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6일, '대지진'이 튀르키예·시리아 일대를 강타했다.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 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12만 명 이상의 부상자, 2000만에 이르는 이재민이 발생한 대재앙이었다. 이는 21세기 인류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됐다.
 
피해 지역은 한파와 정치적인 내전 등으로 구조 작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피해가 더욱 가중됐다. 여기에 재난에 대한 부실한 사전 대비와 부정부패 등이 뒤늦게 도마에 오르며 정부의 책임론까지 제기되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어리석음이 사태를 악화시킨 인재였을까.
 
3월 4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싶다> 1342회는 '붕괴된 경고-튀르키예 대지진의 비밀' 편을 통하여 대재앙을 둘러싼 비극의 진실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2023년 2월 7일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부는 지진발생 35시간이 지나서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병력을 현지로 파견했다. 같은 날 튀르키예 재난관리청(AFAD)는 6만 명에 이르는 수색-구조-자원봉사인력이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현지 취재를 통하여 현장의 참상을 확인했다. 튀르키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월까지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이 집계된 것만 20만 2000여 채에 달했다. 취재 당시 파괴된 도시 곳곳에서 구조작업이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의 이야기는 정부 발표와는 많이 달랐다. 현지 주민들은 초기 구조 작업이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첫날에 구호를 위하여 제때 오지 못했다. 구조대가 빨리 도착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다른 주민은 "1999년 지진 때는 사람들이 잔해 위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없냐고 외쳤는데, 이번에는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누구 없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증언했다. 살아남은 주민들도 구호물품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외신들은 튀르키예 경찰이 SNS에서 지진 관련으로 자극적인 포스팅을 올린 5명을 체포하고 18명을 구금했다고 보도하여 미디어 통제에 나선 정황이 포착됐다. 12일에는 독일-오스트리아 구조대가 작업을 중단하고 이스라엘 구호단체가 '즉각적인 안보위협'에 대한 성명을 내고 현장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연 튀르키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일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정부 책임론이 거론되자 "이렇게나 거대한 재난을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부도덕한 이들이 캠페인을 벌이며 하타이에서 우리 군인도 민병대도 경찰도 보지 못했다며 거짓말로 비방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로 뭉쳐야 할때고, 인내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튀르키예 대지진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4개의 판(아라비아판, 아나톨리아판, 아프리카판, 유라시아판)이 서로 만나는 위치에 있다. 지진이 발생한 동아나톨리아 단층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지역으로 그동안 다른 판에 비하면 지진 활동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으나, 오히려 그만큼 단층을 따라서 많은 힘이 누적된 '시한폭탄'같은 상태였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인명피해가 급격히 늘어난 데는 지진 당시 심야에 건물이 단시간에 붕괴되면서 잠을 자고 있던 많이 주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주민들의 증언과 제보된 영상에 따르면 지진 당시 건물이 종잇장처럼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찍부터 지진 위험지역에 포함된 튀르키예임에도 어떻게 건물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국가적인 법이 시행된 최초의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였다. 1999년 북서부를 강타한 이즈미트 대지진 이후, 튀르키예는 2007년에 지진 지역 건물의 내진 능력과 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건축법까지 제정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튀르키예만큼 내진에 대한 규정이 까다롭고 정확한 나라가 없다고 할 만큼 법규는 잘 정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참사는 과연 그러한 법규가 현실에서도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남겼다.
 
튀르키에 하타이주의 에르진이라는 지역은 대지진 이후 '기적의 땅'으로 불렸다. 지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가지안테프주 이슬라히에 지역에서 불과 38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음에도 지진으로 인한 건물붕괴나 사상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르진 주민들 역시 '이렇게 심한 지진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할 만큼 타격은 마찬가지였지만, 정작 피해 차이는 극과 극이었다. 알고보니 에르진의 건물들은 튀르키예의 까다로운 건축규정을 잘 지키고 재료를 아까지 않아 내진 대비가 잘되어 있는 상태였다.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게 유지되었고, 지진이 취약한 고층 건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건축 부패를 척결하려는 왹케시 엘마스올루 에르진 시장의 단호한 의지 역시 이번 지진 사태에서 빛을 발했다.
 
