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일 경찰청 산하에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설치될 때만 해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크게 와닿는 소식은 아니었다. 심지어 국수본 설치와 관련 이슈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면서 생겨났던 정치적 갈등은 뜨거웠지만 정작 국수본이 출범하고 나서 그 온도는 사뭇 달랐다. 

별다른 이슈가 없이 2년 정도가 지나서야 국수본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2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 무마 논란이 걷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낙마했지만, 여전히 불꽃은 살아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난 걸까. 왜 막을 수 없었던 걸까.

검사 아빠, 모든 방법을 동원하다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 MBC

 
지난 19일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는 시간을 6년 전인 2017년으로 돌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 폭력을 조명했다.

당시 민족사관고(민사고)에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정 군에 의한 학교폭력이 문제가 됐다. 진보 성향 신문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고 욕하기도 하고, '제주도에서 온 돼지'라고 하는 등 할 수 있는 언어적 모욕은 다 한 것이다. 피해 학생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2018년 3월 민사고에서는 정 군에게 전학처분을 결정했으나 4월 정순신 측에서 재심을 요청했다. 그로 인해 학생징계조정위원회가 개최되어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증언해야 했다. 그런데 정 군은 조정위에 중간고사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조정위원은 불출석한 정 군을 나무랐지만 정 군 측 변호인은 오히려 "남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욕을 하거나 하는 일은 많이 하는 일"이라며 자살 시도를 한 이유가 그것만인지는 알 수 없다는 말로 피해자를 나무라기에 이른다. 

알고 보니 이 변호인은 정순신의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공교롭게도 징계위는 가해자의 강제전학을 취소시킨다. 민사고를 올 정도면 똑똑할 텐데 가해자의 아버지가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증언을 못 했을 리는 없다는 한 징계위원의 말에 다른 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담긴 회의록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피해 학생 부모가 재심을 요청한 뒤에야 강제전학이 확정됐다. 그러자 가해자는 법률적 지식을 총동원하기로 한다. 언론에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행정소송을 걸어 시간 끌기를 시도한 것이다. 박은선 변호사는 가해자 측이 '행정심판 집행정지'와 '행정소송 집행정지'를 모두 시도했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모든 걸 다 했다"고 지적한다.

행정심판위는 가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법원에서는 패소했다. 그러자 이를 대법원까지 끌고 가는 방식으로 시간을 더 끌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직전에서야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 끈질긴 시간끌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 전말을 모두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대체 인사검증을 어떻게 한 거지?

대통령실, 인사검증에 실패하다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 MBC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MBC 스트레이트 <아빠 찬스, 검사 찬스... '검찰 왕국'의 신화> 한 장면. ⓒ MBC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해 피해자의 삶에 타격을 입힌 사람이 수사의 총괄책임을 지는 국수본부장에 오른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한 정 변호사는 '자연스럽게' 경찰 출신 후보를 제치고 후임 본부장 후보가 됐다. 

2018년 당시 해당 사건이 보도될 때 정순신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검장이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3차장검사였던 서울중앙지검에서 인권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 검찰총장에게 보고하고 기관장에게 알려주므로, 절대로 모를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한 법무장관은 본인은 몰랐다고 했다. 심지어 정 당시 검사는 2017년 '검사 돈 봉투 사건'의 당사자기이도 했고 화천대유 사건의 김만배를 변호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을 검증 과정에서 알 수 없다면 대체 윤석열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후보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실과 1차 검증을 맡는 인사정보관리단, 최종검증을 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대부분 전현직 검찰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할까. 혹시 그 정도로 검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우리끼리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오만함. 대통령실이 인사 검증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윤 대통령이 자랑했지만, 정작 추천과 검증은 여전히 맡고 있고, 인사정보관리단이라는 조직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 어떤 사람을 어디에 앉힐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의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검증해야 한다. 정권 초기부터 인사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는 걸 <스트레이트> 방송이 보여 준 게 아닌가 싶다. 정순신 국수본부장 임명 논란이 아무 이유 없이 터진 게 아닐테니 말이다. 
스트레이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 학교폭력 인사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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