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보도전문 채널인 YTN은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이해 < YTN 탐사보고서 기록 > '공백-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록' 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지난해 10월 29일 10시 15분부터 이태원 참사 타임라인을 구성하고 유가족과 전문가의 의견을 담았다.

어떻게 이태원 참사 100일에 대한 다큐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지난 8일 서울 상암 YTN 사옥에서 '공백-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록' 편을 제작한 시철우 촬영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시 촬영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유가족분들의 목소리 다 못 담아 안타까워"
 
 시철우 YTN 촬영기자

시철우 YTN 촬영기자 ⓒ 이영광

 
- 지난 4일 방송된 < YTN 탐사보고서 기록 > '공백-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록' 편 제작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취재했는데 모든 걸 방송 분량 안에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쉬운 게 더 많죠. 특히나 우리 유가족분들의 목소리나 상황 등을 많이 들어서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100일의 기록 안에 모두를 다 녹여내지 못 해서 그게 가장 안타깝고 미안하죠."

- 촬영 기자시잖아요, 촬영 기자가 다큐 제작하는 게 YTN에서는 흔한 일인가요?
"촬영 기자들이 장편(다큐) 제작하는 일들이 있긴 있었죠. 흔한 일은 아니고요. 그러니까 영상 취재 2부나 1부에서 특집물로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에 글 구성 부분을 담당한 적은 별로 없죠."

- 그럼, 처음이에요?
"사실 <탐사보고서 기록> 전체적으로 키를 잡고 간 거는 처음이죠. 왜냐하면 거기는 취재 기자 고한석 팀장 김웅래 기자 그리고 우리 한동오 기자 신지원 기자 등등이 있었고 그분들이 취재 글 구성 등을 했었거든요. 사실 그게 또 우리 회사에 있는 영상 기획팀이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서 기자님도 예전에 보셨지만 <인터뷰> <사공시> 이런 프로그램들은 촬영 기자가 구성하고 글도 쓰고 직접 취재도 하고 한 경험들은 있죠. 하지만 <탐사보고서 기록>을 촬영 기자가 키가 돼서 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 인터뷰는 계속 해 온 거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체적인 구성을 해야잖아요.
"키를 쥐고 갈 수는 있지만 저희 팀장님이 제가 제일 믿고 있는 신호 선배고 저와 또 인연이 깊잖아요. 이 팀에 오면서 신호 팀장님과 같이 왔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배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선배가 키를 저한테 주셨지만 제가 구성안을 작성하고 선배가 데스킹 해 주시는 과정에서 저는 선배 의견 적극 반영하겠다고 얘기했었고요. 또 그사이 사이에 도움 받을 수 있었던 제작진들이 있었어요. <탐사보고서 기록>을 2년 동안 만들었던 김종필 PD 또 지난 '로스트 미얀마' 편을 함께 제작했던 서다예 리서처, 거기에 우리 회사에서 가장 데스킹을 잘한다는 신호 팀장이 계셨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됐었고요. 오히려 조금 부담스러웠던 건 더 많이 취재하고 더 팩트를 제대로 담아야 되고 분석을 잘 해내야 된다는 게 탐사 취재니까 그런 부분들이 좀 부담스럽긴 했죠."

- 이태원 참사 100일에 대한 다큐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탐사보고서 기록>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사회적 약자나 인권 사각지대 분들의 이야기들을 집중 조명 했어요. 이 아이덴티티를 이어가야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속보가 쏟아지는 시기였는데 이때 이걸 우리가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10.29 이태원 참사를 새롭게 제작하는 2기 <탐사보고서 기록> 팀이 제작해야 될 주제로 만들게 됐습니다."

