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가면 사기>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가면 사기> 포스터. ⓒ 넷플릭스

 
'전기통신금융사기'라는 법적 용어로 통일한, 통상적으로 '보이스피싱'으로 불리는 통신매체금융사기는 어느새 가장 경계해야 하는 범죄로 성장(?)했다. 피해건수와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까닭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에 비할 데 없이 급증했다. 또한 수법도 다양해져서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여기, 보이스피싱 하나로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사기를 이룩한 범죄자가 있다. 이스라엘계 프랑스인 '질베르 시클린', 그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사기로 1억 유로 이상을 횡령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1천억 원 이상이니 웬만한 중견 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는 수치다. 수백 수천 명이 1년 동안 피땀 흘려 이룩한 일의 결과와 그가 혼자 저지른 사기의 절대적 결과가 같은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파렴치하다고 해야 할지, 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지극히 단편적으로 기사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가면 사기: 세기의 보이스피싱>이 자세히 소개한다. 질베르 시클린은 누구이고, 무슨 짓을 어떻게 저질렀으며, 그는 왜 그랬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전반적인 답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탄생하기까지

질베르 시클린은 프랑스 파리의 작은 마을 벨빌(프랑스 음악의 한 시대를 정의한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함)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무척 가난했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질베르는 꽤 똑똑한 편이었고 집착도 있었으며 가족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욕망이 넘쳐났다. 그렇게 괴물이 탄생할 토양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질베르가 스무 살 때 과대 광고를 일삼는 회사에 다니던 셜리와 만났는데, 그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유럽에도 테러의 공포가 불어닥쳤는데 질베르와 셜리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자 마음을 먹는다. 극비로 대테러 작업을 하는 기관의 수장인 양, 증시에 상장된 모든 프랑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재무팀 담당자와 극비 통화를 하되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곁들여 테러납치범에게 잡힌 이들을 풀어줄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피해자들로서는 질베르의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의 말투와 분위기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친근했다, 최소한의 믿음이 가는 것이었다. 보안 회선이라며 극비를 요한다고 하니 외부에 알리기가 저어되었다. 테러의 위협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으니 테러와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전화를 걸어온 이가 피해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 역시 두려웠다. 거기에 시간이 없으니 빨리 보내라고 닦달하면 미심쩍긴 해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돈을 보내지 않고는 못 배겼던 것이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범죄 아닌 예술이라는데

질베르는 사기를 침에 있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꼴에 부자에게서 돈을 갈취해 못사는 이들을 돕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의도였다는 걸 질베르 본인이 아닌 셜리에게서 엿들었을 뿐 직접적으로 행한 바를 본 적이 없으니, 로빈 후드이니 아르센 뤼팽이니 하는 것들은 다 허황된 이미지로 보일 뿐이다.

정작 질베르 본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보이스피싱 사기가 범죄 아닌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에겐 아무것도 없이 그저 말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돈을 갈취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예술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행위 자체가 '예술적'이라는 점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와, 예술이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행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행위 앞에 '범죄'가 붙으면 그저 예술적 범죄 행위일 뿐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질베르라는 사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그는 도망 다니면서도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다. 물론 상황과 사람을 재빨리 파악하곤 자신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는 데 가히 신들린 능력을 자랑한다.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타고난 사기꾼인데 그 재능이 다른 곳으로 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매력적인 사기꾼의 '현혹'이란

매력적인 사기꾼의 이야기는 종종 우리를 찾아와 재미를 선사한다. 실망시키지 않는데, 당장 생각나는 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드라마 <애나 만들기>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미국에서 기발하고 대담한 발상으로 가히 천재적인 사기를 수없이 저절렀던 '프랭크 아비그네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애나 만들기>는 2010년대 자신을 독일 백만장자의 상속녀라고 속이며 미국 뉴욕 사교계에 나타나 투자 사기를 친 '애나 델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두 작품 속 주인공은 실제로도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걸 주무기로 삼아 그야말로 손쉽게 사기를 쳤다. 질베르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마따라 목소리 하나로 1000억 원이 넘는 사기를 치지 않았는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또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으면 그랬을까? 더군다나 사기꾼이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면, 피해자로선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맞춘 가면을 쓰고 정부 고위층 흉내를 낸 질베르, 꼬리도 길었지만 자만에 빠졌던 것 같다. 그는 잡혔지만 그가 허리케인처럼 휩쓸고 간 곳엔 비단 돈 피해만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거나 크게 흔들린 피해자도 있고, 그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이들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했지만, 전혀 진실되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이 거대한 사건에서 그 혼자만 승리(?)한 셈인데, 피해자들이 부디 본래의 삶을 되찾고 자신만의 길을 갔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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