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이 위축됐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요즈음, 국내에 몇 안 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침체기에서도 나름의 자구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2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2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서울 북부에 속하는 노원구, 거기서도 대형 백화점과 큰 상점가가 즐비한 곳에 위치한 더숲 아트시네마는 지난 7년간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뿌리는 지역 서점이었다. 1994년 8월 1일 영업을 시작한 노원문고는 이후 2016년 2월, 문화플랫폼 '더숲'을 출범시켰다. 예술영화전용관, 130여 석의 카페, 전시를 위한 갤러리 공간이 한 건물에 생겼고, 경기도 의정부 및 남양주에서도 이곳을 찾아올 정도로 문화 명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더숲 아트시네마는 'GV(관객과의 대화) 맛집'으로 통한다. 1관 42석, 2관 40석, 총 82석으로 작은 규모지만 전국에서 GV를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극장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이호준 프로그래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화의 숲을 조성하다
 
더숲이라는 이름엔 '문화의 숲을 이룬다'라는 취지가 담겼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서울 중심부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희박했던 문화공간으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자는 마음이 담긴 곳"이라 창립 정신을 언급했다. 당시 노원문고 탁무권 대표의 선택은 문화 불모지와도 같았던 서울 북부권에 활력이 됐다.
 
"서울에서도 노원구가 인구 밀집지역으로 알고 있다. 아마 세 번째로 많을 것이다. 근데 여전히 서울에서 변방으로 생각하시거나 아예 존재를 모르시는 분도 많다. 하물며 문화 쪽에선 더욱 소외됐던 게 사실이지. 더숲 아트시네마가 생긴 이후 어떤 관객분이 명동이나 광화문까지 안 나가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기도 했다. 심지어 베드타운이 형성된 의정부 등의 일부 경기권 사람들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당시 대표님이 하신 것 같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더숲 아트시네마만의 정체성을 "영화가 끝나도 다시 시작되는 영화를 고민한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오락적인 영화야 근처 롯데시네마 노원을 비롯한 멀티플렉스에서 충분히 상영하는 만큼 이곳에선 살아남아야 하는 영화들,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들을 다양한 프로그램과 엮어 소개하고 있었다.
 
"다른 독립예술영화관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융통성있는 관점으로 다양하고 시의적절한 영화들을 편성하려 한다. 최근 <다음소희> 경우 개봉 2주차에 멀티플렉스에서 전부 빠지는 흐름이었는데 단체 관람 문의를 수용하면서 우리 극장이 나름 지켜낸 면이 있다. 노원이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들이 잘 수용되는 특징이 있다.
 
중장년층 비율도 다른 곳보다 높아서 그분들을 염두에 둔 영화들,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이 소재인 < TAR 타르 >와 그 작품 주인공인 케이트 블란쳇의 다른 출연작 <블루 재스민>을 같이 상영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엔 '무비 투게더'라는 기획전을 진행했는데 <소년시절의 너>를 상영하면서 우리 극장에서 단독으로 배우 주동우 출연작이었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가져와 틀었다. 그때 극장을 먹여살린 효자 작품이었다(웃음)."

 
앞서 언급한 갤러리 및 도서 담당자와도 유기적으로 연계해 상영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었다. 이를 테면 영화 <더 웨일>을 상영한 뒤 해당 작품에 주요 소재인 도서 <모비딕> 낭독회를 진행하는 식이다. 카페 공간 내 베이커리를 활용해 연계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운영의 묘였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퍼스트 카우>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튀김 빵이 있어 개봉에 맞춰 출시했는데 부산에서도 드시러 오거나 택배 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2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른 독립예술영화관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융통성있는 관점으로 다양하고 시의적절한 영화들을 편성하려 한다." ⓒ 이정민

 
골목 상권 침투에도 끄떡 안해
 
최근까지 더숲 아트시네마는 북서울권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6개월 전 인근 롯데시네마 내에 예술영화 플랫폼인 '아르떼'가 생기면서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이 됐다. 지역 예술영화관이 잘 되는 걸 보고 소위 골목 상권에 대기업이 침투한 셈이다. 실제로 롯데시네마 아르떼는 오픈 행사로 포스터 3종 세트를 선물로 주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솔직히 황망했지만, 영화를 애정하는 마음으로 멀티플렉스 극장과 결을 달리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무비 투게더'나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출신인 이상용 평론가와 함께 하는 '씨네 모어' 등 특징적인 G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 땐 많이 약해지긴 했는데 이런 콘셉트 상영회를 계속 해오고 있다. 이를테면 아나운서 출신 손미나 감독의 <엘 카미노>라는 작품과 2016년작 <나의 산티아고>를 같이 트는 식이다. <헤어질 결심> 땐 박찬욱 감독이 좋아한다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를 함께 소개했다. 이상용 평론가가 책과 철학에 조예가 깊다. 더숲이 가지고 있는 도서와 연계할 수 있는 지점이 많더라.
 
