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별> 포스터 이미지

영화 <차별> 포스터 이미지 ⓒ (주)디오시네마

 
영화로 만나는 조선학교의 풍경
 
해방 당시 재일조선인 숫자는 식민지 조선 인구의 1/10에 가까웠던 200만 명에 달했다. 광복 이후 다수가 귀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만 명이 여전히 일본에 체류하게 되었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단일민족국가라 주장하는 일본사회 내 큰 외국인 집단 중 하나를 차지한다(1위는 중국, 2위권으로 베트남과 경합 중이다). 제주 4.3사건 때문에 생존을 위해 일종의 역이민이 이뤄지기도 했다. 식민지 지배 당시에도 2등 국민으로 차별을 당하던 이들이 좋아서 일본 땅에 남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경제적 기반 때문이거나 혼란한 해방 직후 정세 때문에 귀국을 연기하던 경우가 허다했다. 이들은 돌아갈 고국에 적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준비를 십시일반으로 마련한다. 조선학교의 출발이다.
 
해방 직후 일본 내 재일조선인들은 언젠가 통일된 조국으로 귀환하거나 혹은 일본사회 내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속하기 위해 '국어강습소'란 이름의 사설 기초교육기관을 전국에 설립하기 시작한다. 이 강습소가 발전된 '조선학교'는 미군정 당시부터 탄압을 당하면서 4.24 한신 교육투쟁 등의 기억을 남기지만 악착같이 버티면서 '민족교육'을 실시한다. 다수의 재일조선인 2세와 3세들이 조선학교에서 초중등교육을 받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일본 사회 내 혐한 차별도 이곳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에겐 험난했지만 자긍심이 함께 한 기억으로, 누군가에겐 '조국'이나 '민족'에 얽매이지 않고 싶지만 가족의 요구로 다녀야만 했던 조선학교의 기억이 재일조선인을 넘어 일본사회와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조선학교를 배경으로 21세기 초입부터 국내에도 소개된 다수의 일본 상업영화가 제작되었다. 실제로 조선학교 출신인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경험에 바탕을 둔 2001년 < GO >,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2005년 <박치기!>와 2007년 속편 < 박치기! LOVE & PEACE > 등이 조선학교를 주요 배경으로 다루며 상업적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어낸 사례들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들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좀 특색 있는 일본영화처럼 소개되는 데 그치곤 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재일조선인 문제에 무관심하고 실상 아는 게 없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이런 피상적 호기심을 넘어서는 시도는 2006년, 한 편의 기록영화를 통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다.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는 한국사회에서 '조선학교'가 '발견'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다. 실제로 1년 동안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머물며 밀착 촬영한 해당 작품을 통해 일회성 겉보기가 아닌 실제 학교의 풍경이 소개된 것이다. 21세기에도 일본 내에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려 분투하는 이들의 존재가 관심을 얻으면서 꾸준히 관련 작업이 재일동포 당사자들 및 국내 다큐멘터리 작가들에 의해 진행되는 중이다. 김명준 감독은 재일교포 중 한국사회에 가장 잘 알려진 존재들이라 할 야구선수들의 이야기를 2014년 <그라운드의 이방인>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한번 물꼬가 트인 이 매력적인 소재는 이후 다양한 단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들로 이어진다. 이일하 감독은 같은 해에 청춘 스포츠 장르와 조선학교 속사정을 결합한 <울보 권투부>를 완성한다. 조선학교 럭비부를 배경으로 한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 60만번의 트라이 > (2013년), 조선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 여정을 담은 박영이 감독의 <하늘색 심포니> (2016년), 같은 감독이 본격적으로 1948년 한신 교육투쟁부터 현재까지 조선학교 70년 역사를 기록한 <사이사-무지개의 기적> (2019년) 등 적지 않은 숫자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된다. 그리고 최신작으로 <차별>이 막 도착하는 중이다.
 
조선학교 차별문제의 정치성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 (주)디오시네마

 
하지만 조선학교의 작금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귀국하지 않았던 다수의 재일조선인들이 점차 일본국적으로 귀화하면서 일본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조선학교의 세는 줄어들었다. 조선인 3세 이후로 그런 경향은 가속화되어 왔다. 여기에 조선학교의 정치적 우군이던 일본공산당, 재정적 기반이던 조총련과 북한 정부의 쇠락이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하필 일본의 우경화가 심화된 21세기 들어 사회적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리려는 정치적 프레임 속에서 조선학교는 샌드백처럼 거듭해서 탄압받는 중이다. 조선학교를 향한 전 방위 공격은 곧 일본사회 우경화의 바로미터인 셈이다.
 
