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진달래 축제 앞둔 창원 천주산 '제25회 고향의 봄 천주산 진달래 축제'(4월 8∼9일)를 하루 앞둔 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높이 638m 천주산 정상 주변 진달래 군락을 상춘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 진달래 축제 앞둔 창원 천주산 '제25회 고향의 봄 천주산 진달래 축제'(4월 8∼9일)를 하루 앞둔 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높이 638m 천주산 정상 주변 진달래 군락을 상춘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노래 '고향의 봄'에는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 꽃들이 등장한다.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적마다 꽃들을 하나 둘 머릿속으로 떠올리노라면, 평화롭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이는 한갓진 고향의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자는 이 꽃들이 어우러져 피어 있는 정경을 왜 '꽃대궐'이라 표현했던가. 꽃들이 얼마나 지천이면 그 모양새를 두고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단어들 중, '대궐'이라는 표현을 써야만 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노래를 따라 부르던 시절에는 들지 않던 의문이었다. 그래도 울긋불긋 산천을 수놓은 꽃들이 마냥 좋기는 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나면서 부터는 오히려 꽃에 눈길을 주지 않게 됐다. 때만 되면 지천으로 흐드러진 꽃보다 더 황홀하고 재미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주는 위험한 묘미에 빠져들었다고나 할까. 간혹 시간을 당기거나 늦추긴 해도 계절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 없이 피는 꽃들이 그렇게 한동안은 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바라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는 왠지모를 저릿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매양 피는 꽃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퇴적을 이루며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동안 잊고 있었던 통증. 그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였다. 특히 봄이면 온 산하를 뒤덮어 물들이는 진달래에 대한 경외심은 놀라움을 넘어선 어디쯤에 존재하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꽃이라는 의미로 수많은 꽃들 중에서도 유독 '참꽃'으로 불리는 진달래, 흐드러지고 무리 져 피어있어야만 아름다운 꽃 진달래는 4월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이면 남쪽으로부터 어깨동무를 하고 위로, 더 위로 어린아이처럼 흥겹고 천진난만하게 달려가는 것 같다. 하여 진달래가 피어나는 속도는 마치 갓난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에 버금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래 나가는 내내 느꼈던 전율
 
신비한 자줏빛 2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원미산 진달래동산에 진달래가 만개해있다.

▲ 신비한 자줏빛 2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원미산 진달래동산에 진달래가 만개해있다. ⓒ 연합뉴스

 
사람들의 마음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4월 들어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진달래꽃과 관련된 축제가 열리는 소식이 들리면 신청곡은 주로 '진달래 꽃'에 관한 노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외국가요를 번안해 이용복이 부른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로 시작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이 멧등마다'라는 가사 때문에 특히 처연한 '노찾사'의 '진달래'를 지나 이선희의 '진달래 꽃 유채꽃 한 아름을'의 '그리운 나라'로까지 이어졌다. 

해마다 봄은 오고 진달래는 어김없이 피어나기에 노래도 봄의 생명력을 따라 계속 살아나 '온 에어'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펴내곤 했다. 그렇게 계절은 시간이 흐를수록 끈질겨졌고, 노래는 더욱더 불멸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해서 봄, 그것도 4월이 되면 따로 선곡 걱정을 하지 않아도 많고 많은 진달래 노래들은 방송을 위한 큐시트 위에서 피어났다, 지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이 유난하게 느껴졌던 어느 해  4월, 록 장르에 녹아들어 새로이 피어 난 진달래는 익히 알아왔고 숱하게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곤 하던 그 진달래가 아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댈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대 행복하길 빌어줄게요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내가 떠나 바람 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그댄 그녈 사랑하겠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마야, '진달래 꽃' 가사 

교과서를 통해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시인의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여리디 여린 꽃으로만 읽히던 '진달래'가 마야라는 가수의 목소리를 갑옷처럼 입고 언제라도 전장으로 떠날 준비가 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라디오를 통해 이 노래를 흘려보내는 동안 내내 느꼈던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것이었다. 

사랑을 보내는 마음에 왠지 소심한 복수의 기운이 드리운 것처럼 보이던 소월의 시였다. 이런 시구가 마야의 힘 있는 목소리에 실리니 전혀 다른 헌화가가 되었다. 마치 나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씩씩한 인간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궁극적으로는 나는 누가 뭐래도 잘 살테니 당신도 이 꽃길을 걸어가 더 좋은 곳으로 가라는 축복이 돼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마야의 목소리만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삶(혹은 사랑)의 전투력을 장착한 듯했다. 마야가 목소리로 그려낸 진달래꽃은 시에서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 나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진격의 꽃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것은 아닐까.

진달래의 꽃말을 아는가, 어쩌면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말 '사랑의 기쁨'이다. 사랑의 기쁨이 불을 댕겨 온몸으로 타오르는 꽃, 그것이 진달래인 것이다. 꽃에는 이념도 사상도 없다. 그렇기에 이로 인한 갈등과 반목도 있을 리 만무하다. 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그 고유의 힘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4월도 깊어가는 이즈음 군락으로 피어 있어야만 더 아름다운 꽃 진달래가 일제히 꽃등을 켜든다. 그러니 이 꽃이 피어 있는 동안만이라도 모든 이념과 사상, 갈등과 반목을 넘어 오직 '사랑의 기쁨'만이 이 산하에 충만했으면 좋으련만.
덧붙이는 글 김혜원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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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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