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1992년까지 <장군의 아들> 트릴로지를 끝낸 '거장'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를 소재로 한 차기작을 구상했다. 임권택 감독은 대역 없이 직접 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 배우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1992년 미스춘향 선발대회에 출전해 진에 선발된 오정해라는 신인배우를 발굴하며 신작 <서편제>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편제>는 외화가 득세를 이루던 시절 '한국영화의 자존심'으로 급부상했다.

1993년 4월에 개봉한 <서편제>는 판소리라는 쉽지 않은 소재와 대중적으로 썩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에도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서편제>는 서울에서만 103만 관객을 동원하며 실베스타 스텔론의 <클리프 행어>(111만)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106만)에 이어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중 흥행 3위를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당연히 당시 한국영화 중에서는 역대 최다관객 신기록이었다.

<서편제>의 흥행기록은 당시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엄청난 화제였지만 100만 관객을 채우기 위해 200일이 넘는 장기상영을 이어갔고 학교나 단체에서 다소 무리하게 단체관람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따라서 적지 않은 관객들은 199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의 화제작은 <서편제>가 아닌 이 영화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안성기와 박중훈 콤비가 1988년 <칠수와 만수> 이후 5년 만에 다시 뭉쳤던 영화 <투캅스>다.
 
 <투캅스>는 서울에서만 86만 관객을 동원하며 1994년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했다.

<투캅스>는 서울에서만 86만 관객을 동원하며 1994년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했다. ⓒ (주)시네마서비스

 
형사 듀오 영화, 코미디 장르에 찰떡

형사들은 기본적으로 '2인1조'로 움직이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영화에서도 '경찰 듀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는데 아무래도 범죄자를 많이 상대하는 경찰의 업무 특성상(?) 경찰 듀오가 출연하는 영화들은 액션 장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형사가 부딪히며 발생하는 웃음 포인트가 적지 않은 만큼 코미디 역시 형사물에 굉장히 잘 어울리고 단골로 등장하는 장르다.

지난 2004년에는 2001년 독특한 B급 코미디 영화 <쥬랜더>에서 호흡을 맞췄던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이 3년 만에 재회한 <스타스키와 허치>가 개봉했다. <스타스키와 허피>에서는 괴짜 이미지의 벤 스틸러가 도시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 모범형사를 연기했고 오웬 윌슨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느긋한 성격의 형사 역을 맡았다. <스타스키와 허치>는 세계적으로 1억7000만 달러의 성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07년에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벤지 역으로 유명한 사이먼 페그와 영국의 유명 코미디언 닉 프로스트가 주연을 맡은 <뜨거운 녀석들>이 관객들을 만났다. 시골로 좌천된 유능한 경찰 니콜라스가 현지에서 다소 모자란 듯한 파트너 대니를 만나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뜨거운 녀석들>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뜨거운 녀석들>,<지구가 끝장 나는 날>로 이어지는 패러디 3부작의 두 번째 영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2012년에는 액션스타 채닝 테이텀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연기파 코미디 배우' 조나 힐이 출연한 <21 점프 스트리트>가 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성적을 올리며 크게 흥행했다(하지만 국내에선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다). <21 점프 스트리트>는 고교시절 단짝친구인 운동 잘하는 젠코와 공부 잘하는 슈미트가 나란히 경찰이 된 후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믹액션영화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박서준과 강하늘이라는 걸출한 스타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청년경찰>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청년경찰>은 중국교포에 대한 부정적 묘사로 소송까지 가 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 판결을 받는 등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경찰>은 박서준과 강하늘의 능청스런 코믹연기로 전국 563만 관객을 동원하며 젊은 관객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성기-박중훈, 대종상 남우주연상 공동수상
 
 <투캅스>에서 환상의 연기호흡을 선보인 안성기(오른쪽)와 박중훈은 199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투캅스>에서 환상의 연기호흡을 선보인 안성기(오른쪽)와 박중훈은 199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 (주)시네마 서비스