조선학교의 차별반대 투쟁을 다룬 몇 편의 기록영화 속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일본 정부는 안면에 철판을 깐 듯 앵무새 마냥 기계적 주장을 반복하며 '답·정·너' 억지를 반복한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권고를 하건 말건, 재학생과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이 합심해서 호소하건 말건 경청하고 소통할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철저하게 조선학교 차별이 정치적 기획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학교'로 분류된 조선학교는 무상교육이 확대되는 와중에서 지원금 적용 제외는 물론 코로나19 대비에서도 소외된다. 심지어 일본 청춘 학원물에서 단골인 전국대회 출전도 금지를 당해왔다. 그저 한국사회 대안학교들이 겪는 불편과 비교하기엔 그 강도나 제한범위가 과도한 수준임을 조금만 고찰해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차별>에선 일본 전역에 산재한 조선학교들이 고교 무상교육 혜택에서 부당하게 배제 당하는 처사에 항의하는 소송을 비롯한 법정투쟁 진행상황과, 싸움의 일환으로 조선학교 활동과 역사적 의의를 소개하는 국내외 연대활동이 소개된다. 관련 배경을 다룬 영화들을 꾸준히 찾아본 이들이라면 제법 익숙한 배경과 사건, 몇몇 등장인물들이 눈에 밟힐 만하다. (<우리 학교>의 김명준 감독은 여기에선 감독이 아닌 조선학교 지원단체 '몽당연필' 활동가로 출연한다) 그런 면에서 본 작품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잊지 말아달라는 염원을 전하듯 다시 한 번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져가는 외로운 섬처럼 맴도는 조선학교의 기원과 그간의 역경, 그리고 현재적 의의를 꾸준히 복기하게 만든다.
 
'우리를 보시라~' 하며 자랑찬 표정으로 활짝 웃던 <우리 학교> 속 조선학교 재학생들의 얼굴은 이제 거듭된 부당판결과 패소 속에서 자주 지치고 눈물 흘리는 풍경으로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결의를 다잡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실제 사례가 <차별>에는 가득 담긴다. 굳이 저렇게 힘겹게 조선학교를 지켜야 하는가 안쓰러움이 쏟아지는 순간도 영화 속에는 적지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그저 청소년기 몇 년을 보내는 데 그치는 문제가 아님을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고야 만다. 이들의 존재는 격동과 수난의 한국 근현대사를 표상하는 살아있는 화석 그 자체인 동시에, 미래로 이어지는 타임캡슐 같은 무게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전히 조선학교의 무게감은 묵직하고 그 상황을 일독하는 건 시사점이 넘쳐난다. 그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 바로 본 작품이다.
 
기막힌 타이밍에 도착한 영화의 시의성
 
<차별>의 개봉일 결정 당시에 의도한 바는 결코 아닐 테지만, 하필 이 영화가 (소수 영화제에서 지극히 제한된 상영 외에) 일반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게 될 시기에 마치 일부러 짠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이 조성되어 버렸다. 2023년 3월 초부터 격동하는 한일관계 재구성 논란은 이 영화에 담긴 과거사 반성과 현실의 차별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진정성 여부를 거듭 소환하는 촉매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일본정부가 진실로 역사적 과오를 사과하고 미래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검증하는 척도의 하나로 조선학교 문제가 기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해당 작품이 근래 얼어붙은 극장가에 희망이 되어줄 흥행 실적을 선보이긴 힘들 테다. 그럼에도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이 본 작품의 의의와 가치를 제고하는 측면에선 분명 플러스 요소가 될 법하다.
 
