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의 한 장면.

영화 '에어'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지금도 그렇지만 38년 전인 1985년만 하더라도 주요 스포츠 브랜드가 해야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명 스타선수와 계약을 체결해 자사 제품을 착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기업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다. 선수들이 착용한 운동화, 의류 등은 많은 소비자들이 구입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는 5일 개봉되는 영화 <에어>는 그 시절 농구화 시장의 최약체 브랜드였던 나이키의 성공을 이끈 마이클 조던 계약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신고 입는 대중적인 브랜드 나이키였지만 1985년 당시의 위상은 현재와는 전혀 달랐다. 편하게 착용하고 달리기 위해 탄생한 제품 답게 육상(런닝화) 분야에선 여전히 강세를 보인 기업이었지만 미국의 대중 스포츠 중 하나인 농구 분야에선 상황이 좋지 못했다. 요즘 세대에겐 캐주얼 스니커즈 브랜드 정도로 인색되는 '컨버스'가 전체 시장의 57% 가량을 차지했고 독일 업체 아디다스가 2위, 그리고 나이키는 현저히 열세를 보이며 3위에 그치고 있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부서이다보니 공격적인 마케팅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미국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 1~3순위 지명자들은 어차피 컨버스, 아디다스가 계약을 할테니 우리는 남는 선수 중 3명 정도 영입하자" 정도의 수세적인 위치에 놓였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농구 사업 부문은 조만간 간판을 내리고 대량 해고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신인 지명 3순위' 마이클 조던을 잡아라!
 
 영화 '에어'의 한 장면.

영화 '에어'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그런데 나이키의 농구 부문 선수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분)의 생각은 달랐다. 맨날 컨버스, 아디다스가 상위 순번 유망주들을 싹쓸이하고 남는 선수 중 몇명 영입하는 방식으로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1985년 당시 1순위 지명자였던 하킴 올라주원(휴스턴 로키츠), 2순위 샘 보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제치고 그의 눈에 들어온 선수는 3순위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였다.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재학 시절 NCAA 결승전에서 전설의 시작을 알린 점프 슛 하나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조던이야 말로 충분히 상품 가치가 있었고 당시 NBA 특급 스타였던 매직 존슨, 줄리어스 어빙, 래리 버드 이상의 대열에 올라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농구팬인 단골 상점 직원은 "키가 작아서 못 클 것이다. 평균 17득점이면 NBA에선 10득점 정도 밖엔 못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조던을 영입하는 건 도박이었다. 더 큰 문제는 예산 부족, 조던의 "아다디스 사랑"이었다. 조던의 에이전트는 계약금 외에 고급 승용차를 조건으로 내걸 만큼 비용이 만만찮았다. 선수 1명에게 25만 달러 정도의 거액을 쓰는 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아디다스를 좋아했던 MJ...어머니와의 무모한 면담
 
 영화 '에어'의 한 장면.

영화 '에어'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게다가 당시의 조던은 아디다스를 무척 좋아했었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 단체로 컨버스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경기 중에는 아디다스 농구화를 신을 수 없었다. 이제 프로가 된 만큼 내가 원하는 브랜드를 거액 받고 착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에 소니는 결단을 내린다. 조던의 생활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의 모친, 델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 분)을 직접 만나보기로 적정한 것이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버젓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소니의 이러한 행동은 자칫 업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데다 실패할 경우엔 나이키 농구 부서의 폐지로 이어질 수 있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마이클 조던의 열성 팬이라면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에어 조던' 브랜드는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는 베스트셀러 상품 중 하나이며 나이키는 스포츠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영화 <에어>는 어찌보면 소니의 조던 영입 시도 못잖게 제법 위험 부담을 지닌 작품 중 하나이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어느덧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이클 조던의 위상은 농구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의 일생은 각종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질 만큼 흔한 소재이기도 하다. 이에 벤 애플렉 감독은 살짝 다르게 이야기를 비틀어봤다. 마이클 조던이 극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그의 얼굴은 화면에 전혀 담기지 않는다. 오로지 뒷모습 정도만 내비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주인공이 될 수 있던 조던 대신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소니와 더불어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여사였다. 현재 각종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칠 만큼 진취적인 행동을 이어온 그의 모친은 오늘날의 조던이 있게끔 만든 장본인이었다. 소니와 그녀와의 면담은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계약 성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유쾌한 분위기의 드라마... 시대를 관통하는 명곡들의 대향연
 
 영화 '에어'의 한 장면.

영화 '에어'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른바 "조던 없는 조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유쾌한 입담에 힘입어 <에어>는 마치 스포츠 코미디 영화 마냥 즐거운 분위기를 2시간 내내 유지하면서 관객들을 치열한 스포츠 브랜드들의 무대로 끌어 들인다. 소니 뿐만 아니라 나이키 부서 속 다양한 인물 조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톡톡히 담당해준다. 

​소니의 상사이자 마케팅 담당 롭(제이슨 베이트먼 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언제 짐 싸서 나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니의 조던 영입 추진은 무모해보인다. 하지만 이내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영입 작전에 동참한다. 이밖에 나이키 CEO 필 나이트 (벤 애플렉 분), 떠벌이 농구 선수 출신 임원 하워드(크리스 터커 분), 욕쟁이 에이전트 데이비드(크리스 메시나 분) 역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나이키만의 고유한 구호 "Just Do It!"(그냥 해) 마냥 무모하게 진행한 계약 추진은 지금까지 나이키가 걸어왔던 진취적인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 <에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이야기를 화면으로 옮긴다는 부담감이 존재했지만 그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세밀한 배경 구성과 더불어 치밀한 연출, 전혀 구멍을 찾아 볼 수 없는 출연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 힘입어 지금까지 봐왔던 스포츠 드라마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마이클 조던 혹은 나이키 마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부담없이 즐길만한 영화로 추천할 만하다.

​이와 더불어 귀를 즐겁게 만드는 음악 또한 <에어>의 재미에 힘을 보탠다. 극 중 시대에 맞춰 대부분 1984~1985년 발표된 팝음악 명곡들의 대향연은 극중 이야기 전개 과정에 부합되는 장면 마다 등장해 선곡의 좋은 사례를 만들어준다.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된 'Money For Nothing'(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시작으로 당장 다음주 월요일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농구화 시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울려 퍼진 'All I Need Is A Miracle' (마이크 앤 더 미케닉스), 초조하게 조던 측 통보만을 기다릴 때 들려온 'Time After Time(신디 로퍼) 등 그때를 빛낸 곡들은 나이키 브랜드 이상의 존재감을 부각시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in.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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