건축 전문가들은 대지진 당시 건물들의 급격한 붕괴 원인이 벽돌보다는 기둥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기둥이 제 역할을 해주면 큰 지진이 일어나도 건물이 전체가 아니면 일부만 붕괴되기에 대규모 인명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튀르키예에서는 건물의 증-개축이나 용도변경 시 충분한 안전검증 없이 기둥의 규모를 축소하는 '기둥자르기'가 고질적인 건축 병폐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바로 '부실시공'이 대지진의 인명피해를 악화시킨 진짜 원인이라는 것.
 
지진을 많이 경험해봤고 그 심각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튀르키예에서 에르도안 정부는 왜 이번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걸까. 에르도안은 알고보면 대지진의 '정치적 수혜자'였다. 1999년 대지진 사태 당시 출범 4개월 정부 여당이 미숙한 대처에 이어 IMF 경제위기 사태까지 겹치며 지지율이 폭락하자, 이를 비판하며 청렴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등장한 것이 지금의 에르도안이었다. 그는 2003년 총리를 거쳐 2014년에는 대통령에 취임하여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초기에는 2011년까지 신흥국가로서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유서방과 친화적인 정책을 유지하며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에르도안이 경제발전을 위하여 가장 핵심적으로 주목했던 분야가 바로 건설사업이었다. 에르도안 정부는 건설붐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업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제공하며 권력과 유착관계를 맺게 된다. 자연히 경쟁력은 하락하고 견제나 감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튀르키예에는 '불법건축물 추후사면 제도'가 있다. 허술하고 위험한 건축물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하고도 규정에 어긋나는 건축물들을 묵인해준 것이 튀르키예의 많은 도시들의 고질적 사회문제로까지 자리잡았다.
 
여기에 에르도안이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자기 사람들만 국가조직의 요직에 잇달아 중용하는 '사유화'는 정부의 기능을 크게 떨어뜨렸다. 지진-재난관련 분야를 총괄해야하는 AFAD의 수장으로 정작 관련 분야에 대한 경험이나 경력이 전무한 자신의 측근 유누스 세자르를 앉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계자들은 지금도 재난관리를 총괄해야 할 AFAD나 국가의료구조대(UMKE)가 "이번 재난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지금도 잘못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생존자가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조율없이 작업을 강행하거나, 지진 발생 이후 열흘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도 현장의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현장에서 만난 철거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당신들의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냐?"고 오히려 되물으며 한탄하기도 했다.
 
또다른 문제는 튀르키예의 노골적인 미디어 통제다. 튀르키예 방송과 언론에서는 현장에서의 실상과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전혀 보도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대지진 이후 민심이 요동치자 튀르키예 정부는 신속하게 SNS를 차단하며 여론통을 통제하려는 모습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에르도안은 현재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과거 오스만투르크의 술탄같은 절대권력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없어도 재난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역관리자, 조직, 재난관리청 등 튀르키예의 사회적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군대 역시 응급출동권을 에르도안이 빼앗아가며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시스템이 갖춰져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시행-운용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1인 독재체제로 변질된 국가는 더 이상 시스템이 아닌 권력자의 개인적 의지와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사조직으로 전락하며 제 기능을 잃었다는 것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교수는 이번 대지진 사태가 남긴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20년 동안 튀르키예가 쌓아온 민주주의적인 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작 튀르키예가 그동안 지진을 대비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걷었다는 '지진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정부가 한화 약 4조 6천 억에서 9조 6천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세금을 지진세 명목으로 걷었지만, 이번 대지진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을 통하여 이 막대한 예산이 그동안 지진과는 전혀 관련없는 분야들로 새어나갔다는 의구심이 깊어지고 있다.
 
에르도안은 민심이 악화되자 뒤늦게 관련된 건설업자들을 잇달아 체포하는 것으로 여론을 돌리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6월에 정권의 존폐를 결정지을 총선과 대선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평가한다. 1999년 대지진 대응으로 인한 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정권까지 잡았던 에르도안의 정치인생이, 어쩌면 이번에는 대지진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붕괴된 경고는 우리 누구에게도 참혹한 결말로 돌아올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피해자들은 페허의 현장에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중이다. 이번 사태는 천재지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하는 '책임자'들의 잘못된 선택과 준비 태만으로 벌어진 '인재'였음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도 지진과 재난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자연의 재난을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예상된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여 희생이 커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진정한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튀르키예대지진 에르도안 재난관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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