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 Jeonju IFF

 
가장 낮은 자에게 아름다움을 찾으려 한 감독이 있다. 그가 쇄국정책이 한창이던 19세기 중엽, 일본 에도를 배경으로 영화 한 편을 기획했다. 돈도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 3년에 걸쳐 단 12일 동안 한 편의 작품을 찍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영화 <오키쿠와 세계> 이야기다.
 
젊을 적 사나이의 세계를 직선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곤 했던 사카모토 준지는 어느덧 예순을 훌쩍 넘는 노장이 되었다. 그는 몰락한 무사,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카메라를 옮긴다.
 
감독이 선택한 건 똥지게꾼의 삶이다. 말 그대로 똥지게를 지는 자, 똥을 퍼 옮기는 자, 말하자면 도시 에도 사람들이 싼 똥을 교외 논밭으로 옮겨 뿌리는 자의 삶이다. 도시 변소 아래 쌓인 똥을 헐값에 사서 교외 부농에게 파는 것으로 생을 유지하는 이들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왜 아니겠나. 신분은 낮고 일은 더러우며 돈도 얼마 만지기 어렵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찌됐든 하고 보는 것이다. 제 노동으로 제 삶을 책임지는 것이 어른의 도가 아닌가.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 Jeonju IFF

 
똥지게를 지는 일의 가치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분)와 츄지(칸이치로 분)는 똥지게꾼이다. 넓은 세상에서 기댈 곳도 배운 것도 없는 이들은 똥지게를 나르며 오늘을 날 뿐이다. 츄지는 한때 폐지를 수거해 파는 넝마장수였으나 야스케를 만나 똥지게를 지는 일이 더 돈이 된다는 걸 알고는 전업을 한다.
 
막상 똥지게를 지는 일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일이 고되고 더러울뿐더러, 주변의 시선 역시 좋지 않다. 어딜 가나 무시를 당하고 눈앞에서 코를 쥐며 악담을 퍼붓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멀쩡한 여자와 함께 길을 걸을 일도 많지는 않지만,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남들이 다가와 "왜 이런 이와 함께 다니느냐"고 오지랖을 펴는 경우가 생길 정도다.
 
그러나 똥지게를 지는 일은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똥을 싸고, 대도시인 에도 사람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구나 똥을 제때 퍼내지 않으면 똥간이 넘쳐 악취는 물론 일을 볼 수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화는 이를 재미있게 보여주는데, 폭우가 쏟아져 똥지게꾼들이 일을 하지 못한 며칠 동안 사람들이 온갖 곤란을 겪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으로 뒤를 막고서 집주인에게 변소를 내놓으라 항의하는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동안 객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똥과 웃음과 긴장과 해학이 함께 흐르는 이 순간은 마침내 등장한 똥지게꾼들로 단박에 해소된다. 그럼에 이들의 일이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말이다.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 Jeonju IFF

 
똥지게꾼과 무사의 딸의 사랑
 
똥밭에도 꽃은 피는 법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층민인 똥지게꾼에게도 그런 마음이 드는 때가 온다. 에도 변두리 쇠락한 동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한 여자가 산다. 그녀의 이름은 오키쿠(쿠로키 하루 분), 아버지인 겐베이(마키 쿠로우도 분)와 함께 살아가는 당찬 여성이다. 겐베이는 한 때 잘나가는 사무라이였으나 윗사람을 거스르는 말을 하다 쫓겨난 신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부녀에겐 그러나 옛 영광이 그대로 남아 허리를 곧게 펴고 말 한 마디 조심하며 벼려진 칼처럼 살아간다.
 
오키쿠가 사는 마을에 이따금 들러 똥을 푸는 츄지가 그녀를 마음에 둔다. 츄지가 종이를 팔던 시절, 글공부를 위해 그를 종종 만났던 오키쿠 역시 그를 마음에 품고 있다. 영화는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과정을 삶이 가져오는 어려움과 함께 내어놓는다.
 
영화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이며, 깊은 상처로부터 일어서는 성장기이자, 가장 밑바닥에서도 귀한 꽃이 필 수 있음을 알리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흑백의 화면 가운데서 더욱 선연히 빛나는 색채에 대한 것이며,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 Jeonju IFF

 
똥 같은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화는 거듭 이 세상이 똥과 같다고 말한다. 가벼이 지나치면 이 문장은 그저 세상이 썩고 더럽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똥은 츄지와 야스케의 먹거리가 되고, 그로부터 그들을 살게 하며, 다시 오키쿠와 같은 이를 일으키고, 그들 사이에서 귀한 감정이며 관계를 빚어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야스케는 엎어진 똥을 맨 손으로 그러모아 통에 담아 옮기고, 다시 그 똥을 정성들여 들판에 뿌린다. 그렇게 채소며 먹거리가 길러지고, 세상은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똥에도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귀히 여기는 이 영화가 이야기한다.
 
영화는 5월의 전주를 찾은 영화팬들에게 물짜장을 먹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불평을 들었으나, 엔딩크레딧이 모두 오른 뒤 진심이 담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나는 이 영화가 부디 더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키쿠와 세계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사카모토 준지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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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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