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메인 포스터

영화 <다음 소희> 메인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에는 진아(공승연 분)가 있다. 카드 회사의 콜센터 직원으로 일상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무례한 콜을 받는 일이 더 익숙한 그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난과 폭언이 이어지고 성추행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져도 그저 죄송하다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같은 장면 속에는 이제 막 입사한 수진(정다은 분)도 있다. 역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다.

죄송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 죄송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녀. 하지만 곧 그녀 역시 목소리만 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신의 사수인 진아가 팀장에게 불려 가는 모습을 보고 난 후부터다. 그런 수진을 보면서 진아는 생각한다. 오래전 자신의 사수였던 팀장을 보며 자신이 느꼈듯이 수진 역시 그런 자신을 보며 같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었으리라고. 그렇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에는 팀장과 다음 팀장이, 진아와 다음 진아가 놓이게 된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02.
"고객님 사랑합니다."

이번에는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다. 이 영화 속에는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있다. 학교에서 추천해 준 콜센터로 현장 학습을 나간 소희는 그 자리에서 고객을 사랑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는다. 아무런 표정도 미동도 없이 태연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던 그 모습을 가방도 채 벗지 못한 채로 지켜봐야만 했던 그녀. 두 사람 곁에 서서 우리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팀장의 말을 아직 그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때의 장면이다. 고개를 잠깐 돌려보면, 좁은 닭장처럼 엉겨 붙은 칸막이 사이로 비슷한 또래의 많은 직원들이 앉아 작은 헤드셋을 머리에 걸고 사랑과 사죄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뱉는다.

이 신(Scene)은 앞으로 소희에게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하지만, 영화는 그 예상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자리에서 사회에 떠밀리듯 내몰린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는다. 아니, 주워 담는다. 이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영화에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 말이다. 영화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이 작품이 2017년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학생이 스스로 저수지에 투신한 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미스터리' 편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는 이 이야기를 접한 감독은 공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점을 용납할 수 없어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하청 콜센터로 현장 학습을 나가 부당한 대우와 극심한 감정노동을 겪게 되는 영화의 전반부가 후반부에 이르러 기관과 공교육의 시스템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로, 또 한 아이의 작은 삶이 아닌 무방비하게 산업 현장에 놓인 학생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시켜 나아가는 이유다. 실제로 2010년 후반까지, 현장실습표준 협약서와 근로계약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을 산업 현장으로 내몬 사례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파업 현장에 불법대체인력으로 투입한 사례도 있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어 2010년 후반이라고 명시했지만, 지금도 어디에서 정량적 평가의 속성 아래에서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사회에 던져진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03.
소희가 놓인 자리만 보더라도 그 생리가 너무 비정하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방어를 해내야 하는 쪽과 양손에 권리와 폭언을 들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쪽의 싸움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보다 고객을 더 사랑하는 이들의 목을 조르고 고개를 짓누르는 사측이 존재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해지를 신청해도 새로운 상품을 소개하고 그 해지 요청을 방어해 내야 하는 쪽이 바로 콜센터 직원의 자리다. 영혼까지 팔아가며 그렇게 일해도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정확하지 않은 급여 체계와 동료 직원들의 비난이다. 갑을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구조와 팀실적이라는 미명하에 놓인 일그러진 공동체적 의식은 서로가 서로의 곁이 되어주는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기는커녕, 자신의 사소한 실수 혹은 너무 뛰어난 실적이 동료의 노동을 가치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든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혼자 사는 사람들> 속 진아와 수진의 경우에도 다름이 없었다.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고객'님'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게 해주는 값싼 헤드셋과 또 고객'님'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모니터뿐이다. 그래도 진아와 수진의 경우에는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어느 정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자의에 의한 계약이 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그나마 미약한 위안이 된다. 소희의 자리에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산업 현장으로 밀어 넣기 바쁜 담임교사의 대리 계약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더 값싸게 부리고자 하는 회사의 횡포까지 놓인다. 자신에 의해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후배들이 입사할 길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이상한 책임감도 함께 말이다.

