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입장에서는 특정 영화가 시리즈 물로 가능성을 보이면 영원히 그 시리즈를 유지하고 싶겠지만 관객들은 시리즈 영화가 큰 변화 없이 이어지면 더 이상 그 프랜차이즈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최근에는 기획 단계부터 3부작, 길어도 4부작을 넘어가지 않게 시리즈 영화를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캐릭터의 생명력이 살아있을 경우 '리부트' 등의 형식으로 시리즈를 부활시키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것처럼 시리즈물 역시 생명력이 짧아진 최근에도 오랜 기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프랜차이즈도 있다. 지난 1960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2021년 <노타임 투 다이>까지 6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 007 >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17일, 북미에서는 19일에 10번째 이야기가 개봉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시 20년 넘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다.

국내에서도 3편이 개봉하기도 전에 이미 4편까지 촬영을 마친 마동석의 <범죄도시>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 1980년대에 9편까지 제작됐던 인기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결합해 1980년대 어린이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심형래 주연의 <외계에서 온 우뢰매>(이하 <우뢰매>) 시리즈였다.
 
 여름방학 시즌을 겨냥해 1986년8월에 개봉한 <우뢰매1>은 어린이 관객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여름방학 시즌을 겨냥해 1986년8월에 개봉한 <우뢰매1>은 어린이 관객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 김청기필름

 
80년대 어린이들 방학 책임졌던 <우뢰매>

<우뢰매>의 등장은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시대상과 연결돼 있다. 당시 한국은 경제호황으로 국민소득이 급증하면서 인건비도 함께 올랐고 이에 따라 극영화보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은 오히려 위축됐다. 따라서 제작비 절감을 위해 일본의 완구제품 판권을 구입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했고 그 작품이 바로 <우뢰매1>이었다.

<로보트 태권V>를 만들었던 김청기 감독이 연출하고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우뢰매1>은 1986년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해 어린이 관객들에게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편이 짧은 시간에 워낙 많은 인기를 얻다 보니 2편은 졸속으로 제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1편 개봉 후 단 4개월 만에 2편이 개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우뢰매>는 1편부터 5편까지 매년 방학시즌마다 1년에 두 편씩 개봉했다. 어린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인 만큼 방학마다 꾸준히 새로운 우뢰매와 에스퍼맨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뉴머신 우뢰매'가 등장하는 <우뢰매5>는 당시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태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뢰매6> 제작을 앞두고 <우뢰매>는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주인공 심형래가 하차하는 대형악재가 발생했다. 제작사에서는 당시 떠오르던 신인개그맨 한정호를 새로운 에스퍼맨으로 투입했지만 준수한 외모를 가진 신인 개그맨에게 심형래의 트레이드 마크인 바보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우뢰매>는 6편을 끝으로 3년 동안 차기작이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사실상 시리즈가 종결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뢰매에 열광하던 어린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가요와 팝송을 듣는 나이가 된 1992년 <우뢰매>는 기존의 세계관이 바뀐 '리부트' 형식의 7편이 개봉했다. <우뢰매7>은 심형래가 컴백하면서 야심 차게 만들었지만 완성도 높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90년대 어린이들은 더 이상 <우뢰매>에 열광하지 않았다. 결국 <우뢰매>는 1993년 렌탈 비디오용으로 두 편을 더 선보인 후 조금은 쓸쓸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모르는 <우뢰매>의 '진짜' 흥행성적
 
 동네바보 형래는 초능력을 얻어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에스퍼맨이 됐다.

동네바보 형래는 초능력을 얻어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에스퍼맨이 됐다. ⓒ 김청기필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홈페이지(kobis.or.kr)에서 <우뢰매>를 검색하면 2023년 4월 기준으로 <우뢰매1>의 공식 흥행성적은 서울관객 5527명으로 나온다. 하지만 <우뢰매>를 극장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있는 그 시절의 어린이라면 이 기록을 신뢰하기 힘들 것이다. 1986년 개봉 당시 <우뢰매>는 좌석을 구하지 못해 극장 통로에 앉아서 봐야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당대 최고의 어린이 영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뢰매> 시리즈는 '유치한 아동영화' 취급을 받으며 충무로에서 외면당했고 일반 상영관이 아닌구민회관이나 시민회관, 동시상영극장 등에서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2023년을 기준으로 보면 <우뢰매>가 표현한 액션의 완성도는 조악하기 그지 없다. <우뢰매>에서는 극 중 로봇이 멈춰있는 장면은 미니어처를 사용했고 로봇이 하늘을 날거나 싸우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면서 이를 '특수효과'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연결되는 과정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일본의 매끄러운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일부 관객들에게는 <우뢰매>의 액션이 유치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뢰매>가 그 시절 어린이 영화로서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순히 재미를 노린 전략이었을 수도 있지만 '평소엔 바보지만 변신 후에는 멋진 히어로가 된다'는 형래의 캐릭터도 상당히 신선했고 빌런 루카(안대욱 분)가 자신이 토사구팽한 부하에 의해 최후를 맞는 결론도 꽤나 교훈적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일일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데일리(천은경 분)가 연루된 '출생의 비밀'까지 나온다.

<우뢰매>는 완구회사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진 영화답게 개봉과 함께 로봇완구와 무비북, 영화의 내용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 등이 출시돼 쏠쏠한 2차 수익을 창출했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에게는 상영관에 입장할 때 '우뢰매 책받침'을 증정하기도 했다. 특히 로봇을 가지고 놀기엔 조금 철이 들었고 장난감을 유치하게 여기기엔 아직은 어린 초등학교 3~6학년의 남자 어린이들은 BB탄이 발사되는 조립식 '에스퍼건'을 많이 가지고 놀았다. 

많은 어린이들의 첫사랑이었던 데일리
 
 천은경이 연기했던 데일리는 1980년대 중반 많은 남자 어린이들이 흠모하던 '첫사랑'이었다.

천은경이 연기했던 데일리는 1980년대 중반 많은 남자 어린이들이 흠모하던 '첫사랑'이었다. ⓒ 김청기필름

 
1980년대의 남자 어린이들은 TV나 영화를 통해서 본 '예쁜 누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곤 했다. 실제로 <우뢰매>를 본 남자 어린이 중에서 데일리에게 반하지 않은 어린이를 찾기 힘들었을 정도로 그 시절 데일리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편에서 데일리를 연기한 천은경은 2편에서 다른 배우로 교체됐지만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3편에서 다시 <우뢰매>에 복귀했고 4편까지 데일리 역을 맡았다. 1990년대 중반 연예계를 떠난 천은경은 2007년 <진실게임>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고 2021년에도 유튜브 채널 '근황 올림픽'에 출연하며 어느덧 중년이 된 <우뢰매>와 데일리를 좋아했던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우뢰매>에서 엄박사(엄용수 분)의 큰딸을 연기한 보미는 남동생 차돌(유민 분)의 철없는 장난에 당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형래와 동생을 잘 돌봐주는 씩씩하고 착한 맏딸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엄박사 가족과 에스퍼맨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 보미가 에스퍼맨을 알아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두 사람이 먼저 만났던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영화를 얼마나 허술하게 찍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우뢰매>에서 보미를 연기했던 우윤아는 <우뢰매4>까지 보미 역을 맡았다가 1993년 <우뢰매8>에서 다시 보미로 등장한다(물론 <우뢰매8>은 새로운 시리즈가 아닌 1~3편의 장면을 짜깁기해 만든 영화였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감독 심형래 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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