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사랑의 고고학>은 한 여성의 오랜 연애를 유물 발굴하듯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는 영화다. 독립영화로는 드문 긴 러닝타임으로 말한다. 163분 동안 공들여 관찰하는 동안 관객은 주인공과 물아일체 경험을 하게 된다. 상대의 교묘한 술수처럼 관람시간 동안 오롯이 지배 받는다.
 
영실과 인식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이해하는 물리적 시간에 공들인다. 분명 큰 사건의 줄기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지루함이 동반되지 않는다. 이완민 감독의 시네아스트적 연출, 깊은 사색하는 톤이 전작 <누에치던 방>과 겹쳐 보였다.
 
<누에치던 방>은 10대 시절 상실을 경험한 여성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모습을 그린다. 잠실을 배경으로 변해버린 관계의 끊어짐을 의미하는 상실(喪失)을 들추고 있다. <사랑의 고고학>은 그의 5년 만의 신작으로 청년기 여성의 고민 중 사랑을 매개로 독립적인 성장까지 아우르고 있다. 충분히 어울리지 않는 단어 '사랑'과 '고고학'을 한데 엮는다.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진 게 죄?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영실(옥자연)은 마흔의 고고학자이자 기간제 교사다. 작업이 없을 때는 생계를 위해 알바를 했다.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큼만 벌면 되었고,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김없던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롯이 혼자. 지난 8년을 곱씹기로 다짐했다.
 
8년 전 익산 발굴 작업 중 만난 인식(기윤)은 영실이 작업 중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며 생뚱맞은 행동으로 다가왔다. 찰나였지만 묘한 기류를 감지한 두 사람. 인식은 그 자리에서 음악 작업에 참여한 전시에 초대하고, 둘은 곧 연인이 되었다.
 
다 합쳐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진 영실은 인식과 행복한 연애를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불편하기만 했다. 사실 영실은 동거 중인 전 남자친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식은 이 사실을 알고도 쿨하게 이해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우연히 술자리에서 영실의 소문을 듣고는 주체할 수 없는 질투와 집착을 키워만 갔다.
 
옛 연인과의 모호한 관계 하나가 영실의 모든 성격이라고 단정해 버리고야 만다. 말끝마다, '헤픈 여자였냐', '자유로운 영혼이냐'는 몹쓸 추궁을 이어갔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뱉은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영실을 오랫동안 괴롭히게 된다.
 
연애의 종지부, 지금이라도 알면 된 거다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8년 동안 뒤틀린 관계를 유지하며 주인공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핀다. 40대에 들어선 여성의 복기이자 막연한 미래를 향한 느린 걸음걸이를 쫓는다.
 
처음에는 영실을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왜 느슨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있는 건지. 남자친구는 끊임없는 의심과 사과를 반복하는데, 모질게 떨쳐내지 못하고 매번 끌려간다. 억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영실은 이 모든 게 사랑이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고지식한 성격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영원한 사랑을 강요당하는 게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결국, 사랑이란 이름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존재로 전락하고야 만다.
 
뜨거운 감정이 식더라도 계속 만나자는 인식의 바람대로 영실은 최선을 다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저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 원리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성격을 이익 때문에 이용하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지금이라도 도망쳐!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영화 <사랑의 고고학>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가스라이팅'은 미투와 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데이트 폭력, 그루밍 성범죄, 스토킹 등으로 확산하며 관계의 상하관계 규정에도 쓰인다. 단어의 어원은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을 영화로 옮긴 <가스등>(1944)에서 유래했다.
 
남편의 지속적인 압박과 조작으로 불안이 커져 결국 통제력을 상실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에서 자주 일어나며, 지속적으로 상대방의 삶을 갉아먹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어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할 만큼 간섭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판단력은 흐려지며 상대방을 완전히 의존하게 된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조남주 작가의 소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주인공을 오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신입생때부터 사귀어 청혼까지 이어진 10년의 연애를 과감히 끝내려는 주인공의 각성으로 끝맺는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인이 자각해야만 하는 단순해 보여도 쉽지 않은 심리적 지배를 탐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물론 <사랑의 고고학>에서 영실은 스스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정면 응시할 용기를 얻게 된다. 한국에서는 유독 성(性)과 나이를 연결하길 좋아한다. 여자 나이 마흔이면 무엇을 시작하기 늦은 나이라 말하는데, 자신을 사랑하기엔 이른 나이다. 자기애를 실천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내 뜻과 무관하게 살았던 영실에게 해방감을 맛보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라도 괜찮고, 또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었더라도 소심해지지 말길. 연애의 끝이 자신 탓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길. 좀 더 목소리를 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길 응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사랑의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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