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은 어떤 배우인가. 적잖은 영화팬이 기억하는 케이트 블란쳇의 처음은 우아하고 경이로운 요정이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압도적 규모와 기술력으로 한국의 영화팬마저 납득시킨 대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그녀는 품격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호주 연극계가 배출한 걸출한 신예에서 일약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그녀는 2004년 하워드 휴즈의 실화를 그린 <에비에이터>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마블 영화 <토르3>에선 죽음의 여신 헬라를 맡아 몰락하는 작품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는 품격을 보였다.
 
잘 조율된 진지함과 우아함, 현실감을 갖춘 이 배우는 신작 <타르>로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 <캐롤> 이후 또 한 차례 놓친 오스카를 다시금 노려볼 기회를 얻었다.
 
타르 포스터

▲ 타르 포스터 ⓒ 유니버설 픽쳐스

 
케이트 블란쳇이 누구인가 알고 싶다면
 
<타르>는 이제껏 그녀가 출연한 어느 영화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맡아 연기한 그녀는 정점에 있던 타르의 몰락과 극복까지를 섬세하며 열정적으로 표현한다. 남자 못지않은 큰 체구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 길고 단단한 인상이며 다채로운 표정, 분명하면서도 특생 있는 억양까지가 있는 그대로 타르라는 한 인간을 이룬다.
 
영화의 여러 순간들 가운데 꼭 한 장면을 짚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10분가량에 이르는 롱테이크신이 바로 그 장면이다.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이자 유수 해외 평론에서도 상세히 언급되곤 하는 이 장면은 따로 떼어 언급할 가치가 충분하다.
 
타르는 줄리아드 음대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에 나선다. 지휘를 전공하는 학생이 단상 위에 올라 있고 타르가 그의 지휘를 멈춘다. 그리고는 묻는다. 줄리아드에 오기로 했다면, 거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몇 차례 오가는 대화 가운데 그녀는 학생에게 마음에 둔 음악가가 있느냐 묻는다. 그가 사라 장, 그러니까 장영주라 말하자 보다 전격적인, 곡 전체를 책임지는 지휘자며 작곡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타르 스틸컷

▲ 타르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예술가의 삶은 작품과 함께 고려돼야 하는가
 
학생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거부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유색인종이자 모든 성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판젠더라며, 백인이며 가부장제의 상징적 인물인 바흐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는 스무 명의 아이를 두었고 그 양육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르는 그를 피아노 앞에 앉히고 그에게 바흐의 짧은 곡을 들려준다. 그 경쾌함과 명랑함은 그저 인종과 성적 정체성에 얽매인 것이 아니기에 학생에게 기준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음을 일깨우려 하는 것이다. 구분을 생각할수록 세계관이며 가치관, 사고의 폭이 좁아들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지휘대 앞에 섰을 때 지휘의 기술과 곡의 해석을 넘어 또 다른 잣대로 평가받는 것이 부당할 수 있음을 일깨우려는 노력은,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화는 10분 정도 되는 이 롱테이크신을 통해 수사학과 아이러니한 유머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로부터 이 영화가 서사 그 자체의 진행보다도 타르라는 한 개인을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쓰였음을 선언한다. 더없이 이성적이고 열린 자세를 견지하던 타르가 어떻게 무너지고 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지를, 영화가 차분히 풀어내려 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을 두고 예술가의 행적과 연계하여 평가해야 하느냐는 논의는 그 뿌리가 몹시 깊다. 영화에선 김기덕과 로만 폴란스키 같은 이들이 그 사례가 될 수 있고 문학에선 수많은 친일작가며 월북 작가의 사례가 있다. 성범죄며 음주운전 그밖에 각종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과 작가들의 작품을 두고 작품 그대로 소비하는 게 합당한가를 묻는다면 사람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답이 나올 것이다.
  
타르 스틸컷

▲ 타르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타르, 어느 지휘자의 삶을 파고들다
 
분명한 건 적어도 창작자이며 작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배제하는 것이 그 자신의 세계를 좁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타르가 말했듯 작가는 누구나 저 자신의 이력이 아닌 작품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또한 가치 있는 작품은 작가의 이력이며 태도를 넘어 저만의 생명력을 얻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의 아름다움에 달한 작품을 굳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작가의 배경과 엮어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케이트 블란쳇은 저 자신이 배역의 옷을 입는 데 특화된 배우란 세간의 평가대로 있는 그대로 타르가 되었다. 그로부터 보는 이를 설득하는 연기를 펼친다. 온갖 구분을 넘어 자유롭게 사고하고 온갖 자극을 받아들이려는 섬세하고 열린 예술가의 모습을 보이고, 또 한 편으론 제 말과 달리 평범한 유혹이며 욕구, 압력에 무너지는 나약한 인간으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타르>는 케이트 블란쳇이 어떤 배우인가를 다면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 열려 있는 타르의 태도가 곧 케이트 블란쳇의 태도와도 다르지 않게 보이는 건 오랫동안 그녀가 보여 왔던 연기에 대한 자세 때문일 테다. 더없이 진지하고 섬세하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타르 스틸컷

▲ 타르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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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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