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탈진실>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탈진실> 포스터. ⓒ 넷플릭스


2012년 11월 14일 대만,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이 한창인 경기장에 수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그중엔 마이너리그 진출을 앞둔 야구선수 장정이와 그의 여자친구 왕스윈, 진실을 보도하는 사면감을 똘똘 뭉친 기자 류리민과 그의 동료이자 아내 그리고 딸도 있었다. 그날 화장실에서 피칠갑되어 죽은 왕스윈이 발견되었고, 현장에 있었던 그녀의 남자친구 장정이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왕스윈을 처참하게 죽인 살해자로 장장 7년 동안 감옥에서 지낸 장정이, 어느 날 재소자 취재 차 감옥에 온 류리민을 납치해 탈옥에 성공한다. 류리민은 여전히 진실만을 추구하며 진실만을 보도하는 비주류 프로그램 '진실의 입장'을 홀로 떠받들고 있었다. 충분히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함께 진실 보도에 앞장 서 성과를 냈던 동료이자 아내 야징이 2년 전에 세상을 떴기에 홀로 진실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류리민은 비록 장정이에게 이용 당했지만 그가 감옥에 갔었던 왕스윈 살인 사건의 진실이 묻혀 있다는 걸 직감한다. 하여, 탈옥한 장정이와 몰래 접촉하며 그의 주장에 따라 사건 당시를 되짚기 시작한다. 류리민은 당시 주요 증인들을 하나둘 만나며 진실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데, 진짜 장정이는 왕스윈을 죽이지 않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왕스윈은 누가 왜 어떻게 죽인 걸까? 진실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탄탄하고 재밌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만 영화

넷플릭스에서 심심찮게 대만 영화를 내놓는다. 그동안 인상 깊게 본 작품들만 해도 <나의 EX> <아호, 나의 아들> <반교: 디텐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고독의 맛>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 <폭포> 등 부지기수다. 괜찮은 대만 영화는 모조리 넷플릭스로 공개되는 것 같고, 하여 시청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비단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대만 영화는 일찍이 이안,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센, 차이밍량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거장들이 계승해 왔고 이후 <남색대문> <말할 수 없는 비밀> <안녕, 나의 소녀> 등의 청춘물이 이어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큰 환영을 받지 못하는 중국 영화와 달리, 대만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큰 환영을 받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탈진실>은 오랜만에 공개되는 대만 영화다. 대만 영화가 자랑하는 기본 이상의 연출, 스토리, 메시지, 연기, 분위기 등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보였다. 제목만 봐서는 도통 감을 잡기 힘든데,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도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더 탄탄했고 조금 더 재밌다.

추악한 진실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탈진실', 즉 'post-truth'는 합의된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진영이 탈진실적 움직임을 보여 당선에 성공한 사례인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급증했다. 탈진실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문제적 용어인 것이다.

이 영화 <탈진실>에선 어떻게 쓰일까, 아니 보일까. 여자친구 살인 누명을 쓴(비록 본인의 주장이지만 아마도 그 주장이 진실일 것 같다.) 장정이와 진실된 보도만을 추구하는(구독자를 늘려 인정을 받아야 계속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아이러니) 류리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다가 서로 맞으면서 진실로 나아간다.

하지만 진실을 파헤쳐 진실에 다가갈수록 찜찜하다. 진실 하나하나에 온갖 더러운 잡것들이 끼어들어 뒷맛이 구리다. 더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추악한 진실을 마주할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다칠 것도 같다.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할까? 진실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가야 할까?

제목 '탈진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 <더 포스트-트루스 월드> 스틸

넷플릭스 <더 포스트-트루스 월드> 스틸 ⓒ 넷플릭스

 
진실은 좋고 나쁨이 없다. 좋고 나쁨은 주관적인 해석이니 말이다. 옳고 그름이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은 객관적인 합의에 의한 진리가 아니던가. 그러나 탈진실적 행태가 앞길을 막아서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옳고 그름만 잡으려다가 아무것도 안 남으면? 좋고 나쁨이라도 잡아야 뭐라도 하지 않겠나?

장정이와 류리민이 따로 또 같이 진실로 향하는 길 위에 서지만, 길을 갈수록 시작점에서의 순수함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추악할지라도 '진실'을 보고자 했지만, 진실의 '추악함'에 점점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엔 진실은 도구이자 수단으로 전락하고 추악함만 남아 숙주처럼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을까.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정이나 진실 보도를 목숨보다 더 앞에 두는 류리민이나, 추악함의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탈진실>은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흔하디 흔한 상투적 서사를 따른다. 그러니 지극히 무난하게 즐기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줄 안다. 다만, 제목에 대놓고 턱 하니 박아놓은 '탈진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굳이 신경쓰지 않겠다면 그건 그대로 괜찮다. 외적인 스토리에 충실히 따라도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통해 작금의 세계를 시의성 있게 들여다보려면 제목을 곱씹으며 제대로 파야 한다. 골머리는 아프겠지만 훨씬 더 재밌을 것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게 하나하나 주옥같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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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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