다행인 건 GV를 할 때마다 적어도 20명 이상씩은 채우는 것 같다. 배급사에서도 서서히 저희 제안에 귀를 기울인다.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전국에서 아마 우리가 GV를 가장 많이 하고 있을 것 같다(웃음). <역할들>이라는 독립영화는 조금 있으면 개봉 1주년인데 우리 극장에서 최초 개봉했다. 이후 상영관이 늘면서 2천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나름 산파 역할을 한 것 같다. 고봉수 감독 아내인 이주예 감독의 <보조바퀴>라는 영화도 단독 개봉했다. 작품 규모나 배급사 힘의 논리에 움직이지 않고 성실하게 영화를 발굴하고 수급하자는 취지가 있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독립영화인들에겐 더숲 아트시네마가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다소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지만 창작자들이 기꺼이 GV를 하러 극장을 찾는 이유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작은 극장일수록 프로그래머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믿음으로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발굴하려 한다. 나아가 아직 개봉되지 못한 한국 고전 영화와 감독님들도 빛을 볼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물론 여전히 극장 티켓 판매만으론 흑자를 낼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 이 프로그래머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당연히 적자"라며 "코로나19 기간 땐 주간 좌석점유율이 10프로를 넘는 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개관 이후 전성기 땐 좌석점유율 50프로를 넘기곤 했다. 문화 공간 플랫폼을 잘 활용해 당시 수익으로 2년 만에 2관을 열 수 있었는데 1년 뒤 팬데믹 상황이 왔다. 여러 기획전을 하는 등 자구책을 냈지만 언제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3년을 버텼다. 엔데믹이 왔다고 하는데 OTT 플랫폼이 약진하면서 과연 관객들이 극장을 다시 찾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기우였다. 좋은 작품, 기획이 있다면 관객분들은 오시더라. 다만 한국영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게 좀 뼈아프다. 특히 유튜브에서 요약 영상 보는 것에 익숙한 젊은 층이 2시간을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영화 쪽이 힘이 좀 빠진 것 같아 아쉽다. 지난해가 특히 한국독립영화 흉년이었다. 주목할만한 작품을 찾기 힘들었는데, 극장 입장에선 20·30대를 모실 수 있는 동력을 고민 중이다. 작년에 일본 독립영화의 기수로 불리는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철남>이라는 작품을 가져오기도 했다. 젊은 층이 극장에 올 만하다 여길 수 있는 여러 기획 상영을 해보려 한다."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 더숲 아트시네마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2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행인 건 GV를 할 때마다 적어도 20명 이상씩은 채우는 것 같다. 배급사에서도 서서히 저희 제안에 귀를 기울인다." ⓒ 이정민

 
예술영화 전용관이 제안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더욱 곤고해진 영화관 비수기를 타계하기 위해 더숲 아트시네마는 '필름 러버'라는 요금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5장, 10장 단위의 패키지 관람권으로 편당 8천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제도다. 이용금액의 3프로를 적립해 노원문고 및 더숲 플랫폼 전반을 이용할 수 있게 한 멤버십 또한 이곳의 특징이다. 작은 극장 스스로 치열하게 자구책을 고민하고 마련하는 상황에서 공적 기관이나 시스템에 바라는 바는 없을까. 인터뷰 말미 던진 질문에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몇 가지를 제안했다.
 
"극장 수익금인 부금의 분배율이 배급사와 5대5로 돼 있다고 하지만, 멀티플렉스 기준이다. 오히려 우리 같은 극장은 개인극장이라며 배급사가 6을 가져간다. 좀 기울어진 운동장이지 않나 싶다. <헤어질 결심>이 150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장기 상영하며 흥행한 건 결국 우리 같은 예술영화관들이 견인한 힘이 크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도 여전히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잖나. <노매드랜드>의 경우 우린 9개월 넘게 상영했다. 멀티플렉스에서 2주, 3주만에 내리는 기조라면 예술영화관은 뚝심 있게 오래 상영하자는 기조가 있으니 부디 동등한 입장으로 바라봐주시면 좋겠다."
 
나아가 이호준 프로그래머는 예술영화관 최초로 지역 사회 배경인 영화에 투자한 사실을 전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을 연출한 임진평 감독이 노원 104마을 다큐멘터리를 촬영했고, 해당 영화에 더숲 아트시네마가 투자한 것. 이 프로그래머는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독자성으로 우리 극장만의 이미지를 잘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더숲 아트시네마 노원구 이호준 예술영화관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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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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