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 소치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나는 그녀가 수치스런 협잡의 공범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소트니코바는 가해자이고 김연아는 피해자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안톤 오노가 금메달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동성이 편파판정의 억울한 피해자이며 오노는 자격 없는 공범자라 믿었다. 그리하여 피해는 고스란히 김동성이 보았고, 오노는 그로부터 크나큰 득을 보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그와 같은 것은 아니라고, 미처 모르는 새 내게도 그릇된 편견이 깃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편파는 밀어 떨어뜨린 이만이 아니라 감싸 이기게끔 한 이에게도 독이 될 수 있음을, 그로부터 마땅히 가져야 할 미덕, 이를테면 스포츠맨십이라거나 수고에 따른 정당한 대가라거나 오랜 고통 뒤에 얻어지는 성장의 기회를 앗아가고 만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한없이 가벼워만 보이던 영화 <카운트>가 내게 알린 것이 꼭 이와 같았다.
 
카운트 포스터

▲ 카운트 포스터 ⓒ CJ ENM

 
열 명도 들지 않은 평론가 시사회
 
별 볼일 없는 영화에도 반쯤은 메워지던 평론가며 기자 대상 시사회 자리였다. 영 관심을 벗어난 때문인지 <카운트>를 보러 극장을 찾은 평론가와 기자는 채 열이 되지 않아 보였다. 아이고야 영화를 잘못 골랐구나, 절로 걱정이 들 정도였다. 올해 시사회를 본 십여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적은 이가 들었으니 영화가 엉망이란 얘기가 일찌감치 새어나간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 이상이란 말로는 부족하여, 비슷한 성격의 영화들 가운데선 이보다 나은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사연 있는 복싱 코치와 그가 이끄는 고등학교 복싱부 선수들의 이야기는 흔하고 흔한 길만 따라 달리는 듯 보이는데, 어째서 이 영화가 그리도 감동적이었던 것인지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따져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는 고등학교 교사 시헌(진선규 분)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였지만 선수 은퇴 뒤엔 평범한 교사로 살아가는 그다. 그의 오늘엔 아픈 사연이 자리하는데, 결승전 경기에서 미국 선수에게 압도를 당하고도 판정에서 승리했다는 게 그것이다. 은퇴 뒤 복싱과는 담을 쌓고 살지만 완전히 풀려나가지 못한 애증이 진득하게 남아 있단 걸 그를 둘러싼 모두가 알고 있다.
 
영화는 시헌과 아이들의 이중 성장구도로 흘러간다. 시헌은 복싱부 감독이자 코너로서 성장하고, 복싱부 아이들은 저 나름의 과제와 마주하여 또 나름의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평범한 스포츠 성장영화라 하겠는데, 편파판정의 승자가 마주하는 고통이며 또 그 고통에 맞서기를 기꺼이 선택하는 사나이다움, 나아가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를 지탱해나가는 우정까지가 그 모든 성장을 진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카운트 스틸컥

▲ 카운트 스틸컥 ⓒ CJ ENM

 
가짜 금메달을 진짜 금메달로
 
말하자면 영화의 가장 주된 줄기는 시헌이 제가 딴 가짜 금메달을 진짜 금메달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그 길에서 저를 주저앉히는 위기들을 다른 이들의 지지를 통해 극복해내는 이야기라 하겠다.
 
특히 매 어려움의 순간 시헌과 아이들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선 용기가 돋보인다. 복싱을 하지 않겠다는 재능 넘치는 학생 윤우(성유빈 분)를 찾아 제가 처한 상황과 열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은 시헌의 용기이며, 넘어진 시헌을 향해 제가 그로부터 희망을 얻었음을 말하는 건 윤우의 용기이고, 그밖에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저 나름의 어려움을 용기를 내어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용기는 용기 하나만으로 완성될 수 없기에 다른 이의 지지와 인정이 필요할 밖에 없다. 그리고 <카운트>는 용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무척이나 진실하게 내보이는 데 성공한다.
 
<카운트>는 그 형식적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예술에 있어 정말 중요한 건 새로움이 아니라 진실함이라는 걸 이 영화가 스스로 증명한다. 용기며, 우정과 같은 덕목을 그려내는 솜씨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영화라면 상영관에서 기꺼이 박수를 치고 나와 다른 이에게 꽤나 멋진 영화를 보았다고 알리고픈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작품만이 갖는 미덕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카운트 스틸컷

▲ 카운트 스틸컷 ⓒ CJ ENM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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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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