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 속 깡패가 모두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영화에서 그려지는 범죄자 가운데 상당수가 연변 사투리를 쓴다. 살인 등 흉악범죄와 마주하여 조현병이며 지체장애인을 가해자로 그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충실한 취재며 통계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면 황당함을 감출 길 없다. 영화적 상상력, 예술적 허용이라는 말로 약자에 대한 막무가내식 묘사를 참아내야 하는 걸까.
 
일본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일본영화를 곰곰이 뜯어보면 은둔형 외톨이, 이른바 히키코모리에 대한 혐오가 짙게 배어나는 작품이 적잖다. 한국에서도 그 규모가 갈수록 늘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고립청년 문제를 십여 년이나 앞서 겪은 일본이 아닌가. 그들이 고립청년을 묘사하는 모습은 정면교사로든 반면교사로든 한국 예술계가 참고할 만하다고 하겠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포스터

▲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포스터 ⓒ (주)얼리버드픽쳐스

 
넷플릭스 화제작의 원작을 만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지난 2018년 제작된 동명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링>으로 일본 공포영화의 새 장을 연 나카다 히데오의 작품으로, 다시 한 번 가장 익숙한 도구를 공포의 요소로 전환해냈단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잃어버린 스마트폰으로부터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는 커플의 이야기다. 애인 아사미(키타가와 케이코 분)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도미타(다나카 케이 분)가 잃어버린 휴대폰이 문제의 시발이다. 전화를 주운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다. 영화는 그의 어깨 너머로 그가 주운 휴대폰에서 정보를 빼내는 모습 따윌 긴장감 있게 포착한다.
 
관객은 그의 얼굴이 전면에 드러나기 전부터 몇 가지 정보를 획득한다. 우선 그가 보통의 인간들과 조금 다른 감성의 소유자란 점,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외톨이라는 점 등이다. 말하자면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고립청년의 이미지, 히키코모리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 (주)얼리버드픽쳐스

 
고립청년에 대한 편견들
 
영화는 범인의 이해관계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아사미와 도미타를 타깃으로 삼기 전에도 몇몇 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범행의 이유란 것이 결국엔 어머니로부터의 학대며 애정결핍에 따른 이상행각이다. 지극히 전형적인 범죄인 캐릭터 묘사로, 도리어 25년 전 <링>의 캐릭터가 더욱 참신하다 느껴질 정도다.
 
고립청년에 대한 지원은 빈약하고 통계조차 부실한 한국의 현실에서 고립청년에 대한 편견 어린 묘사는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타인과의 분리와 고립, 적응에 대한 실패가 폭력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이들에 대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을 조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박재식의 <외톨이>, 김휘의 <이웃사람>, 정길영의 <우리 동네> 등이 고립청년 성향의 인물을 스릴러의 소재로 활용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리메이크 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고립청년의 이미지를 다소 완화하고 연쇄살인범으로서의 성향을 강화한 건 인상적인 선택이다. 사회로부터 일정 부분 고립된 인물이긴 하지만 다분히 이질적인 인상과 자극적 이미지를 앞세우는 대신 임시완의 단정한 연기로 캐릭터를 세우고자 시도했기 때문이다. 비록 임시완이 전작 <비상선언>에서 보여준 것과 유사한 이미지였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 (주)얼리버드픽쳐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주)얼리버드픽쳐스 나카타 히데오 키타가와 케이코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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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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