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제작돼 개봉한 상업영화 <심야카페 : 미씽 허니>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제작돼 개봉한 상업영화 <심야카페 : 미씽 허니> ⓒ 케이드래곤 제공

 
지난해 11월 17일 개봉한 <심야카페: 미씽 허니>는 부산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부산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많지만, 부산에서 제작되는 영화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장편 상업영화의 개봉은 특별했다.
 
제작사인 케이드래곤 김희영 대표는 "부산에서 모든 촬영을 했고, 10억을 조금 웃도는 제작비가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인 김 대표는 서울에서 해외 공동제작 사업을 하다 몇 해 전 부산으로 귀향해 제작에 뛰어들었다. 웹드라마를 통해 창작 경험을 쌓은 뒤 첫 상업영화를 제작했다.
 
부산영화제가 큰 성공을 거두고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이전하면서 부산은 영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영화도시 부산은 형식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한국영화 제작에 있어 촬영지로 매력은 상당하나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장편 상업영화의 경우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의 제작사가 내놓은 대작 상업영화로는 2016년 12월 개봉해 485만 관객을 동원한 <판도라> 정도다. <심야카페: 미씽 허니>는 <판도라> 이후 오랜만에 개봉한 장편상업영화였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산 등록 제작사는 수입배급사를 제외하고 모두 240여 개 정도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제작지원을 하는 업체 5개 정도를 포함해서다. 전국 제작사 수 9500개의 2.5% 수준이다.
 
이들 중 실제 제작 이력이 있는 제작사는 공동제작과 단편영화 제작을 포함해도 60개에 불과하다. 2010년 이후 필모그래피가 있는 제작사는 50개 정도이고 2편 이상 작품을 제작한 곳은 20여 개에 불과하다.
 
지난 2020~2022년까지 3년간 부산지역에서 개봉 여부와 관계없이 제작이 확인되는 장편영화는 26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작한 11편을 빼면 실제 부산지역 영화인들이 제작한 장편영화는 18편 정도로 연평균 10편이 채 안 된다. 
 
1년에 제작되는 장편영화 10편 안 돼
 
부산의 제작사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상업영화보다는 주로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예술영화들이다. 대표적으로는 1994년 설립된 전수일 감독의 동녘필름으로 <라스트필름>(2021) <아메리칸 타운>(2017) <파리의 한국남자>(2015) 등을 꾸준하게 제작하고 있다.
 
영상집단 '탁주조합'이 <리틀보이 12725>(2018), <범전>(2015) 등을 제작했고,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오지필름은 <사상>(2020), <라스트씬>(2018), <기프실>(2018), <소성리>(2017), <밀양 아리랑>(2015)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리메인프로덕션은 <리메인>(2019)을 제작한 후, 동녘필름과 함께 <라스트 필름>(2021) 공동제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차별>은 최근 공개된 부산 제작사의 장편 다큐멘터리다.
 
 3월 22일 개봉한 <차별>.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조선 학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부산의 영화사가 제작했다.

3월 22일 개봉한 <차별>.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조선 학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부산의 영화사가 제작했다. ⓒ 이스크라21 제공

 
영화제작의 출발과도 같은 단편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영화전공 학과가 있는 대학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부산으로 옮겨간 이후 단편영화 제작은 활발해진 편이다. 지난 3월 개최된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서 다수의 작품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이들이 계속 부산에 남아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나 대학 졸업 이후 영화산업에 자리를 잡으려는 상당수는 충무로로 상징되는 서울로 향한다. 지역에서의 활동을 위한 조건이 충분히 않기 때문이다. 영화도시 부산의 허와 실이다. 부산영화제를 통한 성과가 정작 지역 영화제작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드래곤 김희영 대표는 "제작되는 작품이 적다 보니 지역에 상주하는 스태프들이 부족하다"라며 "일을 하려면 일감이 많은 서울 등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서울만큼 금전적 보상을 해줄 수 있고,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다면 굳이 부산을 떠날 필요가 없는데, 문제는 제작 프로젝트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희영 대표는 또한 "부산영상위원회의 장편영화 지원사업이 약하다"라면서 "그나마 2023년에는 1억이 늘어 최대 3억으로 개선됐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울러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졸업작품 제작을 지역영화로 구분해 지원하는데, 졸업 후 지역에서 거주하며 꾸준히 활동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차라리 지역 영화과 졸업생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 현지 영화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정작 부산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2018년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주)영화맞춤제작소 영화공장 오인천 감독도 후반작업의 어려움을 부산 제작환경의 단점으로 꼽았다. 주로 장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오인천 감독은 2019년 이후 웹드라마 3~4편, 영화 6~7편을 제작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13일의 금요일 : 음모론의 시작 >, <디엠지: 리로드>, <데스트랩> 등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이다.
 
다만 후반 작업을 제외하고는 부산 제작환경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후반 작업은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으나, 부산은 지역 영상위원회의 지원 구조가 잘 돼 있어 긍정적이고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오 감독은 지난해는 부산영화제 커뮤니티비프와 협력해 마을영화만들기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축제의 도시일 뿐, 영화산업 도시는 아냐"
 
 해운대 영화의 전당 옆에 위치한 부산영상위원회

해운대 영화의 전당 옆에 위치한 부산영상위원회 ⓒ 부산영상위원회 제공

 
부산영상위원회 측은 지역 영화인들의 문제 제기에 동의하면서도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대해서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라며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경우 부산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사업이 매력 있다 보니 다른 지역 제작사들이 부산과의 연고성을 따져 지원신청을 하고 있어 담당자들의 고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지난해 기획개발과 제작지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국내외 영화제 수상 이력이 있는 부산 제작사의 작품인 신나리 감독 <뼈>, 오세연 감독 <성덕>, 진용진 감독 <없는영화>, 정지혜 감독 <정순>(정지혜 감독) 등 4편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연간 제작 편수가 적고 지역의 영화제작사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부분은 고민이다. 지난해 10월 선임된 강성규 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은 "부산영상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계속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라며 "재임 기간에 제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하겠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 놓겠다"라고 말했다.
 
부산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독립예술영화 제작 활동은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편 상업영화 제작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지 않는 한 '영화도시'라는 지향점은 구호성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케이드래곤 김희영 대표는 "부산은 영화축제의 도시일 뿐, 영화산업 도시는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지역영화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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