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패닉 ‘달팽이’ 무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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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이라는 명명만큼이나 파격적인 트랙이 다분히 포진된다. 초두에 언급한 '냄새 (Intro)'와 혼합 박자 가운데 미끌거리는 베이스가 꿈틀대며 굽이치는 '혀'는 순수한 소리 구성만으로 내면의 불쾌감을 자아내고 들춰내는 트랙이다. 여러 악기와 보컬 효과음이 치밀하게 쌓이고 교합하며 천천히 옭아맨다. 동시에 "내 깊은 곳 핥아주기라도 할 듯 내 몸을 휘감다가 / 소리 없이 나를 때도 없이 나를 끝도 없이 쭉 빨아" 등, 기억에서 씻기지 않을 만큼 강렬함을 남기는 노랫말이 쉴 새 없이 파고 들어온다.
12분가량의 대곡이자 삐삐밴드의 보컬 이윤정이 협업한 '불면증'은 미쳐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낸 파격의 정점이다. 비교적 정돈된 파트 분배와 멜로디의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에 이르러 급변하는 실험적인 양상이 그렇다. 모든 참여진이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채 남은 7분 동안 오로지 절규와 포효, 앳된 애드리브를 마구잡이로 교차한다. 격한 무질서가 자아내는 괴상한 질서, 문득 아방가르드의 교과서라 불리는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의 < Trout Mask Replica >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반면 마을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광대의 복수극이라는 섬뜩한 내용의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는 사운드적 연출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치밀한 서사만으로도 오싹함을 선사한다. 이적의 특출 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구간. '어릿광대 (insert)' 전주의 덤덤한 배경 설명, 뒤이어 우아한 클래식 화성과 날카로운 꽹과리가 등장하는 대비 구조가 기승전결에 몰입감을 더하며 한 편의 순도 높은 잔혹동화를 형성한다.
커리어에 있어 <밑>이 지닌 의의는 전작에서 미약할 수밖에 없던 김진표의 존재감이 처음으로 극대화된 시작점이라는 평가도 있다. 직접 작사, 작곡을 도맡은 데다 각각 교내 체벌 문화와 높은 교육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펼친 우울한 랩 트랙, '벌레'와 'Ma Ma'는 실제로 그 자극적인 가사만큼이나 화제를 끌어 여러 화두에 올랐다.
"벌레, 당신이 우릴 잘 다루는 솜씨가 마치 / 세게 때려놓고 살짝 쪼개는 당신은 미친 걸레"(벌레),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해줬잖아 / 그래도 사랑하는 내 새끼? 닥쳐 내일 난 죽어버릴 거야"(Ma Ma) 지금 봐도 상당한 수위다. 실제로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빗발쳤지만, 결과적으로 그룹 내에서 김진표의 영역을 굳건히 구축하고, 훗날 솔로 데뷔작이자 한국 힙합의 기념비적인 랩 앨범 <열외>가 등장할 수 있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