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네마

빛의 시네마 ⓒ 디즈니 플러스

 
< 007 스카이폴 > < 1917 > 샘 맨더스 감독과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로 아카데미 상을 거머쥐 올리비아 콜먼이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영화가 있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빛의 시네마>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록 시상은 불발되었지만 많은 영화제에 후보작이 되었다. 
 
영화는 바다가 보이는 소도시 극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힐러리, 그녀의 눈은 비어있다. 약병을 들고 고민하는 그녀, 하지만 정작 의사는 그녀와 눈조차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약을 꾸준히 먹으라 하곤 만다. 댄스 동호회에 가서 춤을 추지만 그저 몸만 움직일뿐, 물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그녀, 지금 힐러리의 상황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던 힐러리의 사랑 
 
 빛의 시네마

빛의 시네마 ⓒ 디즈니 플러스

 
영화는 그렇게 삶의 의미를 상실한 듯한 힐러리라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중년의 나이, 하지만 지난해에도 병원에 오래 입원한 적이 있던 힐러리에게 삶은 매일 먹어야 할까 고민하는 약병과도 같다. 힐러리의 무상함을 영화는 극장 매니저이지만 영화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힐러리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러던 그 극장에 젊은 스티븐이 들어온다. 그를 보고 설레이는 힐러리, 스티븐에게 극장을 소개시켜주던 중, 사용하지 않는 라운지에서 발견한 비둘기를 치료해주며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힐러리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모두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의사와 같았다. 극장주인 도널드는 수시로 그녀를 불러대지만, 그건 오로지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일뿐이다. 외면 당하거나, 수치심을 안겨주는 관계들, 그런 관계들 사이에서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을 갉아먹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티븐이 나타난 것이다.

매니저와 신참 직원 이상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극장의 폐쇄된 라운지를 찾는 사이가 되었다. 표정이란 게 없던 힐러리의 표정에 생기가 돌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댄스 동호회에서 흥겹게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시대극으로서의  <빛의 시네마>

중년 여성과 신입 직원의 사랑, 하지만 <빛의 시네마>의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이다. 대처가 수상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은 고단한 시대였다. 마찬가지로 유색인종이자, 간호사로 일하는 미혼모의 아들인 스티븐은 대학에 가고픈 꿈이 있지만 좀처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시대였다. 영화 속 한 신, 극장 밖으로 스킨 헤드의 젊은이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과격한 시위를 벌인다. 그들은 서둘러 극장문을 닫던 직원들 중에 스티븐을 발견하고 유리를 깨고 들어와 그를 집단 린치한다.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본 적조차 없어 마음에 병이 생긴 여성 힐러리와 여전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스티븐이 만나 연민을 넘어 사랑에 이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버스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던 시대였다. 둘의 관계를 눈치챈 극장 직원이 경고를 하고, 스티븐은 지레 관계로부터 도망친다. 막막한 세상에서 겨우 스티븐이라는 '삿대'를 쥐었다 싶었던 힐러리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치는 스티븐으로 인해 아주아주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을 터트리고 만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이 외진 극장에 시장까지 출동하는 개봉 영화의 시사회날이었다.

유명 영화 배우와 시장까지 출동한 영화 시사회, 순서에도 없는 힐러리가 등장했다. 채 잠겨지지 않은 드레스, 이까지 번진 진한 립스틱, 한눈에 보기에도 제 정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당하게 단상에 올라간 그녀는 오늘같이 특별한 날, 그 누구도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회구성원으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후 W.H 오든의 시를 낭송한다. 
 
마음의 욕망은 코르크 마개처럼 튀틀렸으니/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중략)
할 수 있는 한 춤을 추어라, 춤을 추어라, 춤을 추어라 

영사기사 노먼(토미 존스 분)은 말한다. 영화란 인간의 착시 현상으로 인해 연속된 이미지들이 빛으로 보여지는 환상이라고. 그렇듯 <빛의 시네마>는 제목처럼 영화 속 등장하는 영화라는 환상 동화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특별한 시사회에서 상영된 <불의 전차>이다. 

1981년 개봉된 이 영화는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했던 1942년 런던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유대인으로서의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나선 해럴드와 종교적 신념을 위해 경주에 나선 에릭이라는 두 상반된 가치관의 인물들이 올림픽 경기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화해하고 승리를 일구는 대표적인 감동 스포츠 영화이다. 
 
 빛의 시네마

빛의 시네마 ⓒ 디즈니 플러스

 
극장 안에서 상영되는 <불의 전차>, 그런 극장 밖에서 폭력적으로 질주하는 스킨헤드 그리고 상영에 앞서 사회적 소외가 없어야 한다는 힐러리의 돌발 발언, 이 묘한 대치적 긴장감을 통해 샘 멘데스 감독은 <불의 전차>의 배경이 된 1942년 이래 <빛의 시네마>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그리고 이제 이 영화가 개봉된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종교와 인종, 그리고 가치관을 둘러싸고 끝없는 대치와 갈등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소외는 없어야 한다던 힐러리의 발언은 그저 그녀의 도발일 뿐이었을까. 비록 무너져버렸지만 힐러리는 스티븐이 주춤거리는 것을 보며 지금까지 그녀를 대해왔던 남자들의 일관된 무책임한 태도와 마찬가지라며 분노한다. 스티븐이라는 위로가 외려, 그녀의 소외감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다시 시작된 힐러리의 오랜 투병, 그리고 스티븐의 집단 린치로 인한 병상 생활, 이제는 서먹해져 버린 두 사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은 힐러리에게 스티븐의 어머니가 아들이 당신으로 인해 많은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전한다.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오던 힐러리가 생전 처음 들은 '호의', 그리고 '인정', 돌아온 힐러리는 비로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등장한 <빛의 시네마>의 두 번째 작품, 저지 코쉰스키의 원작을 할 애쉬비 감독이 영화화한 1979년작 <찬스(Being There)>이다. 영화의 내용은 글도 쓸 줄 몰라 TV만 보고 정원만 가꾸던 노정원사가 주인이 죽고 비로소 길을 떠나 세상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은 말한다. 삶은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힐러리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너무 좋았다고, 함께 자주 보자고 하는 힐러리, 그런 그녀에게 스티븐은 대학에 가게 돼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또 힐러리가 무너질 차례일까. 아니 그녀는 이제 기꺼이 그를 보낸다. '뿌리채 뽑히지 않는 한 괜찮을 거예요'라며 '새롭게 시작하'라는 한 편의 시와 함께. <찬스> 속 노정원사는 세상의 길을 떠나지만, 힐러리는 비로소 그녀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직장이 있는 곳, 극장으로. 

<빛의 시네마>는 안타깝게도 과유불급이었다. 하지만, 힐러리라는 한 여성이 사랑의 인정을 통해 스스로 삶을 구원하는 과정은 올리비아 콜먼의 연기력에 힘입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빛의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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