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희는 누나의 삶을 대신 살면서 때로는 치열을 이상화하고 동일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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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누나인 수현의 삶을 대신 산다. 공부만 강요하는 무서운 엄마와 살면서 누나와 유난히 돈독했던 동희는 수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내가 아는 유일한 어른인 최치열 쌤의 조교가 되고 싶다"는 수현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렇게 누나가 바랐던 것을 하며 살면서 치열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며 동일시 해버리기까지 한다. 14회 치열을 대신해 리허설을 하는 동희의 모습이 소름끼칠 만큼 치열과 흡사해보였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즉, 동희는 수현 혹은 치열로 살아왔던 것이다. 진짜 자기 자신의 삶이란 전혀 없이 말이다.
불안을 감내하고 책임지는 용기
이처럼 타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아니면 타인의 삶을 대신 살면서 자신의 삶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불안을 감내하고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 용기를 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차이를 매우 잘 보여주었다.
서진은 아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14회 선재는 "이 사회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원색적이고 직업적 포지션을 중시하는지 넌 잘 모른다"며, "엄마 말 대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서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엄만 행복하세요? 엄만 좋은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하냐구요."
이 질문에 서진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포지션만 추구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곤 "나 왜 이렇게 됐을까"를 고민하면서 아이들에게 투사했던 욕망을 거둬들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때문에 부정 행위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으며, 아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바라봐주는 엄마로 변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희는 서진처럼 통찰을 얻지는 못했지만, 딸 덕분에 더 나빠지지 않은 경우다. 엄마보다 훨씬 통찰력 있는 수아는 14회 해이의 사고를 '뒷담화'하는 엄마에게 "그게 나일 수도 있었어!"(14회)라고 소리친다. 아마도 이는 수희에게 더 이상 딸에게 자신이 원했던 삶을 대신 살라고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했을 것이다. 물론, 수희는 여전히 입시시장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이런 엄마와 거리를 두는 수아 덕분에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었을 것이다.
치열은 행선을 만나 '자신의 삶'을 찾는다. 치열은 행선의 음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서서히 행선에게 마음을 열며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간다.
반면, 동희는 끝까지 이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름까지 바꾼 채 타인의 삶을 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동희는 15회 치열이 진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죽음을 택한다.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동희의 죽음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