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김완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앨범 이미지

김완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앨범 이미지 ⓒ 아세아레코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은 그 이전과는 결을 달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변모했다. 경제 발전, 세계화 등 비 음악적인 요인들이 이 변화의 원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새로운 물결을 최전선에서 이끈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젠 'K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댄스 음악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완선은 지금의 산업 양태를 가능하게 만든 걸출한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는 1990년 발매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한국 댄스 음악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장식했다. 댄스 음악이 흔치 않았던 시기였으나 그는 이 앨범에서만 가요 차트 정상에 세 곡을 올렸고,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단일 앨범 1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반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사운드는 역시 댄스를 불러일으키는 신나는 비트다. 뉴 잭 스윙 스타일을 변용한 '가장무도회'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당시 가요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 두 곡은 2010년대가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오랜 기간 유행했던 형식의 원형이다. 미국 스타일의 비트와 동양적인 멜로디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묘한 사운드는 한국이 세계화의 세례를 맞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완선의 계보 잇는 후배들
 
 KBS <가요톱10> 김완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캡쳐

KBS <가요톱10> 김완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캡쳐 ⓒ KBS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 혁신적인 트랙만 있는 건 아니다. 당시 유행했던 기성 가요들과 비슷한 곡 '마지막 밀회', "비디오 가수에서 오디오 가수로의 전환"이란 평이 따라붙었던 '나만의 것' 등의 몇몇 곡에선 1980년대의 흔적이 강하게 묻어난다. 과도기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이 장르적 다양성은 당시 김완선의 새로운 시도를 반갑게 맞은 이들과 아직 그런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이들의 마음을 함께 포섭했다.

이러한 영민한 전략은 록 그룹 외인부대 출신의 기타리스트 손무현의 프로듀싱 덕에 가능했다. 감성적인 록 사운드부터 바운스 감이 가득한 댄스 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시도가 김완선이라는 디바의 매력을 폭넓게 끌어냈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를 작사한 김순곤은 수록곡 중 대부분의 곡에 참여하며 음반에 문학적인 감성을 더했다. 타이틀의 가사를 만든 이승호는 이 작업 이후 DJ D.O.C, 터보, 쿨, 젝스키스 등 많은 가수의 가사를 담당하여 당대에 가장 이름 있는 작사가 중 하나로 성장한다.

데뷔와 동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김완선이었지만 5집 활동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도 전성기라 불릴 만큼 결정적인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한국산 댄스 음악의 깊이가 다른 장르의 음악들에 비해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이 음반을 통해 가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오른다. 당시의 신문은 김완선을 '한국의 마돈나'라고 칭하며 그의 음악을 해외 가수의 수준과 견주었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리메이크한 아이유와 '나만의 것'을 다시 부른 청하 등 김완선의 계보를 이으려는 후배들의 노력이 그가 후대의 가수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감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리메이크는 선배에게 보내는 후배의 찬사이며 자신이 어떤 계보 위에 올라설 것인지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열쇠다. 김완선이 이 앨범의 보너스 트랙에서 자신의 전작에 참여했던 이장희의 곡들을 손무현 편곡으로 재발매한 것처럼 많은 이가 김완선의 곡을 통해 과거와의 연결과 재해석, 극복을 꾀했다.

외국인에게 K팝을 아냐고 질문하면 BTS, 블랙핑크의 춤을 따라 하며 당연히 안다고 대답하는 시대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대표 음악은 댄스 뮤직이다.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입장에서 한국 댄스 음악의 현대적인 양태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들여다보는 건 유의미하다. K팝이라는 말이 시작되기도 전, 이 시장의 시작에 김완선이라는 가장 한국적인 댄스 가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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