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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의 일환 중 하나로 내세운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세웠던 주 69시간 노동제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자,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노동 정책에 대해 전문가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3월 31일 김영선 노동 시간센터 연구위원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장시간, 불규칙한 노동 발생할 것 알면서... 개혁으로 포장"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조사판이 놓여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조사판이 놓여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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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논의가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저도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마 조직 간의 소통 부족도 있을 테고요. 여러 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개편안 자체에 내재한 모순점 때문에 의견이 충돌하고 정리가 안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 어떤 모순점인가요?

"개편안 발표하면서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장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런 매력적인 가치들이 불건강과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는 개편안의 내용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이걸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우려는 점도 인지와 행동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가운데 이견들이 조정되지 않으니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왜 안 맞을까요?

"여러 연구에서도 (장시간 노동이) 불건강과 불균형을 유발한다는 결과들이 많고 그 결과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걸 개혁으로 포장하려고 하니 내부에서도 부대끼고 답답한 노릇일 것이라 봅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하는 게 역사적 흐름이라는 걸 알잖아요. 기후위기 맥락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이야말로 시대적 과제이고,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69시간제를 포장하려고 하니 얼마나 이견이 많겠습니까. 

또한 개편안은 그렇게 강조했던 법치주의와도 상충하는 안이라고 봅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안이기 때문에 스스로 법치주의의 발목을 잡는 자가당착적인 정책입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없고 오락가락하면서 스스로 어그러지는 와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 생각은 '일할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길게 쉬는 게 낫다'는 것 같은데.

"언뜻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발언이야말로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의 직장 생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몰아서 일하는 것의 불건강이라든가 일상생활의 불규칙성이라든가 건강 차원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사회참여, 여가 활동에도 상당한 불규칙성을 야기해 삶을 힘들게 만듭니다. 100번 양보해서 몰아서 일하는 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인 삶의 관점에서 질이 안 좋은 방식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69시간 근무는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하던데.

"극단적일 뿐이라는 멘트가 계속 나온다는 게 좀 섬뜩한 부분이 있어요. '69시간 상황은 극단적이다', '최대 기준일 뿐이지 그렇게 최대 69시간까지 꼭 다 일하는 건 아니다', '극단적인 예외를 들어 정책을 폄하하지 말라'라고 얘기하는데 상한 시간을 높여 놓으면 일을 최대치까지 시키는 게 현실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법 위반이 일상인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69시간제를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치부하는 건 정말 무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9시간이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왜 과로사나 과로 자살 같은 극단적인 비극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생하는지도 설명이 안 되는 거잖아요. 해외에서도 과로사를 'kwarosa'라고 고유명사로 표기할 정도죠. 사실 극단적인 가정이란 인식이 무지보다는 무책임으로 보이고요.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은 주 52시간제인데요. 이조차도 건강에는 안 좋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5시간 더 일하는 집단 또는 10시간 더 일하는 집단과 건강 영향을 비교하는 연구를 보면 후자들의 불건강 정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더 긴 시간 일할수록 운송노동자의 경우 요통 정도나 사고위험이 더 높아지고,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하지정맥류의 질환이 더 심하고, 통행료 징수원 같은 경우 방광염의 정도가 높아지고, 야간노동자의 경우 수면장애 비율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작금의 논의들은 불건강과 불균형을 야기하는 기이한 형국입니다."

- 작년 합계 출산율이 0.78 명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잖아요. 출산율 문제도 노동 시간과 연결된 것 같은데.

"질문의 문제 제기에 적극 공감합니다. 앞서 장시간 노동이 신체 건강이나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업종별로도 건강상의 장애를 선명하게 남긴다고 말씀을 드렸듯이 가족관계, 사회참여에도 불균형 정도를 높인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플라스틱 유발, 탄소 유발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고 이것이 지구 환경에도 문제이기에 노동정책은 환경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기혼 유자녀 노동자들, 특히 맞벌이의 돌봄 스트레스가 여러 형태로 보고되고 있는데, 직간접적으로 과로 체제가 결혼 기피 또는 출산 기피 경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경제 문제, 주거 문제, 교육 문제 등 여타 구조적 요인들이 많겠지만, 작금의 69시간제 또한 출산정책과 정반대되는 안이지 않을까요."

"선택적 소통하는 정부... 퇴행 개편안 저지해야"
 
너덜트 영상의 한 장면 . 모티터에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연장근로 도입 근무표가 나와 있다
 너덜트 영상의 한 장면 . 모티터에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연장근로 도입 근무표가 나와 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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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 주 69시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도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MZ 노조가 이야기하자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MZ 세대와의 더 많은 소통을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소통의 빈도가 아니라 소통 창구를 늘려서 다양한 집단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를 담으려는 노력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소통 부족의 단면이지 않을까 싶고요. 소통도 굉장히 선택적 소통이라는 인상입니다."

- 왜 그럴까요?

"사실 69시간제 안을 갖고 누구와 소통하려 해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저도 MZ세대의 의견을 앙케트 형식으로 간단히 조사해 보았는데, 95%가 반대를 표명했어요. 더 재밌는 건 그 이유에 대한 주관식 응답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피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려가 그만큼 강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더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 미리 판단했을 테고, 그래서 MZ세대와의 소통을 선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정부의 이런 선택적 소통도 자충수가 되었다고 봅니다."

- 주 69시간에 대한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비판 콘텐츠가 화제인데.

"저도 너덜트 콘텐츠를 나오자마자 봤어요. 주 69시간제가 유튜브 소재로는 재미있는 주제는 아닌데도 이게 조회수 230만을 넘었더라고요. 옛날 옛적의 소재들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230만이 넘는 콘텐츠로 회자된다는 게 참 씁쓸합니다. 10년 전 즈음 개인적으로 <과로 사회>라는 책을 낼 때, '이 주제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 거다', '다 낡은 주제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주제고 진짜 끝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때의 내용들이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러면 향후 10년 뒤의 미래는 어떨까 생각해보면 상당히 암울하고 두렵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될 거로 전망하세요?

"최근 여러 개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게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몰아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69시간제도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역사적 과정과 시대적 흐름을 무력화하는 모습이어서 꽤 무기력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경로의 문제 제기들이 퇴행적인 개편안을 저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나 건강권, 시간 권리에 대한 목소리와 움직임들을 결집한다면 퇴행의 경로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경로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그:#김영선, #노동시간 유연화, #69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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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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