영화는 그렇게 유진(배두나 분)의 등장 이후 조금 더 큰 화두를 던진다. 학교에는 취업률에 목을 매며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도망쳐 나오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어른들이,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과 근로계약법을 무시한 채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어른들이 있음을 보여주면서부터다. 이제 이 이야기는 콜센터에 던져진 소희만의 것이 아니다. 전공과 무관한 공장에 던져진, 아무 이유도 없이 산업 폐기물과 비료를 처리하는 일에 던져진, 현장 학습 아래에 현재와 미래 모두를 잃어버린 모든 아이들의 것이다. 이제 영화는 자신의 현재를 외면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어른의 자리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소신과 의지를 어떻게든 흔들고 쥐어짜 내는 사회의 그릇된 모습을 고발한다. 물론 그런 어른들에게는 준비된 변명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바로 눈앞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04.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음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이 영화에 놓여있는 두 번의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부 고발자로 윗선에 끊임없이 사내 문제를 제기하던 팀장과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점차 말을 잃어가던 소희의 죽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실을 수면 위로 꺼내 드러내고자 하고 또 하나의 사실을 관객들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새기고자 한다. 수면 위로 꺼내고자 하는 사실은 사측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다. 팀장의 죽음 이후에 돈봉투를 꺼내가며 콜센터 직원들의 침묵 동의서를 받던 사측 대표인들은 소희의 죽음 앞에서도 조의와 사과의 태도가 아닌 비난과 폄하의 목소리를 높인다. 직원의 죽음이 회사의 이미지에 입힐 손해를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태도는 취업률과 방어 성공률만을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갈아 넣던 모습과 일치한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학생들이 살아있을 때도 살아있지 못할 때도. 그리고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못할 소희의 심리를 스크린과 텍스트 바깥에서 한번 더 드러내는 것 역시 두 사람의 죽음이다. 팀장과 소희는 놓인 위치도 처한 상황도 전혀 다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 가깝기도 하다. 공간적으로만 보자면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에, 높은 위치에 놓여 있고, 인지적 경험도 많았을 팀장이 견딜 수 없었다는 뜻은 소희가 견뎌야 했을 모든 감정적 상황적 무게를 배가하기 때문이다. 과연 소희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이는 영화가 최소한의 여백을 남겨두고 진아와 수진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던 홍성은 감독의 자세보다 조금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처럼 보이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음 소희'라는 영화의 타이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물리적인 자리 자체가 사라지거나, 그 자리의 권익이 더 나아지지 않는 이상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될 '다음 소희'가 나오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뜻 하나와 이대로라면 그 마지막을 소희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다음 소희'가 다시 나오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로 또 하나다. 어느 쪽이든 암담한 마음이 되고 마는 것을 감출 길이 없지만 말이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05.
영화의 처음 자리에서 소희는 그저 춤을 좋아하는 밝고 명랑한 소녀였다. 홀로 쉬지 않고 연습한 춤을 면접을 위해 차려입은 치마에 구두까지 신고 흙바닥 위에서 추는 모습이 해맑은 소녀일 뿐이었다. 해결되지 못한 채로 일련의 사건이 지나간 뒤에, 영화의 끝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다시 한번 놓이게 되는 그 모습이 커다란 슬픔이 되는 이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투영하던 연습실의 거울과 달리 사회가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과 태도는 왜곡되어 있기만 했으니까. 같은 연습실의 거울을 바라보던, 같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같은 못자리의 윤슬을 바라보던 유진이 그런 소희의 영상을 바라보며 맺음이 지어지는 것에도 영화는 짙은 의미를 안긴다.

콜센터는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래서 직원들은 불행하다. 학교도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래서 학생들도 불행하다. 콜센터의 사무실 한 편에도 숫자로 평가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학교 교무실의 한 편에도 숫자로 평가된 학교들의 이름이 줄을 서 있다. 그래서 모두가 불행하다. 다음 소희는 그렇게 태어난다.
영화 다음소희 배두나 김시은 정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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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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