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이든,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임을 기억한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망에 이른 피해 학생의 노트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상식같은 이야기이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누군가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피해자-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처해야 할 의무에 소홀했던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20일 방송된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6,300개 메시지에 담긴 진실 - 박주원 사망 사건' 편에서는 학교 폭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소녀의 비극을 조명했다.
 
지난 4월, 전 국민들을 놀라게 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폭력 피해자 유족들이 무려 8년을 간절히 기다린 소송이 무산되었다는 것. 더구나 그 이유는 담당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에 세 차례나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아서 민사소송법상 항소가 취하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인 고 박주원 양은 작가가 꿈이었고 시를 쓰는 게 취미일 만큼 감수성이 풍부했던 소녀였다. 그런데 2015년 주원 양은 재학 중이던 강남의 B여고에서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주원 양은 이미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학급 부회장을 맡는 등 한동안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학교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표정이 어두워지고 눈물을 흘리는 등 성격이 달라졌다고.
 
주원양의 여중 동창인 임서라(가명)는 당시 주원 양을 따돌리는 데 앞장선 인물로 거론된다. 임서라는 이른바 학교 일진 무리의 일원이었고, 남자친구 문제로 주원 양과 갈등을 빚었다. 그녀는 주원양의 휴대폰을 빼앗아 본인의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고, 남자친구가 주원양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SNS에서 주원양에 대한 인신공격을 일삼기도 했다. 심지어 주원양이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당했던 상처까지 거론하며 협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임서라의 SNS 비난글이 시작된 직후, 주원양은 한 익명 채팅방에 초대받아 돌연 집단적인 욕설에 시달렸다. 불과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해당 채팅방에 있었던 5인이 주원양에게 퍼부은 비난 메시지는 무려 600여 개에 이르렀으며. 주원양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비난 메시지들은 대부분 임서라가 관계된 내용들이거나 주원양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면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이를 두고 임서라가 채팅방 개설의 배후에 있다는 의심이 들만 했다.
 
한편 괴롭힘은 이제 온라인만이 아니라 실제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동창들은 가해자들이 주원양과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주원양을 끌고가 의자로 때리고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퍼붓는 등 각종 폭력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주원양은 견디다 못해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음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원양은 강화도로 전학을 결정했다.
 
다행히도 주원양은 낯선 타지에서 오히려 잘 적응했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오랜 기숙사 생활로 가족의 품이 그리웠던 주원양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학교폭력으로 떠난지 2년 만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주원양은 강남의 다른 여학교에서 재학 중이던 임서라와 한 문구점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그녀는 주원양에게 욕을 하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주원양이 과거 학교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재학 중인 학교에도 알려졌다.
 
주원양은 그때부터 출처가 불명확한 나쁜 소문에 휘말리며 학교 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고. 주원양에게는 잊고싶은 끔찍한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주원양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강화도에서 돌아와 강남 B여고에 진학한지 불과 두달 만이었다.
 
 주원양이 사망하기 전에 가까운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6300여 통의 메세지에는 차마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아픔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실 주원양이 폭력과 따돌림으로 고통을 당하던 2010년대에는 이미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한창 높아지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학교와 경찰은 피해자인 주원 양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주원 양의 가족들이 중학교 시절 사이버 테러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음에도 경찰은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벌어진 일이라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학교 측이 구성한 학폭위도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없음-피해자 없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리며 주원양의 사망이 학교폭력과 무관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제작진은 2012년 주원양에게 익명 채팅방에서 사이버 폭력을 자행한, 이제는 모두 20대 성인이 된 5인방의 행적과 임서라와의 관계를 추적했다. 당시 가해자 5인 중 주원양과 초등학교 동창이던 김우연(가명)이라는 인물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모두 주원 양과 모르는 사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김우연이 주원양을 비방하면서 채팅방에서 욕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우연은 주원양이 사망한 해에 고교를 자퇴한 이후 현재 행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이어 제작진은 주원양에 대한 학폭을 주도한 의혹을 받고있는 임서라와 연락이 닿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임서라는 당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자신이 괴롭힌 주원양이 끝내 사망에 이른 뒤에는 유학을 다녀와 특례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근황이 알려졌다.
 
