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바뀐다. 없던 것이 생기고 있던 것이 변한다. 그리고 가끔은, 때로는 그보다 자주 무언가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 중에선 아까운 것들이 없지 않다. 이대로 없어져선 안 되는 곱고 귀한 것들도 제 자리를 잃는다.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 '산호 정원'도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 가운데 하나다.
 
사라지는 것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다. 두 팔 벌려 부서지고 밀려나는 것을 어떻게든 껴안으려는 이들이 있다. 세계 최대 연산호 군락지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이 일대를 꾸준히 잠수하며 그 파괴 현황이 어떤지 살피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시작은 2012년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건설되며 바닷속 생태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엔 화사하던 연산호 군락지가 이제는 뿌연 부유물로 덮여 참담하게 보인다. 40분짜리 다큐멘터리 <코랄 러브>는 비전문가의 눈에도 심각함이 드러나는 그 풍경으로 보는 이를 데려간다.
 
 <코랄 러브> 스틸컷

<코랄 러브>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제주 강정마을 연산호 군락의 변천
 
영화는 그 시작에서 제주도 바다 표면에 이는 은결의 반짝임을, 또 저 위에 선 다이버들의 모습을 비춘다. 이내 다이버들은 바다에 몸을 던지고 유영하며 색색깔 산호들을 찍는다. 세계 최대 산호군락의 아름다운 모습을 찍은 사진은 전시회에 내걸려 관람객을 맞는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다큐는 이내 내보인다. 2012년 이후 시작된 공사와 해군의 군 운용으로 일대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이버들은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로, 이들은 꾸준히 일대를 잠수하며 바다 속 연산호 군락지의 변천을 기록하여 문제를 고발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기존 생태계가 심각할 만큼 파괴됐다는 것으로, 그 주체인 해군과 지자체가 근본 원인을 밝혀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 그려지는 산호군락의 변천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초반 보여지는 화사함은 오간 데 없고 뿌연 먼지 속 살아남은 몇몇 산호의 초췌함이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다. 파괴의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항구는 크루즈 선박 항로를 내겠다며 있는 암반까지 추가로 들어내겠다고 한다. 생태계는 거듭 파괴되고 아름다움은 사라져간다.
 
 <코랄 러브> 스틸컷

<코랄 러브>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산호군락의 변화, 이대로 좋은가
 
<코랄 러브>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거듭 비춘다. 이소정 감독도 직접 잠수복을 입고 바다 속에 뛰어들지만 그보다 훨씬 능숙한 활동가들이 촬영한 촬영본이 바다 속 장면 대부분을 채운다. 숨을 참고 움직이고 멈추고 물 속에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인 탓이다. 영화는 그들이 촬영한 산호군락의 변화를 충격적으로 잡아내며 강정마을이 이대로 변화해도 좋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강정마을에 생긴 해군기지에 대하여 활동가들과 그 찬반을 달리하는 입장을 가졌을지라도, 이 영화가 보인 영상 앞에선 마음을 가다듬을 밖에 없다. 선 자리에서 눈을 돌렸을 땐 결코 보이지 않는 산호초들의 충격적 변화를, 또 이를 지키려는 이들의 귀한 노고를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러지는 생명들에게도 이름이, 또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비추는 이 다큐가 가치 있는 이유이겠다.
 
반짝다큐페스티발 다섯 번째 섹션으로 상영된 이 영화에 대하여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 나타났다. 관객과의 대화 가운데 번쩍 손을 든 한 관객은 수화를 통하여 이소정 감독에게 질문했다. 듣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인 그녀는 이 영화제가 마련한 배리어프리 통역과 자막을 통하여 영화를 보고 행사를 접한 것인데, 그중 한 순간을 따로 언급하며 질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코랄 러브> 스틸컷

<코랄 러브>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물 속의 청인과 물 밖의 농인, 그 질문의 감동
 
그것은 이소정 감독이 직접 잠수복을 입고 바다 안으로 들어갔던 순간과 그 뒤의 이야기였다. 이 감독은 잠수의 어려움을 말하며 바다 속에선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임도 제한되어 자유롭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듣고 말할 수 없음은 농인에겐 자연스런 일상으로, 질문자는 바로 그 순간에 주목한 것이다.
 
질문자는 "청인은 바다 속에 들어가면 듣지 못하지만 농인은 수어로 대화를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말하고 들을 수 없어 불편을 느끼는 바다 밑 상황이 도리어 농인들에겐 바다 위 보통의 상황이 아닌가. 다시 말해 바다 속에 들어가 불편을 겪는 상황은 농인들의 삶을 더 가까이 이해하는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감상에 감독과 많은 이들이 그 순간을 다시 보았고 감사를 표하였다. 그건 한 영화가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나 다른 감상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사례이며, 영화제가 관객에게 주는 특별한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장면을 위하여 우리는 영화제를 보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영화가 주는 다른 감상을, 또 그 감상이 일깨우는 자극을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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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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