았던 < L.A. 컨피덴셜 >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2002년에는 힙합 뮤지션 에미넴의 무명시절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 8마일 >을 연출했고 2006년에는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코미디 영화 <당신이 그녀라면>을 만들며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황색잡지의 편집장이 된 펭귄맨
▲ 잭 형사와 내통하며 경찰의 내부 정보를 얻었던 시드 편집장은 결국 스미스 반장에게 살해 당한다. ⓒ 오스카픽쳐스
러셀 크로우가 < L.A. 컨피덴셜 > 출연 당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 가이 피어스야말로 < L.A. 컨피덴셜 >이 실질적인 할리우드 데뷔작이었을 정도로 미국에서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피어스는 < L.A. 컨피덴셜 >에서 정의로우면서도 명예욕이 높은 신참형사 에드 역을 멋지게 소화하며 인지도를 크게 올렸다. 그리고 피어스는 3년 후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에서 레너드 셸비를 연기했다.
<배트맨 리턴즈>의 펭귄맨으로 유명한 배우 대니 드비토는 < L.A. 컨피덴셜 >에서 부패한 마약반 형사 잭에게 돈을 주고 경찰의 내부 정보를 제공 받는 황색잡지 '허쉬허쉬'의 편집장 시드 허진스를 연기했다. 영화 오프닝에서 1950년대 초반, L.A.와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내레이션 역할도 시드가 담당했다. 147cm의 단신배우 드비토는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할리우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여러 작품에서 독선적인 성격을 가진 고위 간부를 연기했던 제임스 크롬웰은 < L.A. 컨피덴셜 >에서도 에드의 아버지와 잭 형사를 죽게 한 진범이자 영화의 최종빌런 더들리 리암 스미스 반장을 연기했다. 크롬웰은 < L.A. 컨피덴셜 >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을 연기했지만 1995년 가족영화 <꼬마돼지 베이브>에서는 순박한 농부 아서 호겟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