- 처음에 뭐부터 하셨어요?
"우리가 유가족분들을 만나야 되는데 11월 29일은 유가족협의회가 창립되기 전이에요. 유가족들이 모임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행정안전부에서 연락처 없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모임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부 유가족분들이 민변과 시민단체들을 통해서 연석회의를 열었고 어떤 도우미 활동을 하겠다고 해서 시민단체 전부 모여서 기자회견을 했죠. 민변에 연락을 먼저 취했고 그것과 동시에 저희는 공부가 부족하니까 타사나 우리 회사에서 어떤 방향으로 보도했는지 전부 다 모니터링하기 시작해서 쏟아진 기사의 거의 대부분을 다 봤고 타임라인을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에 부합하는지 팩트체크 하기 시작했습니다."

- 다른 방송에서 이태원 참사 다룬 게 있어서 어떻게 다르게 할지가 고민이었을 것 같은데.
"워낙 기사들이 많이 나왔고 제대로 된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이미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들어가기 전에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가 꾸려지고 거기에서 각 의원실이 각 기관에 자료를 요청했고 그런 자료들을 받아서 뉴스 만들고 방송하는 팀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뒤늦게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그러나 저희는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유가족이 직접 묻고 전문가들이 대답하는 형태로 한번 구성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유가족이 이때 어떤 부분이 이렇게 됐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걸 팩트와 전문가들의 의견들로 함께 구성해보자는 게 첫 번째 계획이었어요. 그러면서 시민단체 쪽하고 연계를 지어서 각계 이 참사 관련해서 전문가들이 되게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 만나보자는 거죠."

- 모두 만나려면 많지 않나요?
"그런데 다른 곳과 좀 차별화하고 아니면 제대로 우리가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만나서 많이 들어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사회적 재난 참사 조사위원회 분도 만났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대구 지하철, 삼풍, 제천 화재,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이런 참사들을 기록해 왔던 분들 거기에 있었던 분들 그리고 각계 교수님들, 현장 출동했던 구급대원 그리고 당일 현장에 DMAT(재난의료지원팀) 파견됐던 의사 선생님들, 시민단체 등을 모두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그분들이 만나주시고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하면서 흔쾌히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사이에 교수님들을 만나면서 공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됐어요."

- 공백이요?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소장인 최희천 교수님이 처음 공백을 언급하셨고 인터뷰 끝나고 나서 공백 너무 좋으니 우리가 이걸 키워드로 한번 가져가 보겠다고 얘기해서 그 이후에 만난 분들에게 어떤 데에서 공백이 발생했는지를 공통 질문으로 하게 됐어요."

"이태원 참사 만든 '공백'... 제작하는 내내 울었다"
 
 <YTN 탐사보고서 기록>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YTN

 
- 뭐가 가장 큰 공백일까요?
"저는 일단 약속의 공백이라고 생각해요. 예방 대비 과정에서의 공백인데 그거는 이미 드러난 자료들에 다 나와요. 사실 구청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안전 관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구청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회의 주재도 부구청장이었어요. 사실 구청장은 그 지자체에 관할하고 있는 소방, 경찰 모두와 함께 회의하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안전하게 가져갈지 항상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어요.

두 번째 경찰도 약속했었죠. 용산경찰서가 펴낸 보도 자료에 따르면 10만 인파가 운집할 가능성이 높고 인파 사고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분명히 드러났고 거기에 기동대를 투입해서 경찰복 입은 경비 인력을 인파 관리에 쓰겠다고 약속해놨었어요. 하지만 그게 없었어요. 우리가 분석해놓은 그래프에 나오는데 2021년도에는 85명 2022년에 137명의 경찰 경력을 투입했다 하면서 2022년에 더 증가됐다고 얘기를 했잖아요. 근데 그건 숫자를 장난친 거예요. 사실 2021년에는 용산서와 지원받은 경찰 인력이 85명이었고 2022년에는 137명이었지만, 정복을 입은 경비력이 2021년에는 85명 중에 교통경찰 17명 이태원 파출소 31명 그리고 거기에 플러스 기동대 3개 중대가 파견됐었어요. 그래서 228명이에요. 2022년에는 이 기동대가 빠져버린 거죠."

