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영화 <라라랜드>에서 미아를 연기하며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스톤은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겸비한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여성배우 중 한 명이다.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 이후에도 2018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2021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크루엘라>로 뛰어난 흥행성적과 함께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지금은 최고의 여성배우로 인정 받는 엠마 스톤이 세계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2012년과 2014년 두 편에 걸쳐 제작돼 도합 14억 6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엠마 스톤이 연기했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그웬 스테이시는 7년 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다시 언급됐을 정도로 <스파이더맨> 세계관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엠마 스톤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그녀가 이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하기 전부터 연기인생의 첫 번째 대표작을 만났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 후 제작비의 8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엠마 스톤을 비롯해 무려 4명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들이 출연하는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2011년작 <헬프>다.
 
 <헬프>에 출연한 4명의 배우는 <헬프> 이후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헬프>에 출연한 4명의 배우는 <헬프> 이후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3회에 빛나는 배우

1971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옥타비아 스펜서는 1996년 흑인소녀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법정영화 <타임 투 킬>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그 후 스펜서는 <경찰서를 털어라>와 <존 말코비치 되기> < S.W.A.T. 특수기동대 > <금발이 너무해2>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2000년대까지 스펜서에게 가장 유명했던 캐릭터는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분)를 놀리는 프로레슬링 대회 접수직원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여러 영화에서 조·단역을 전전하던 스펜서는 2011년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헬프>에서 가사도우미 미니 잭슨 역을 맡았다.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헬프>는 세계적으로 2억 1600만 달러의 눈부신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미니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스펜서는 <헬프>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5개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헬프>를 통해 인지도가 급상승한 스펜서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출연했다. 스펜서는 앞 칸에 빼앗긴 아들을 되찾겠단 일념으로 꼬리칸의 반란에 동참하는 타냐를 연기했다. 타냐는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본격적으로 반란을 결행하기에 앞서 소란을 피우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치킨을 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실제로 치킨은 <헬프>에서도 꽤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2014년 테일러 감독의 차기작 <제임스 브라운>에 출연한 스펜서는 2016년 10억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수달 부부 부인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2015년과 2016년 SF 액션영화 <다이버전트 시리즈:인서전트>와 <얼리전트>에 차례로 출연한 스펜서는 2016년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히든 피겨스>를 통해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스펜서는 2017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출연해 또 한 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여성배우로 자리 잡았다. 2019년 <헬프>의 테일러 감독이 연출한 공포스릴러 <마>에 출연한 스펜서는 2020년 앤 해서웨이와 함께 HBO 맥스 채널을 통해 공개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마녀를 잡아라>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편견을 버리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
 
 고용주의 친구와 친구의 가정부 사이였던 스키터(왼쪽)와 에이블린, 미니는 책을 함께 쓰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고용주의 친구와 친구의 가정부 사이였던 스키터(왼쪽)와 에이블린, 미니는 책을 함께 쓰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바스타 영화(주)

 
<헬프>는 지난 2009년에 나온 캐서린 스토킷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원제는 '가정부', '가사도우미'라는 뜻을 가진 < The Help >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의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백인작가와 흑인가정부가 힘을 합쳐 책을 출판하면서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는 영화다. <헬프>는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비올라 데이비스), 여우조연상(옥타비아 스펜서, 제시카 채스테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역 신문사에 취직한 백인여성 스키터(엠마 스톤 분)는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 분)과 미니(옥타비아 스펜서 분)의 도움을 받아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한다. 풍부한 가사경험은 물론이고 뛰어난 작문 솜씨까지 겸비한 에이블린은 초보작가인 스키터가 책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미니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스키터의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헬프>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통쾌한 장면을 선사해 주는 인물 역시 스펜서가 연기한 미니였다. 미니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집주인의 화장실을 사용하다가 집주인 힐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분)에게 걸려 해고를 당하고 다음날 초콜릿 파이를 만들어 할리의 집에 찾아간다. 하지만 파이 안에는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이 들어 있었고 파이를 두 조각이나 먹은 힐리는 미니에게 영원히 밝히지 못할 약점이 잡힌다.

<헬프>는 평단과 관객들에게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고 흥행성적도 매우 좋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영화라는 비판도 적지 않은 영화다. 실제로 흑인사회에 착한 백인영웅(?)이 등장해 흑인들을 도와주는 내용은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써먹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발이나 비판이 아닌 잔잔한 드라마와 인물들의 우정을 통해 넌지시 주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헬프>는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헬프>를 연출한 테이트 테일러 감독은 2003년 본인이 직접 출연하기도 한 <치킨파티>로 데뷔해 <헬프>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다. 2014년 고 채드윅 보즈먼이 출연했던 <제임스 브라운>, 2016년 미스터리 스릴러 <걸 온 더 트레인>을 연출한 테일러 감독은 2019년 공포영화 <마>를 만들었다. 테일러 감독과 옥타비아 스펜서는 <치킨파티>부터 <헬프> <마>까지 세 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두 명의 그웬 스테이시가 출연하는 <헬프>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연기한 힐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빌런' 캐릭터를 놓지 않는다.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연기한 힐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빌런' 캐릭터를 놓지 않는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펜스>로 2017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비올라 데이비스는 스키터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에이블린을 연기하며 책의 출판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에이블린은 백인이 운전하던 트럭에 치어 아들을 잃었던 경험이 있음에도 평생 백인 아이를 돌보는 보모로 살아왔다. 에이블린은 영화 후반부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해고되면서도 자신이 돌보던 어린 메이에게 "아씨는 친절하구요. 아씨는 똑똑하구요. 아씨는 소중해요"라는 덕담을 남긴다.

<헬프>에서 최고의 빌런은 역시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연기한 힐리였다. 힐리는 흑인 가정부를 대상으로 한 위생법(백인과 흑인이 같은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발의하려 할 정도로 엄청난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러면서도 '잭슨 주니어 연맹'이라는 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적지 않은 액수의 기부금을 모아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이다.

<헬프>에서도 힐리는 자신의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미니를 해고하는데 그로 인해 미니에게 파이 선물로 '참교육'을 당한다. 재미 있는 사실은 힐리를 연기한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2007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3>에서 피터 파커의 동창 그웬 스테이시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헬프>는 5년의 시간차를 두고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그웬 스테이시를 연기했던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 영화다. 

<헬프>에는 엠마 스톤과 비올라 데이비스, 옥타비아 스펜서 외에도 아카데미 트로피를 가진 배우가 한 명 더 출연했다. 바로 '순수함의 인간화' 셀리아 역을 맡았던 제시카 차스테인이다. 차스테인은 <헬프>에서 미니를 가정부로 고용하고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는 착하고 순수한 여성 셀리아를 연기했다. <헬프> 이후 <제로 다크 서티> <인터스텔라> 등에 출연한 차스테인은 2021년 <타미 페이의 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헬프 테이트 테일러 감독 옥타비아 스펜서 엠마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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