<차별>은 일본 내에 존재하는 '조선학교' 문제를 주제로 삼지만 특히 2017~2021년 사이 벌어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투쟁 과정이 핵심 줄거리다. 해당 작품은 조선학교의 탄생과정 및 존재근거를 풀어내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당하는 부당한 조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영화에 대한 호오 평가에서 핵심이 된다. 즉 영화적 연출보다는 지극히 주제중심적인 작품인 셈이다. 물론 단순한 선전 프로파간다 영화로 한정짓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의 초점은 아무래도 영화미학보다는 시사적인 정보와 의미 전달에 맞춰질 테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장기집권 이후 '보통국가화'를 내건 자민당 정권은 끊임없이 안보위협을 내세우며 그 실례로 북한의 일본인 납북이나 탄도 미사일 발사 문제를 거론한다. 독일과 함께 지난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국력에 비해 국제적 위상을 얻지 못해왔다는 설움(?!)을 떨쳐내는데 자신이 원죄를 저지른 과거 피해 당사자 북한의 막무가내 행보가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21세기 미국 국가전략의 핵심축이 되어가는 대 중국 포위망 형성에서 일본과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삼으려는 전제는 그런 일본의 과거사 회피에 안성맞춤이다. 즉 현실주의 안보 문제로 과거 역사적 과오를 지우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찬스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일본의 우경화와 동아시아 지정학 입지에 찬물을 끼얹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조선학교다. 끊임없이 일본의 침략자로서의 과거를 부각하며 책임을 묻는 잡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945년 일본 패망 직후 귀국을 준비하면서 우리말 교습소를 꾸리던 시절부터 70여 년의 시간이 흐를 동안 단 한 번도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를 공정하게 대한 바 없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일본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분명 북한체제와 일정 부분 연결된 측면이 존재하는 조선학교는 마음껏 때려도 반격하기 힘든 약한 고리가 되고 만 것이다. 만만하게 동네북처럼 보고 필요하면 때릴 수 있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심리와 같은 사고다.
 
하지만 이런 일본정부의 기획은 이미 재일조선인 사회의 축소와 동화 분위기 속에서 주된 후원자였던 북한정권이 남한과의 체제경쟁에 뒤쳐지면서 그 여파로 서서히 축소 일로를 걷던 조선학교의 존재감을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전이시켜 버린다. 한일 역사전쟁을 넘어 어느새 조선학교 문제는 일본사회가 자신들이 과거 가해자로서 원죄를 가진 소수자들에 대한 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인권 문제가 된 것이다. 즉 미국 역사에서 유색인종 차별 문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문제, 유럽에서 과거 식민지 출신 이민자에 대한 차별 문제들과 같은 보편적 주제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한일 관계 특수성 대신 전 지구적인 제국주의-식민주의 차원으로 맥락을 설정하면 이제 조선학교 문제는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한일 양국 간 미래의 건설적 관계 형성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가 되어버린다.
 
영화 속 조선학교의 정체성을 둘러싼 시선들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 (주)디오시네마

 
조선학교의 존재는 앞서 언급했던 대중문화 요소들에 의해 21세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까진 일본영화 속 소수자 포지션에 속하는 재일조선인 캐릭터들의 배경으로만 인지되던 이 미지의 존재는 이제야 비로소 공식화된 셈이다.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꾸준히 조선학교는 한일 현대사의 실러캔스처럼 현존하는 명백한 증거로 자리매김해 왔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문제에 주목해온 이들은 조선학교의 존재와 가치에 깊이 감동을 받으며 이 진귀한 존재에 호감과 애착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반면에 조선학교가 친북적 색채를 지닌 조총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때문에 반북적인 시각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긍정을 불편해하거나 북한의 이념공세 일환이라 폄하하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전성기 일본 전역에 600여 곳, 5만여 명이 재학하며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포괄했던 조선학교는 현재 60곳 전후, 8000명으로 규모가 축소된 상태다. 영화 속에서도 규슈 조선고등학교의 한 해 졸업생은 7명에 불과할 정도다. 이런 상태라면 한국에선 언제든 통폐합 대상으로 지정되더라도 놀랍지 않은 수준이다. 일본사회 내에서 하층민을 이루는 재일조선인 자녀들은 조선학교를 나와도 학력인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출신 때문에 색안경을 끼는 일본사회 시각 문제로 취업 등에도 어려움이 많기에 일본 귀화가 나날이 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어쩌면 일본정부가 괜히 건드리지 않고 놔두기만 하면 그들이 바라는 바를 얻었을 지경이다. 그렇게 시간에 풍화되듯 조선학교는 서서히 사라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학교를 탐탁찮게 생각하는 이들은 좋든 싫든 일본사회에 편입되어야 할 아이들을 사상교육으로 오히려 앞길 가로막는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친북적으로 편향된 이념 주입과 그로 인한 낙인효과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치마저고리'라는 민속의상이 어느새 아이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선학교 출신들은 일반학교에 다닐 당시 다수자인 일본 학생들에게 차별받고 폭력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고한다.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안식처는 조선학교가 유일했다는 것이다. 물론 남북 체제경쟁에 활용하기 위한 의도로 과거 북한 정부가 자금 지원을 열심히 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가난한 형편의 다수 교포들에게는 그런 측면이 분명한 이점이었을 테다.
 
