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가 연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오염수들을 올 4월부터 바다에 그대로 뿌리겠단 것인데, 바로 옆 나라인 한국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과 오염수 방류에 대한 불안을 가만히 지켜보며 일본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상상한다.
 
주지하다시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비롯됐다. 그해 3월 11일, 오사카반도 동쪽 끝으로부터 70km 지점에서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역대 최대인 모멘트규모 9.1의 지진이 발생했다. 최대 6분에 이르는 강한 흔들림과 이후 들이닥친 최고 높이 40m에 이르는 해일은 2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와 그 수배에 이를 부상자, 47만 명의 이재민을 양산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3기가 폭발했고 방사능이 누출됐다. 그로부터 후쿠시마 일대는, 넓게는 일본 전역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땅이 되었다.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 (주)미디어캐슬

 

재난을 영화에 등장시킨 감독들
 
영향은 예술가들에게도 미쳤다. 일본의 작가들은 지진과 해일, 나아가 재난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연달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찍어냈고,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점이라 할 만한 신카이 마코토 또한 재난을 영화 안에 등장시켰다.

다만 그 양상은 조금쯤 달랐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후쿠시마의 상흔을 보다 명확히 지목하며 상처 입은 이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시도한다. 망각하려는 본능에 맞서 기억하려는 노력을 그린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속 서로 다른 재난과 마주하여 애써 노력하고 서로를 기억하려 한다. 그로부터 좌절하지 않는 마음을 담아내려 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지진의 상흔을 품는 신카이 마코토
 
<스즈메의 문단속>도 그 연장선에 있다. 떨어지는 혜성에 대항하던 타키와 미츠하, 쏟아지는 비에 맞서는 후다카와 히노의 이야기를 거쳐 땅 아래 깃든 거대한 힘을 다스리려는 남녀를 그린다.

재난을 품었음에도 충분치 않다는 비판과 거듭 마주했던 신카이 마코토가 드디어 제 시야를 진실 가까이로 돌린 것일까 하는 기대가 절로 든다. 이제야말로 지진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니, 진실로 재난과 그것이 미친 영향에 대하여 거장의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으리란 기대다.
 
주인공은 이모와 함께 사는 여고생 이와토 스즈메다. 어릴 적 지진으로 엄마를 잃고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도 없는 스즈메를 마흔을 앞둔 노처녀 이모가 혼자 돌봤다. 늘 정성들인 도시락에 조카 일이라면 무엇이든 팽개치고 달려드는 극성 이모가 스즈메는 이따금 부담스럽다. 그러나 스즈메에겐 이모 뿐이고 이모에겐 스즈메 뿐인 것도 사실이어서 둘은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세상엔 잊혀져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어느 날 스즈메 앞에 끝내주게 멋져서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내가 나타난다. 폐허들만 찾아다니는 의문의 대학생 무나카타 소타가 그다. 소타에겐 감춰진 사연이 하나 있는데, 폐허에 선 문을 찾아 그 문으로 나와선 안 될 것을 막는 것이 오래된 저의 가업이란 것이다. 말하자면 문 안에 깃든 것은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힘이고, 이를 막지 못하면 세상이 뒤집어져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다.
 
스즈메와 소타 앞엔 예고된 위기가 닥쳐온다. 봉인이 풀리고 힘이 새나오며 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재난을 막으려 든다. 지진 앞에서 힘을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스즈메와 소타, 남다른 눈을 가진 소수의 사람뿐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재난을 잊어버린 지 오래,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 그 일상 가운데 잊혀가는 목소리에 이들이 귀를 기울인다. 정말 중요한 것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세상엔 잊혀서는 안 되는 귀한 것이 있다고 신카이 마코토가 목놓아 이야기한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주)미디어캐슬

 
희생과 용기, 운명을 감당할 자격
 
위기는 소타에겐 희생을, 스즈메에겐 용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둘은 기꺼이 제게 주어진 운명을 감당한다. 그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낸다. 용기는 희생을 넘어 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그저 감내하는 것이 답은 아님을, 살아야 한다고 손을 내밀고 살고 싶다고 그 손을 맞잡는 게 진짜 필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고 신카이 마코토는 말하는 것이다.
 
살고 싶다 얘기하는 욕망을, 다른 이에 대한 선의를, 그로부터 지켜지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여러 단점들에도 기존보다는 나아갔다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은 이성을 압도하는 듯 보이고, 작화에 미치지 못하는 서사 역시 아쉽지만 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실시를 코앞에 둔 오늘, 이 영화는 더욱 특별한 감상을 안길 수 있다. 왜 어느 나라는 제가 저지른 잘못을 다른 이에게 감당케 하며, 어째서 어느 정부는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는 자국민의 요구를 듣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 재난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희생과 선의, 욕망을 넘어 마땅한 책임까지도 품어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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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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