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에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변호인>이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송강호), 여우조연상(고 김영애), <명량>이 감독상(김한민 감독), <끝까지 간다>가 남우조연상(조연상)과 각본상(김성훈), 편집상(김창주)을 수상했다. 그 해 청룡영화상은 특정 작품의 '쏠림 현상' 없이 2013년 말부터 2014년까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들이 골고루 주요부문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그해 청룡영화상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도 있었다. 바로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였다. <써니>의 본드걸로 주목 받은 천우희는 아직 영화계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신예배우였다. 그런 천우희가 첫 주연작이었던 <한공주>를 통해 전도연(집으로 가는 길)과 김희애(우아한 거짓말), 심은경(수상한 그녀), 손예진(공범)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사실 <한공주>는 순제작비가 2억 원이 채 들지 않은 독립영화였음에도 전국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10억 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천우희라는 뛰어난 여성배우를 배출했다는 성과가 있었다. 이처럼 독립영화를 통해 스타배우로 성장하는 유망주들이 적지 않은데 지난 2011년에 개봉했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역시 이제훈과 박정민이라는 좋은 배우를 둘이나 배출한 의미 있는 독립영화였다.
 
 독립영화 <파수꾼>은 5000여만 원의 제작비로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독립영화 <파수꾼>은 5000여만 원의 제작비로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독립영화가 배출한 스타배우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거장' 봉준호 감독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만들기 전에는 <백색인> <지밀멸렬> 같은 단편영화를 통해 먼저 주목을 받았다. 오는 7월 신작 <밀수>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류승완 감독 역시 지난 2000년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액션키드'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독립영화에 출연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타배우로 성장하곤 했다.

독립영화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역시 '1억 배우' 하정우가 단연 독보적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조·단역을 전전하던 하정우는 2005년 대학후배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에 출연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은 <용서 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2022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까지 총 6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지난 4월 5일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에서 실존인물 강양현 코치를 연기한 배우 안재홍도 독립영화가 배출한 스타다. 안재홍은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고 2014년 극장 개봉한 블랙코미디 장르의 독립영화 <족구왕>으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은 후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안재홍은 현재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대중들로부터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여성배우들 중에서는 역시 전여빈을 빼놓을 수가 없다. 2018년 <죄 많은 소녀>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전여빈은 각종 독립영화 시상식은 물론이고 대종상과 올해의 영화상에서도 신인상을 차지했다. 전여빈은 이후 드라마 <멜로가 체질>과 <빈센조>, 영화 <낙원의 밤>에 잇따라 출연하며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전여빈은 올해 하반기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에 출연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겐 덜 알려졌지만 독립영화 쪽에선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이상희 역시 독립영화계의 성공적인 아웃풋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배우다. 2014년 <남매>로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2017년 <연애담>으로 들꽃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춘사영화상 신인상을 휩쓴 이상희는 <지금 우리 학교는>과 <소년심판>,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등 OTT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배우를 둘이나 배출한 독립영화
 
 이제훈(가운데)과 박정민은 <파수꾼>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젊은 남성배우로 성장했다.

이제훈(가운데)과 박정민은 <파수꾼>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젊은 남성배우로 성장했다. ⓒ 필라멘트 픽쳐스

 
<파수꾼>은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영화연출 전공) 출신의 윤성현 감독이 한예종 연극원 출신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만든 독립영화로 2011년 3월에 개봉해 2만 6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수십, 수백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였다면 초라한 수준이지만 <파수꾼>의 제작비가 5000여만 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흥행성적이었다. 실제로 <파수꾼>은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DVD와 블루레이가 발매되기도 했다.

남고에 다니는 친구들의 암묵적인 권력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사실적으로 다룬 <파수꾼>은 이동진, 김혜리 등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들에게 만점에 가까운 별 4개 반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파수꾼>은 음악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영화이기도 한데 이는 제작비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 독립영화의 비애였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영화의 건조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 <파수꾼>이 건진 최고 수확은 역시 오늘날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맹활약하고 있는 스타배우를 둘이나 배출했다는 점이다. '저런 미소년이 정색하면 더 무섭지 않을까'라는 윤성현 감독의 막연한 느낌에 따라 캐스팅된 이제훈은 편부 가정에서 자라 애정결핍을 앓고 있는 일진무리의 대장 기태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제훈은 <파수꾼>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며 한국영화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통해 '짜증연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박정민은 <파수꾼>에서도 발군의(?) '짜증연기'로 일찌감치 그 떡잎을 보여줬다. 놀라운 사실은 <파수꾼>이 몇몇 단편영화에만 출연했던 박정민의 첫 번째 장편영화였다는 점이다. <파수꾼>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박정민은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 아역, <응팔>에서 성보라(류혜영 분)의 전 남자친구, <동주>에서 송몽규 역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각인시켰다.

 <파수꾼>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휩쓴 윤성현 감독은 최고의 신예감독으로 떠올랐지만 첫 상업영화였던 <사냥의 시간>은 2020년에야 넷플릭스를 통해 선을 보였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의 두 주역 이제훈과 박정민을 비롯해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 등 인기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지만 N 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 5.67점으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파수꾼>의 동윤, KBS 일일 드라마 주인공으로
 
 동윤 역의 서준영은 <파수꾼>의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오랜 연기경력을 가진 '선배'다.

동윤 역의 서준영은 <파수꾼>의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오랜 연기경력을 가진 '선배'다. ⓒ 필라멘트 픽쳐스

 
<파수꾼>이 공개된 이후 스타배우로 떠오른 것은 이제훈과 박정민이었지만 기태 역의 이제훈과 함께 <파수꾼>에서 투톱 주인공으로 활약한 배우는 바로 동윤 역의 서준영이었다. 2009년 <회오리 바람>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초대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서준영은 <파수꾼>에서 기태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지만 희준(박정민 분)과 여자친구 세정(이초희 분) 때문에 기태와 점점 멀어지는 동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했다.

<파수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인 서준영은 같은 해 10월 SBS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서준영은 이제훈과 박정만처럼 <파수꾼> 이후 크게 주목 받진 못했지만 영화와 드라마, 지상파와 케이블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KBS 일일드라마 <금이야 옥이야>에서 사춘기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대디 금강산을 연기하고 있다.

남고를 배경으로 남학생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파수꾼>에서는 여성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동윤의 여자친구 세정을 연기한 신인 시절의 이초희는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파수꾼>으로 주목을 받은 이초희는 2013년 영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후 <후아유-학교2015> <육룡이 나르샤> <사랑의 온도> <한 번 다녀왔습니다> 등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파수꾼 윤성현 감독 이제훈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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