임서라는 "사이버테러를 저지른 5인은 저와 모르는 사이다. 제가 B여고 애들에게 연락해서 박주원을 괴롭히라고도 했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임서라는 중1때 주원양을 괴롭힌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이후의 학교폭력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다. 또한 "박주원에게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히거나,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교 시절 문구점에서 재회했을 때 욕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민사 1심 재판부 역시 임서라와 사이버 폭력은 무관하며, 그로부터 3년 뒤에 벌어진 학폭과 피해자의 사망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으로 임서라는 "제가 비난 글을 올린 것은 생각없는 행동이 맞는데, 그때 주원이 저에게 했던 행동은 진짜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에게 별로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 제가 그 친구를 힘들게 했다는 데는 공감을 못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주원 양은 B여고에서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이 배제되는 상황에 힘겨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내에서는 주원양의 과거 학교폭력과 전학 시절을 빗댄 '강화도 꼬마'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주원양은 수학여행 때 친구와 함께 앉아야하는 버스 자리 문제로도 고민해 담임 선생님에게 사정을 호소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주원양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주원양의 유족들은 고인이 당한 학교폭력을 증명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경찰에게도 학교로부터도 외면받은 유족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는 소송 뿐이었다. 유가족들은 2016년부터 가해 학생들과 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은 항소심에 걸쳐 7년간이나 계속됐다. 유족들은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얻었으나 관련 책임자 34명 중 단 한 명만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나머지 피고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들은 조롱과 막말의 주체가 누구인지 불명확하고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 측이 주장한 학교폭력과 해당 학교-가해자의 책임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제작진은 주원 양이 남긴 6300여 개의 메시지를 근거로 그녀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주원양에게 가장 중요했던건 학폭을 다시 당하지 않는 것이다. 대인관계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면접을 앞둔 수험생처럼 주변의 반응을 의식하느라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에 상당히 취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태경 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의 하이라이트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로 계속 침범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진단하며 "드라마로 치면 한편이 끝난 게 아니라 일시정지였다. 3년 동안 다른 데에 갔다가 이 학교로 돌아오는 순간, 재생버튼이 다시 눌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합하자면 중학교 시절의 따돌림 트라우마, 임서라와의 재회, B여고 동창들과의 갈등과 수학 여행기간의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결국 주원 양을 벼랑으로 몰아간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법적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원양은 지금껏 '학교폭력 피해자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으로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주원양은 당시에 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학폭 피해자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심리를 지적했다.
 
주원 양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에 처하여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어른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진실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고 느꼈을 때, 세상에 나를 도와줄 어른은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이전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유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주원 양의 억울한 죽음을 법에 호소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박탈 당했다. 유가족들이 주원양 사건의 담당 변호사로 선임한 사람은 바로 권경애 변호사였다. 평소 사회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이름을 알린 권경애는, 유가족들에게도 믿음직한 이미지를 어필하며 신뢰를 얻었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권경애 변호사를 만나 소송 상황을 체크하다가 뒤늦게 "소송이 취하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로서 주원양의 학교폭력에 대한 법적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놀랍게도 권경애는 이미 전부터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했고, 소송이 취하된 것도 유가족에게 뒤늦게 알렸다. 권경애는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는 뒤늦게 "직원 업무인데 해당 직원이 그만둬서 잘 파악하지 못했다", "능력에 벅찬 사건을 맡아서 부담에 짓눌린 것 같다"며 납득하기 힘든 변명을 늘어놓았다.
 
변호사들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이라며 일제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경애는 현재 해당 법무법인을 퇴사한 상태다. 권경애는 재판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건강 문제'라고 둘러댔지만, 재판 기간 전후에도 외부 활동과 정치 논평을 활발하게 올렸던 것으로 드러나며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한 <그알> 제작진에게는 권경애가 유족들에게 했던 이야기와는 달리 "증거와 증언을 확보하기 어려워 어차피 항소가 진행되었어도 승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당시 학교의 과실 문제 등을 거론하며 "변호인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최소한 일부 손해배상 청구는 인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며 권씨의 변명을 반박했다.
 
실제로 주원 양이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당했을 당시, 분명한 정황에도 A여중은 학폭위를 제대로 열지도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가 전학을 가게 만든 것은, 학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대응이었다. 해당 A여중은 제작진의 서면질의에 '이야기 할 내용이 없다'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학교도, 임서라와 다른 가해자들도, 심지어 피해자의 변호사마저도, 자신이 주원 양의 비극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이들은 끝내 아무도 없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다루며 큰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든 피해자들이 극중 문동은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승혜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 대표는 "우리 사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을 도와줘야 한다. 분위기든 시스템이든 바뀌지 않으면 계속 억울하고 힘들고 혼자 감내하다가 또다른 상처를 입는 게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친 이기철씨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수천수만가지의 상황에서 어떤게 적절한 대처였을까"라며, 지금도 딸 주원양을 더 적극적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이 느껴야 할 죄책감을 홀로 짊어지고 있었다. 남들과 같이 학교를 진학하고,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 왜곡된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구성원들의 아픔은 묻혀버리기 일쑤다.
 
어쩌면 주원양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재판부는 주원양의 과거 학폭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무시했지만, 정작 주원양 본인은 생전 A여중에서 받은 학폭의 트라우마에 계속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우리는 그 수많은 골든타임을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놓친 것은 아닐까.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적-물리적 폭력을 아울러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학생의 25% 이상이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 없음-가해자 없음'이라는 아이들의 가슴 아픈 죽음을 더욱 허망하게 만드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생전 주원양의 노트에는 학교폭력의 정의와 대처에 대하여 적어놓은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임을 기억한다'는 글은 주원 양의 노트에 적힌 맨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어쩌면 이 당연한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어른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 아닐까.
그것이알고싶다 박주원양 학교폭력 권경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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