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도망치지마, 도망치지마, 도망치지마.'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JTBC <대행사> 아인(이보영)은 무척이나 당당한 여성이다. 똑 부러지고,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남성 중심의 회사 문화 속에서 정공법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드라마에서 최 상무(조성하)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의 남성들은 학연, 접대, 사적인 연결 등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 아인을 공격하지만, 아인은 매번 실력과 노력으로 이들을 이긴다. 마치 첫 회 자신이 발표한 광고 속 카피 "내 한계를 왜 지들이 정해?"라는 문구를 직접 실천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런 아인은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여성처럼 보인다.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 안정되고 행복한 법이다. 이에 따르면 분명 아인은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인은 그 반대다.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거머쥐었으면서도 늘 불안해하며, 공황발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정신과 약물에 의지해 이런 증상들을 조절해야 간신히 잠들 수 있다. 그토록 당당한 그녀에게 행복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자기 자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아인은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 아인의 마음을 탐구해봤다.
  
 부모도 없이 자란 지방대 출신의 여성 아인이 대기업 임원이 된 성공스토리는 회사의 홍보포인트가 된다.

부모도 없이 자란 지방대 출신의 여성 아인이 대기업 임원이 된 성공스토리는 회사의 홍보포인트가 된다. ⓒ JTBC

 
그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아인은 스스로 말하듯 부모 없이 자란 지방대 출신의 여성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자였고, 어머니는 이런 남편을 피해 어린 아인 곁을 떠났으니 부모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인은 고모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목숨을 유지하지만, 늘 결핍감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자란다. 회상 장면으로 추측하건데 고모는 아인에게 최소한의 생존만 보장해주고, 다른 부분은 자신의 딸과 비교하며 오히려 아인의 성장을 방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성장을 방해받을 때마다 어린 아인은 "도망치지마"라고 되뇐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공부'였다.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공부만 하는(4회) 아인은 아마도 '공부'를 잘해 '성공'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인은 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와 '성공'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이는 우리 사회가 능력 있고 성공한 자들에게 베푸는 호의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인이 본 세상은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을 테다. 한국 사회에서 '강한 자'란 공부를 잘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자들이다. 때문에 아인은 어렸을 때는 공부에 매달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성공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에 자기 자신을 건다. "남들만큼 대접받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10회)고 믿으며, 이것이 '나답게' 사는 법이라고 생각한다(아인은 드라마 속에서 종종 "나답게 일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토록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말이다.
 
정말 원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아인이 원하는 삶이었을까? 4회 방영된 고등학교 시절 아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구를 매몰차게 대한 뒤 이렇게 생각한다.
 
'친해지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언젠가 버리고 떠날까 봐 불안해하지 않을까.'
 
이는 아인이 '공부' 나 '일'을 진정으로 원했기보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애착 대상이었던 어머니가 갑작스레 자신을 떠난 경험은 아인에게 '버림받음'에 대해 지극한 불안을 품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인은 이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친해지지 않으면 버림받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아인에게 공부는 '강한 자'가 되기 위한 생존 수단인 동시에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아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일'로 무장한 채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나는 이런 아인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성공'이 아니라 '버림받지 않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욕구가 너무나 간절할 때 때로는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생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맞닥뜨리기 힘들어 지레 피해버리기도 한다. 결국 아인은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기에 오히려 이를 외면하고 성공에 집착해왔던 것이다. '도망치지 마'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아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정말 원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셈이다.
  
 아인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아인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 JTBC

 
포기할 때 진짜 내가 된다

그렇다면 아인이 행복해지려면,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삶의 전부라 여겨왔던 성공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용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인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수진(신수정)은 아인에게 이를 상기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아인을 둘러싼 환경은 이런 성찰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사람들은 아인이 성취해냈을 때 찬사를 보내고, 불행한 과거를 딛고 대기업 임원이 된 성공담은 그녀를 유명인으로 만든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세속적 성공'이라고 쉽게 착각하게 만든다.

심지어 11회 왕회장 근철(전국환)은 아인을 불러 후계자 경쟁중인 한수(조복래)와 한나(손나은)에게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키워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몰아세워서라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매우 위험한 가치의 설파였다.
 
나는 똑똑한 아인이 이런 사회적 압력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왜 일과 성공을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질문해보았으면 한다. 대행사 임원으로서 아인은 늘 광고를 의뢰한 광고주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쓰며 일한다. 광고주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품었던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다면 한다. 이를 통해 내가 지금까지 집착해온 것들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에서 왔음을, 이에 동조함으로 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이를 알아차린 후에는 진정한 삶이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삶임을 실천해보았으면 한다. 아인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버림받지 않고 사랑받는 것'이라면, 일을 핑계로 사람들과 거리를 둘 게 아니라, 함께 일하며 느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일의 성과에만 집착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일하는 과정 중에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을 수용하며 사람들과 함께 할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아인에겐 이런 아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 아인의 팀원들은 아인이 거절해도 끊임없이 '함께 하자'고 다가간다. 아인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마 아인이 이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을 때, 강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성공해서 강해지려는 가짜 욕망을 포기하고 '진짜 욕망'을 추구하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인이 정말 원하는 건 버림받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일테다.

아인이 정말 원하는 건 버림받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일테다. ⓒ JTBC

 
주체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 아인처럼 어디서든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주체적'이라 여길 것 같다. 하지만, 진실로 주체적인 삶이란 자기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고 실천하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삶일 테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종종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의 고통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때는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답을 얻는다면, 그건 그냥 포기하면 된다. 그런 것으로부터는 도망쳐도 괜찮다. 포기함으로써 더 주체적인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드라마의 말미쯤엔 아인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면 정말 좋겠다.
 
'도망쳐도 괜찮아. 포기해도 괜찮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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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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