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 포스터

▲ 파벨만스 포스터 ⓒ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가장 위대한 감독을 꼽으라 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가 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내로라하는 거장들이 수두룩한 게 할리우드의 오늘이지만, 그중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특별한 이름일 밖에 없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영화에서 칼라영화로, 나아가 각종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무장한 할리우드의 전성시대 그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영화감독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스필버그가 내놓은 작품은 하나하나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았다. 1971년작 <대결>에서 시작하여 1975년 <죠스>, 1977년 <미지와의 조우>, 1981년 <레이더스>, 1982년 <이티>, 1984년 <인디아나 존스>, 1993년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1년 <에이 아이>,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에 이르는 일련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영화계에 던진 충격이 어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SF와 스릴러, 드라마와 액션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며, 전 세계 관객을 감동시키는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연출이 가히 대가의 솜씨가 어떠한 건지를 입증하였다.
 
뿐만 아니다. 연출을 넘어 제작과 기획에 이르는 다방면의 관심이 <빽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로버트 저메키스 등 이른바 스필버그 사단 연출자들을 키워냈다. 이들의 작품들이 당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으니 1980년대로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의 중심에 스필버그가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거장의 신작, 이번에도 특별하다
 
파벨만스 스틸컷

▲ 파벨만스 스틸컷 ⓒ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2017년 <더 포스트>,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과 202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는 스필버그가 올해 또 한 편의 영화를 들고 찾아왔다. 이번엔 이전과는 조금쯤 다른 모양으로, 주제가 다름 아닌 영화 그 자체라고 하겠다.
 
그냥 영화 얘기인 것도 아니다. 미국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 분)가 영화, 그리고 예술에 눈을 뜨는 순간까지를 담아낸 작품으로, 단 몇 장면만 보아도 그것이 스필버그 자신의 이야기란 걸 금세 눈치 챌 수가 있다. 말하자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영화와 예술, 또 그와 사랑에 빠진 저 자신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전적 영화이며,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예술혼을 가다듬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는 새미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새미는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 분)와 아빠 버트(폴 다노 분)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다. 아빠와 엄마, 여동생 둘을 둔 미치의 일상은 어느날 본 영화 한 편으로부터 완전히 전복되기에 이른다. 활동사진이라 불리는 그 시절 영화관 안에서 새미는 처음엔 완전히 겁에 질렸다가 나중엔 압도되고, 마침내 매료되고 만다.
 
새미가 본 영화는 당대 최고의 명감독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다. 영화 도중 나오는 열차 충돌 장면은 특히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집에 돌아온 새미는 아빠가 사준 장난감 기차를 갖고 다른 장난감들과 충돌하는 장면을 재연하며 놀고는 한다. 아빠는 이러한 새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그가 왜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녀는 새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물건을 건넨다. 그건 다름아닌 아버지의 8mm 카메라다.
 
열망과 재능을 넘어 불안과 갈등에 주목하다
 
파벨만스 스틸컷

▲ 파벨만스 스틸컷 ⓒ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그저 영화에 대한 새미의 열망과 재능만을 담아내지 않는다. 대신 아빠와 엄마 사이의 균열과 그로인한 갈등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여느 영화와 달리 직장을 찾아 피닉스를 떠나 LA로 이사를 가려는 부부의 결정이 가져온 변화를 중요하게 다루며, 그로 인해 빚어지는 또 다른 갈등들을 가까이서 잡아낸다. 또한 새미가 눈치 챈 부부 사이의 특이점이며, 그로 인한 갈등 또한 섬세하게 잡아낸다.
 
이 같은 일련의 문제들은 새미에게 더 가까이 영화를 향해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한다. 영화는 그에게 도피처가 되며, 때로는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는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할리우드를 주름잡은 존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를 보고 친구들과 비슷한 영화를 찍기도 하며 더 깊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가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새미에게 삶과 영화의 대비는 선명해진다. 새미에게 삶은 예기치 않은 수많은 문제가 엉킨 복잡한 문제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에게 충실하지 못한 엄마, 또 그들이 빚어내는 수많은 갈등들은 새미를 불안케 한다. 또 그들 때문에 뒤바뀌는 새미의 학교생활이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다종다양한 사건들이 새미를 혼란케 한다.
 
반면 영화는 어떠한가. 새미는 그 안에서 실제 세상에는 전혀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괴롭히고 죽일 수 있다. 또 누구를 행복하고 즐겁게 하거나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또 누군가는 악당이 되기도 한다. 즉, 영화는 온전히 새미가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거부할 수 없는 영화에의 매혹
 
파벨만스 스틸컷

▲ 파벨만스 스틸컷 ⓒ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새미가 영화예술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비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편으론 숙명적으로 그를 CBS 방송국 면접 자리에 세운다. 담당자는 그를 우연인 듯 필연처럼 복도 맞은 편 존 포드의 사무실로 이끈다. 새미는 그렇게 그가 우상으로 삼아왔던 전 시대의 명장과 조우한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만난 포드가 새미에게 제 방에 걸린 그림 앞에 서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림을 설명하라고 한다. 그림 안에 담긴 이야기를 얘기하려던 새미의 말을 포드는 단박에 잘라버린다. 그리고는 지평선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다른 그림 앞에 다시 새미를 세운다. 새미는 또 무언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포드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는 또 지평선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지평선이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위에 있어도 흥미로워. 그런데 지평선이 중간에 있으면 뭣같이 지루하지. 그럼 행운을 빌고, 내 사무실에서 어서 꺼져버려."
 
새미가 포드의 사무실을 나와 그 유명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건물들 사이를 걷는 장면은, 그로부터 이어지는 다분히 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추켜세워 새미를 잡아내는 그 움직임은 다분히 이색적이고 인상적이다. 스필버그의 지평선은 더는 중앙에 있지 않다. 새미의 지평선 또한 그럴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이 영화가 어째서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영화예술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알도록 하는지를 보여준다. 카메라를 들어 올린 건 이 영화를 통제하는 스필버그이며, 포드의 조언을 들은 것 또한 바로 그라는 걸, 그럼에 새미가 곧 스필버그라는 걸 일깨우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파벨만스>는 바로 그 순간에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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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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