- 참사 2주 전 같은 장소에서 지구촌 축제가 있었죠, 그땐 더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아무 일 없었고 핼로윈 때는 참사가 났죠. 차이가 뭘까요?
"그때 그게 지금까지 주체가 없는 행사라는 게 가장 큰데 사실 그 주체가 없는 행사더라도 저희가 처음에는 구성안에 법률도 다 담았었어요. 헌법 그리고 재난안전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많이 담았었는데 그걸 다 뺀 게 이미 다 많이 보도됐고 주체가 없었다고 하는 부분만 남겨놓고 보자 하지만 주체가 없더라도 신고가 들어와요. 신고가 들어오면 이걸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현장에서 분명히 인파 사고를 계속 경고를 했거든요. 그러면 참사가 10시 15분에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9시, 10시 사이에도 어마어마한 신고가 들어왔어요. 그때는 이미 삼각지 용산에서 집회가 다 끝난 다음이거든요. 그럼, 기동대를 보내든지 아니면 인파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시간에 용산구청장은 귀갓길을 통해서 집으로 갔고 이임재 전 용산서장은 밥을 먹고 있었고 김광호 서울청장은 퇴근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일찍 잠들었다고 하니 아무도 모르고 있었죠. 행정안전부 장관도 집에 있었고 이게 말이 안 되는 거고요."

-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너무 늦게 가동한 것 같은데.
"그건 팩트입니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바꾼 대통령 훈령 388조를 보면 재난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실이라고 나와 있어요. 청와대와 국가위기관리센터라는 게 나와 있어요. 근데 그게 준용이 됐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됐어야 되는데 사실 업무 분장을 달리하면서 이번 정부는 그게 아니라고 해요. 우리가 국가 위기관리 표준 관리 매뉴얼을 전수 조사를 했어요. 2022년 8월 전에 작성된 서류들에는 모두 다 체계도에서 대통령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가 나와요.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나와요.

그런데 2022년 8월에 그게 바뀌어요. 근데 이거는 그쪽에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일 수 있지만 이것을 바꿔놓은 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행정안전부가 재난 컨트롤 타워고 서울시가 재난 컨트롤 타워고 지자체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돼야 되는 건 맞아요. 이건 법상 규정된 거니까. 그러나 인지의 시점이 뒤로 미뤄지면서 보고가 잘 안 된 거죠. 부서 간 부처 간 횡적 종적 소통이 그냥 멈추면서 공백 상태가 되면서 참사 발생 한 시간 이후에 주요 인사들이 다 알게 되는 거예요. 그게 말이 안 된다. 그사이에 어떤 자원이 어떻게 투입됐는지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 고민을 한 거고 국가의 어떤 재난을 관리해야 될 컨트롤 타워들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이번 참사가 커진 커다란 이유죠."

- 유가족 만나셨는데 어땠나요?
"사실 제작하는 내내 울었어요. 인터뷰와 현장의 그림을 계속 봐야 했기 때문에요. 그걸 듣는 자체가 고통스러웠어요. 너무너무 커다란 슬픔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달해 드리는 거라로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아쉬운 것 중에 하나죠. 그래서 저희는 이 기록을 여기서 끝내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이 참사가 해결되는지 복구가 되는지 치유가 되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사회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되는지를 계속 기록할 거고 그런 의미로 유해정 인권 활동가와 오랫동안 인터뷰를 했고 그분들과 함께 계속 10.29 이태원 참사를 계속 기록해야죠."

- 제작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누군가가 기록하고 전달하지 않고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아이의 아빠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힘은 없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들을 멈추지 않고 해야 되겠다라는 소명이 더 크게 느껴졌고요. 나이가 50 가까이 돼서 새로운 도전을 또 하게 되는 거지만 우리 팀원들과 함께 이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주제들까지 계속 기록하면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 안전한 사회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북의소리'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