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 개중 하나는 믿을 만한 이들의 추천인데, 걸출한 심사위원들이 고르고 또 골라 선정한 영화제 수상작 또한 그와 같다 하겠다.
 
칸영화제는 현존하는 유수의 영화제 가운데 독보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유럽 3대 영화제로 함께 묶이는 베를린과 베니스를 양과 질 모두에서 압도한 지 오래이며, 근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 작품에 치우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비하여도 그 깊이와 권위가 남다르다 하겠다.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에게 돌아갔다. 외스틀룬드는 지난 2017년에도 <더 스퀘어>를 통해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바 있었으므로, 이 작품이 두 번째 수상이었다. 알프 셰베리,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빌 아우구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카엘 하네케, 켄 로치만이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이력이 있을 뿐이다. 이 세계적 거장 사이에 외스틀룬드가 우뚝 선 것이다.
 
스웨덴은 전통적 영화강국이다. 세계적 감독 잉마르 베르히만과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알프 셰베리, <개같은 내 인생>의 감독 라세 할스트롬이 스웨덴 영화계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어디에 가나 명감독 대접을 받는 빌 아우구스트, 보 비더버그, 로이 안데르손 등도 스웨덴 출신인데, 그 뒤를 칸의 선택을 받은 사내 외스틀룬드가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칸의 선택을 받은 블랙코미디
 
언제나 그렇듯 한국 관객은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꼭 1년 만에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슬픔의 삼각형>이 어떤 미덕을 지니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영화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은 가장 작은 이야기, 한 커플의 소소한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칼(해리스 딕킨슨 분)은 무명 모델이다. 임금은 여자의 3분의 1인 모델업계에서 좀처럼 주목도 받지 못하는 흔해빠진 남자 모델이다. 더 젊고 멋진 이들이 쏟아지는 이 업계에서 적잖은 나이가 된 그를 불러주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에겐 애인이 하나 있다. 한눈에 봐도 매력적인 야야(찰비 딘 분)는 칼과 마찬가지로 모델이다. 여자이기에 수입도 많고 인기까지 많지만 그녀에게도 고민은 적잖다. 모델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되면 누군가의 '트로피 와이프'가 될 일만 남았다는 그녀를 보며 칼은 혀를 내두르는 것 말곤 할 말이 없다. 무능력한 칼에게 정착할 수 없다는 인상을 공공연히 풍기는 야야 앞에서 칼의 마음은 비루해져만 간다.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왜 남자는 돈 더 내야 하지? 그 남자의 불만
 
영화는 두 사람의 저녁식사와 이후 이어지는 자리까지를 흥미롭게 다룬다.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이며 대접은 어처구니없이 다른 두 사람이다. 야야는 은근히 칼을 무시하는데 데이트 비용만큼은 칼이 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야야의 그런 태도에 마침내 칼은 결단을 내린다. 야야를 붙들고서 둘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자는 돈을 내고 여자는 즐기기만 하는 오래된 성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칼의 주장은, 그러나 야야에겐 하찮고 귀찮을 뿐이다.

두 번째 장은 크루즈에서의 여가다. 인플루언서인 야야를 통해 무료 협찬을 받은 크루즈 프로그램으로, 선상에서 먹고 마시며 자유롭게 즐기는 시간이 펼쳐진다. 크루즈엔 돈 많고 여유로운 이들이 잔뜩 올라 있는데, 이들이 빚어내는 풍경이 꽤나 흥미롭다. 승무원은 철저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고, 승객들은 그들에게 전적이라 해도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 근무해야 하는 직원이 안쓰럽다며 당장 수영장에 들어오라는 부호의 말은 곧 명령이 되고, 웃통을 벗고 일하는 직원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한 마디 말이 곧 해고통지가 된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인 크루즈에서의 며칠은 자본주의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을 우스꽝스럽게 내보인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지막 장은, 또 그 장의 끝맺음은 이 영화의 진정한 승부수다. 영화의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은 그로부터 의미를 얻는다. 삼각형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 한 꼭지점은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래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러나 삼각형은 여전히 삼각형으로, 넓은 쪽이 좁은 쪽을 떠받치는 그 형태가 아무리 굴러도 유지되는 것이다. 삶 속에 내재된 욕망과 권력의 관계 또한 그와 같아서 고만고만한 인간들이 어떤 때는 대단한 양 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사람 위에 군림하여 몹쓸 짓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한 커플, 한 선박에서의 이야기로 인간사 전체를 통찰하는 <슬픔의 삼각형>은 과연 칸의 선택을 받을 만한 작품이다. 지식을 가진 이들에겐 더욱 즐거울 것으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외스틀룬드 표 블랙코미디가 무엇인지를 선명히 내보인다. 그렇다면 왜 보지 않겠는가.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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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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