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 CJ ENM

 
영화를 좋아한다면 오프닝에서 감격의 눈물이 차오를 것이다. 관람 내내 '내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곱씹었다. 나는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영화를 좋아하던 아빠의 영향으로 주말이면 비디오를 빌려 다 같이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받았던 충격과 공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 충분했다. 그 습관은 극장을 찾아가는 취미로 발전했다. 영화 좀 그만 보란 엄마의 타박과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을 딛고, 영화로 밥벌이하고 있으니.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엉뚱한 천재 영화학도의 시작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 CJ ENM

 
<파벨만스>는 잊고 있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세상에 수많은 스필버그 키드를 만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를 담았다. 유대인 혐오가 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계기다. 언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전 세계 관객을 빠져들게 한 독창적인 세계관, 제작 방법 등을 이해하는 영화 창작 교본이기도 하다.
 
또한 파벨만 가족에 관한 기록이면서 영화를 향한 러브 레터다. 자신과 누이들의 기억을 맞춰 각본가 토니 쿠슈너와 공동 각본을 썼다. 마치 영화로 쓴 자서전처럼 70년 전 빛바랜 기억을 더듬어 완성했다.
 
하지만 제목만 듣고는 자전적 이야기임을 짐작하기 어렵다. 성씨인 'fabel'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fabel'은 우화나 전설이란 독일어에 'man'을 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즉,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할리우드 공장장이자 꿈꾸는 사람 본인을 지칭한다.
 
그가 가장 사적인 영화라고 할만한 오랜 기억에는 '가족'과 '영화' 두 가지가 있다. 그토록 많은 작품에서 결핍과 고통, 성장을 담은 가족 서사가 유난히 많았던 이유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 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면서도 상처 극복을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태도는 의외다. 지금의 성공을 자축할 것 같지만 오히려 치부를 솔직하게 밝히면서 자신을 증명해 낸다.
 
2004년부터 틈틈이 준비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작고 후에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용기가 생겨났을 거다.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준 부모님의 불화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성장하는 아이에게 이보다 더 큰 불안이 있었을까. 영화를 만들다가 우연히 알게 된 비밀은 평생을 쫓아다니는 트라우마가 된다.
 
겁 많은 꼬맹이가 난생처음 접한 충격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 CJ ENM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관람한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 충격에 빠진 어린 새미(마테오 조리안). 집에 돌아와서도 기차 충돌 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철로를 버티다 기차와 부딪히는 잔혹한 교통사고 순간에 매혹된 새미는 그날 밤 잠을 설친다. 꿈속에서 재생되는 열차 탈선 사건이 너무나 무서웠다.

"궁금하면 직접 해보는 거야."  

이후 아빠 버트(폴 다노)가 사준 장난감 기차로 그 장면을 재연하며 호기심을 충족하던 새미는 이를 눈여겨본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선물로 영화 제작에 발 들이게 된다. 엄마는 8mm 카메라로 담아 두면 실제 충돌 없이 무한 반복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토마토를 냄비에 넣고 끓이면 토마토가 폭발할까'라는 호기심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던 엄마의 교육관은 아이의 토대가 된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의 천재성은 일찍이 깨어났다. 상상력을 적극 지지해 준 예술가 엄마와 엔지니어적인 사고를 길러준 아빠가 있었기에 지금의 스필버그가 존재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새미에게 홀연히 나타나 대중문화 전반을 가르쳐 준 삼촌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더해졌다. 평범하지 않았던 자녀의 재능을 알아본 선구안, 억누르지 않고 기질을 키워 준 멘토링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후 새미는 일상을 카메라로 담으며 모든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행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픔과 슬픔, 고난과 비극을 견디며 훗날 영화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가족과 친구를 동원해 영화를 만들며 상영회도 갖는다. 나아가 학교에서 영화학도로 인정도 받는다. 졸업해 다들 대학에 갈 때 영화사 문을 두드리며 제작자의 시작을 알리며 영화는 끝난다.
 
상처를 자양분 삼아 꽃 피운 사람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영화 <파벨만스> 스틸컷 ⓒ CJ ENM

 
영화는 끝났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완벽한 수미상관을 이룬다. 스필버그가 하고 싶었던 영화, 가족, 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져 모두의 마음에 꿈을 불어넣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스필버그는 유대인으로 받았던 차별을 반영해 <쉰들러 리스트>를,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경험을 빌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들었다. 이혼 가정의 아픔을 < E.T >에서 녹여 냈고, 엄마를 너무 사랑한 아이의 마음을 < A.I >에 쏟아냈다. 광활한 서부에서 뛰어놀며 가졌던 상상은 <미지와의 조우>가 되었다. 원숭이와 가족이 되었던 엉뚱함은 훗날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워 호스> 같은 동물 친화적인 영화에 반영된다.
 
고정된 이미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은 현상, 1초당 24프레임의 눈속임을 우리는 '영화'라 부른다. 따라서 영화를 활동사진, 편집의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본인 인생을 편집해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해버린 치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영화로 성공한 가장 영화 같은 삶을 산 사람. 스티븐 스필버그를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가 아닐까.
파벨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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