 
<수사반장>이나 <경찰청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경찰들은 법을 집행하는 '정의의 화신'이었다. 따라서 경찰을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었고 대중매체에서 비리경찰이 등장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용기 있게 이 금기를 깨는 영화 <투캅스>를 선보였고 예상을 깨고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1993년 연말에 개봉한 <투캅스>는 <서편제>에 이어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킨 영화로 극장가를 지키면서 서울에서만 86만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들을 비하한다는 항의도 적지 않았지만 <투캅스>는 그 시절 엄연히 존재했던 '비리경찰' 문제를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무겁지 않게 풍자했다.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코미디 전문감독'의 이미지를 얻었다.

<투캅스>가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안성기와 박중훈의 콤비연기가 결정적인 몫을 차지했다. 2006년 <라디오스타>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안성기와 박중훈은 이미 1994년 <투캅스>를 통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조형사가 "난 과거에도 경찰이었고 지금 이순간에도 틀림없는 경찰이야"라고 강형사에게 일갈하는 장면은 안성기가 아니었다면 설득력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캅스>는 개봉 후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표절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투캅스>는 노련한 비리형사와 강직한 풋내기 형사가 파트너가 된다는 설정을 시작으로 <마이 뉴 파트너>가 연상되는 유사한 장면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표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마이 뉴 파트너>가 국내에 크게 알려진 영화도 아니라  큰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1편으로 서울에서만 86만 관객을 동원한 <투캅스>는 1996년 안성기 대신 김보성이 합류한 속편이 개봉했다. 김보성이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강한 전투력의 신참 형사를 연기한 <투캅스2>는 서울에서만 63만 관객을 동원하며 1996년 한국영화 최고흥행작이 됐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상진 감독이 연출하고 박중훈 대신 신인 권민중이 투입된 <투캅스3>는 1998년에 개봉해 서울관객 11만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단 20분 출연으로 강렬한 존재감 남긴 빌런
 
 90년대 대표 다작배우 최종원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안성기와 8편, 박중훈과 7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90년대 대표 다작배우 최종원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안성기와 8편, 박중훈과 7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 (주)시네마 서비스

 
<투캅스>는 두 형사의 충돌과 성장 속에서 발생하는 웃음들이 핵심스토리이기 때문에 형사콤비가 등장하는 여느 영화들과 다르게 주인공을 위협하는 '메인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막판 조형사와 강형사가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을 위해선 적절한 악역의 등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투캅스>에서는 마약 조직의 두목을 연기한 최종원 배우가 영화 시작 1시간 24분 만에 등장해 약 20분 동안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최종원 배우가 연기한 마약조직 두목 태성은 코미디 영화의 빌런답게 '무용지물'같은 간단한 사자성어나 '천 만원X100' 같은 쉬운 계산도 하지 못하는 어딘가 부족한 빌런이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80년대 후반부터 영화로 활동범위를 넓힌 최종원 배우는 90년대 중·후반까지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드라마에서는 <왕과 비>에서 한명회, <대왕 세종>에서 하륜,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인겸을 연기했다.

60년대 후반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30년 넘게 마당놀이에 출연한 윤문식 배우도 <투캅스>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박사장 역으로 출연했다. 미성년자 접대부를 원한다는 강형사의 함정수사에 속아 만16세의 미성년자를 접대부로 소개했다가 구속을 당하는데 박사장에게 뇌물을 받았던 경찰들은 모두 박사장을 외면한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들이 성대모사하는 명대사(?) "이런 4가지 없는 놈"을 처음 했던 영화가 바로 <투캅스>였다.

김보성은 마약조직을 잡은 공로로 반장으로 진급한 조형사 대신 강형사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 이형사를 연기했다. 강형사가 처음 조형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형사 역시 강형사의 비리를 묵과하지 않고 그를 고발하려 하면서 강형사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당시만 해도 엔딩 장면에서 관객들을 웃기기 위한 카메오 출연 정도로 보였지만 김보성은 1996년 카메오가 아닌 <투캅스2>의 주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투캅스 강우석 감독 안성기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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