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포스터 ⓒ UPI코리아
할리우드의 대표 자동차 액션 시리즈 <분노의 질주>가 어느덧 탄생 22주년 및 무려 10편 제작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지난 17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된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원제 FAST X)>는 '돔'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과 그에겐 가족이나 다름 없는 동료들의 목숨 건 특수 임무 수행, 그리고 각종 자동차들의 짜릿한 질주로 다시 한번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았다.
지난 2001년 1편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단순히 뒷골목 불법 카레이싱 이야기 정도로만 출발했던 이 시리즈가 이제는 제작비 3억달러(한화 약 3985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역대급 블록버스터 물로 진화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미국을 넘어 중남미, 유럽, 구 소련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데 이어 지난 9편에선 우주 공간까지 진입하는 등 상상초월 액션으로 인기를 누린 <분노의 질주>였지만 이제 어느덧 20여년의 역사를 마감할 준비에 돌입했다.
아직 100% 확정이 된 것은 아니지만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빈 디젤이 최근 현지 시사회 직전 현지 언론을 통해 밝힌 바 대로라면 당초 예정된 11편을 넘어 12편에서 종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10번째 작품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이와 같은 의미를 염두에 뒀고 엄청난 물량 투입 뿐만 아니라 그간 시리즈를 빛냈던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분노의 질주판 어벤져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의외의 볼거리를 곳곳에 배치해놨다.
또 다시 위험에 빠진 돔과 친구들
▲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 UPI코리아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10년 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이야기를 먼저 보여준다. (주: 시리즈의 5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 당시 돔과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 분)는 현지 토착 범죄 집단 두목 헤르난 레예즈(조아큄 드 알메이다 분)의 초대형 금고를 탈취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레예즈는 목숨을 잃었고 당시 실종된 그의 아들 단테 레예즈(제이슨 모모아 분)는 수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 그리고 돔과 그의 동료, 가족들을 상대로 역대급 공격을 하나 둘씩 감행하기 시작했다.)
과거 8편(<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핵심 빌런 사이퍼(샤를리즈 테론 분)이 부상을 입은 상태로 돔의 집을 찾아왔다. 단테의 교묘한 술책으로 인해 공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첨단 해킹 장비를 탈취 당하고 만 것이다. 같은 시간 미국 정부의 비밀 기관 의뢰로 로만(타이리스 깁슨 분), 테즈(루다크리스 분), 램지(나탈리 엠마뉴엘 분), 한(성 강 분) 등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작전 수행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테의 치밀한 함정이었고 이를 뒤늦게 알게된 돔, 래티(미셸 로드리게스 분)는 아들을 동생 미아(조다나 브루스터 분)에게 맡긴 채 급히 로마로 떠났다. 중성자탄이 탑재된 대형 트럭을 원격조종하는 단테의 술책에 위협에 빠진 돔과 동료들은 폭파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펼치지만 결국 이 사건을 벌인 범죄자로 몰려 사법 당국 뿐만 아니라 현상금을 노린 이들의 추적을 받기에 이른다.
여전히 화끈한 액션, 반가운 얼굴들 총집합
▲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 UPI코리아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영화 자체로만 놓고 보면 치명적인 결함 투성이인 작품이다. 매회 마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과학 상식, 물리학, 중력 등은 모두 무시한 상상 초월 자동차 질주 및 총격 액션으로 채워졌다.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을테지만 현재까지 스핀 오프 포함 총 11편에 걸친 이 시리즈 만큼은 예외였다.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는 화려한 볼거리는 <분노의 질주> 특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도로를 뛰어 넘어 하늘 위로 날아 다닐 만큼 자동차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액션신으로 관객들을 착실하게 든든한 팬으로 끌어 모았다. 시리즈 초반 들쑥날쑥했던 흥행 실적은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본격 변신에 나선 5편을 기준으로 상승세를 탔다. 또 다른 주연배우 폴 워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개봉된 유작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무려 전 세계 15억달러 매출을 달성할 만큼 역대급 흥행 성공을 거뒀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전작의 기조를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 동료,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 따윈 아깝지 않은 돔의 상상초월 액션은 여전히 대형 화면을 멋지게 장식한다. 이에 맞선 새로운 악당 단테 역을 맡은 제이슨 모모아는 <아쿠아맨>, 애플TV+ <씨: 어둠의 나날>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는 사이코패스 기질의 캐릭터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속 또 다른 볼거리는 반가운 인물들의 재등장이다. 스핀오프 <홉스 앤 쇼>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뎀 분)을 비롯해서 리틀 노바디(스콧 이스트우드 분) 등 이전 작품에 출연했던 캐릭터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엔딩과 쿠키 영상을 통해선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인물들(갤 가돗, 드웨인 존슨)까지 등장하면서 후속편 및 시리즈 최종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쿠키 영상은 그가 등장하는 장면 1개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를 마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비유하는 건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작 대비 약점 증가... 후속편에서 메울 수 있을까?
▲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 UPI코리아
이른바 '킬링타임 무비'로서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기대 만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 대비 약점이 늘어나면서 향후 제작될 후속편 또는 최종편이 짊어져야할 것도 더욱 증가했다. 10편 중 절반을 연출했던 단골 감독 저스틴 린(총 5편 담당)이 빈 다젤과의 견해 차이로 인해 중도하면서 급히 제작진이 교체되는 비상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마련된 시나리오는 파기되고 새로운 감독과 다시 시작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뜩이나 탄탄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야기의 틀이 더욱 헐거워졌다. 당장 죽여야 하는 숙적 사이퍼와 어쩔 수 없이 손 잡아야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개연성 부족이 용납되어왔던 시리즈라곤 해도 설득력 부족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와 더불어 마치 "나 잡아봐라"식으로 응수하는 단테의 뒤꽁무니를 번번히 놓치는 광경의 반복은 다소 식상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작품이 '최종회 파트1'의 성격이 부여되다보니 확실한 결말 대신 뭔가 애매모호한 마무리로 끝나면서 왠지 모를 허전함도 남긴다. 새롭게 참여한 <트랜스포터> <타이탄> 시리즈의 루이 르테리에 감독의 무색무취 연출도 약점으로 부각된다. 저스틴 린, 제임스 완, F. 개리 그레이 등 나름 본인의 특징이나 색깔이 가미된 감독들이 만들었던 전작들과 견줘볼 때 단단한 틀을 완성되었다기 보단 여러 캐릭터들과 사건 나열에만 급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밖에 기대를 모았던 '아카데미 수상 배우' 브리 라슨의 미미한 존재감 등도 단점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