결국 조선학교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현재와 미래의 국제정치 문제에 대해 갖는 시각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과 연동되고 만다. 이 무게감이 바로 조선학교 문제가 가지는 본원적 의미를 규정한다. 과거를 망각하며 덮어버리고 앞뒤 다 자른 후 현재의 양태로만 판단하려는 청산주의 vs. 제국주의 식민지 책임론에 대한 역사적 시시비비를 가리며 반성적 태도를 전제로 과거의 과오는 잊을 수 없지만 미래를 향한 화해와 협력을 논하는 성찰적 태도, 그 경계에 조선학교가 정확히 서 있는 셈이다.
 
부차적 이견을 넘어 조선학교의 현재성 발견하기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영화 <차별> 스틸 이미지 ⓒ (주)디오시네마

 
영화는 이미 여러 경로로 소개된, 해당 소재를 공유하는 일군의 작업들과 많은 점에서 포개어진다. 조선학교를 상징하는 몇 가지 익숙한 이미지나 근래 법정투쟁 과정에서 기록된 대표 영상 클립 사용 관련 중복되는 느낌도 다분한 편이다. 조선학교의 70여 년 과거 역사와 2013년부터 거듭 이어진 재판 관련 묘사는 영화적 전개보다는 시사보도 요약본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교훈적이긴 하지만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은 이들에겐 이내 흡입력이 휘발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생기는 순간도 종종 등장한다.
 
그렇게 영화적 재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꼭 전하고픈 내용들을 연결해주는 데에는 아무래도 비장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역전의 용사들보다는 푸릇푸릇한 아이들의 몫이 크다. 고참 활동가들의 통찰과 해설보다는 실제 학교의 주역인 재학생들이 활약하는 순간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흔히 조선학교를 탐탁찮게 여기는 반대진영에서 '새빨간' 사상교육의 포로로 상상하던 조선학교 재학생들은 곧잘 '사람이 살고 있었네!' 풍의 면모를 드러내곤 한다. 그런 의외성이 영화의 중력을 완화시키며 관객에게 숨 돌릴 여유를 선사한다. 특히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향한 조선학교 학생들의 굳건한 '팬심'은 더욱 반가운 장면이다. 입장은 나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상처가 가면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 정치극단주의 진영논리를 떨쳐내는 위력을 보이는 찰나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다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왔던 조정래 감독의 극영화 <귀향>으로 얼굴을 알린 2000년생, 재일조선인 4세 강하나 배우가 잊을 만하면 등장해 가이드 역할을 수행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보니 그의 얼굴을 각인시킨 드라마 연기가 아니라 실제 조선학교 재학생으로 선보이는 활약들이다. 학교 체육대회부터 광주 극단공연까지 이곳저곳에서 조선학교 학생의 표상처럼 그가 출현하는 풍경들은 관객에게 길을 놓치지 않도록 등대로 기능한다. 이런 고려와 안배를 통해 영화는 답습에 그치지 않고 '현재형'으로 활용될 가치를 확보한다. 그렇게 영화는 90분, 딱 적당한 분량을 채우며 전하고픈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는다. 이 영화가 간절히 전하려는 사연과 관객이 제대로 접속한다면 혼란스러운 한일관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얻는 데 충분한 활용법을 찾을 법하다.
 
<작품정보>
차별 Discrimination
2021|한국|다큐멘터리
2023.03.22. 개봉|90분|전체관람가
감독 김지운, 김도희
출연 최유복, 김민관, 강하나
제작 이스크라21
공동제작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배급 (주)디오시네마
 
2021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발전재단상
2022 17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초청
2022 23회 부산독립영화제 초청
2022 12회 부산평화영화제 초청
2022 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초청
2022 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초청
차별 김지운 & 김도희 감독 강하나 배우 조선학교 재일조선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