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의학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성씨가 있다. 허준의 성인 허씨와 함께, 유씨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배우 전광렬이 허준을 연기한 1999년 MBC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된 배역은 배우 이순재가 연기한 유의태다. 배우 김주혁이 허준으로 나온 2013년 MBC <구암 허준>에서도 유의태가 스승으로 설정됐다.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 백윤식이 유의태를 연기했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관련 이미지.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관련 이미지. ⓒ tvN

 
실제 역사 속 유씨 의사의 정체

지난 9일 시즌 2가 종료된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에서는 배우 김민재가 본명은 유세엽이고 별명은 유세풍인 배역을 연기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유씨 성이 메디컬 사극의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렇게 유씨가 자주 나오는 데는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었다는 관념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인들이 최고의 조선시대 의료인으로 평가하는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였다는 인식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라는 이야기는 1965년에 한의학자 노정우의 글에서 나왔다. 노정우는 박우사가 펴낸 <인물한국사>에서 허준의 할머니가 경상도 진주 출신의 유씨이고 할아버지가 경상도에서 관직을 지낸 점을 근거로, 허준이 진주와 인접한 산청군에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산청에 유의태라는 명의가 있었으므로 그가 허준의 스승이었을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노정우의 주장은 근거가 약했다. 허준의 조부모는 경상도와 인연이 깊었지만, 그의 부모는 다른 지역과 인연이 있었다. 어머니는 전라도 담양과 연고가 있었고, 아버지는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인 경기도 양천과 연고가 있었다. 경기도 파주도 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다. 조부모의 연고지보다 부모의 연고지가 자녀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노정우의 글은 문학작품들의 지지를 받았다. 오늘날의 드라마나 소설에서 유의태를 허준의 스승으로 당연하게 설정하는 것은 '사실의 힘'이기보다는 '문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의태(柳義泰)와 이름이 비슷한 유이태(劉以泰)라는 의사가 조선시대에 명성을 떨쳤던 것은 사실이다. 1652년에 지금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외가가 있는 산청군으로 이주해 의료 활동을 펼친 인물이 있었다. 그가 전국적 명성이 있었다는 점은 당시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력으로 숙종 39년 12월 16일자(양력 1714년 1월 31일자) <숙종실록>은 "영남 의원인 유의태는 내국(內局)이 재촉하는데도 전주까지 와서 병을 핑계대며 오지 않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 거드름을 피우며 편의만 도모했으니 중전(重典)에 처해야 합니다"라는 사헌부(검찰청)의 건의를 소개한다.
 
53세 된 숙종의 건강이 열흘 전부터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내의원이 불렀는데도 유이태는 한양으로 가다가 도중에 귀가했다. 그래서 중한 법률로 처벌해야 한다는 게 사헌부의 주장이었다.
 
바로 그 유이태로 보이는 인물이 영조 1년 5월 28일자(1725년 7월 8일자) <승정원일기>에도 등장한다. 비서실 업무일지인 이 문헌은 내의원 도제조를 겸하는 좌의정 민진원이 현기증으로 고생하는 31세의 영조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민진원은 "유이태는 영남의 명의인데, 황률이 현기증 치료에 가장 좋다고 항상 말했습니다"라며 "잡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유이태를 명의로 거론하면서 현기증 치료에 말린 밤이 좋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영조는 "당연히 먹어봐야지"라고 대답했다.
 
거창 유씨 족보를 인용한 역사학자 김호의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에 따르면, 유이태는 1715년 4월 1일 사망했고 무덤은 경상도 산청에 조성됐다. 영조와 민진원의 대화는 유이태 사후 10년 뒤에 있었던 것이다. 죽은 뒤에도 조정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장면은 유이태의 명성을 짐작케 해준다.
 
고증의 오류

그렇지만 그 유이태가 허준의 스승이 될 수는 없었다. <동의보감> 저자인 허준은 1615년에 사망했고, 유이태는 1652년에 태어났다. 부실한 고증과 문학작품의 영향이 두 사람을 사제지간으로 이어주게 됐던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고증을 기초로 소설과 드라마가 나왔다면, 허준에 관한 소설과 드라마에서 허씨와 함께 자주 거론됐을 성씨가 있다. 양씨나 안씨가 그에 해당한다.
 
허준보다 약간 앞선 시대를 풍미했던 의원들은 양예수와 안덕수다. 광해군의 측근이자 저명한 학자인 어우당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두 사람을 선조시대(1567~1608)의 명의로 꼽았다. 이 중에서 양예수는 1539년 생인 허준보다 십 몇 년 정도 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우야담>은 양예수를 강한 약을 써서 효과를 빨리 내는 스타일로, 안덕수를 부드러운 약을 써서 효과를 서서히 내는 스타일로 소개했다. 당대 사람들은 안전한 방법을 쓰는 안덕수를 보다 더 선호했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드라마 속의 유세풍은 의과뿐 아니라 문과 과거시험에서도 급제했다. 여러 단계의 문과 시험에서 연달아 장원급제를 했다. 양예수 역시 의학뿐 아니라 다른 학문에도 소질이 있었다.
 
양예수는 드라마 속의 유세풍과 치료 스타일은 달랐지만, 문과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우야담>은 어린 시절의 양예수가 당대의 저명한 문인인 호음 정사룡을 만난 일을 이렇게 소개한다.
 
"어린 시절 정호음을 숙직하는 곳에서 만났는데, 호음이 <양절반씨역대론>을 읽고 있다가 그에게 '너도 학문에 뜻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읽고 있던 논(論)을 가르쳐준 뒤 책을 치우고 암송하도록 했다. 양예수가 입으로 줄줄 외우는데, 편(編)이 끝날 때까지 틀리는 곳이 없었다."
 
허준이 의원으로 성장할 당시에 유이태가 아닌 양예수·안덕수가 저명했던 사실을 토대로 소설이나 드라마가 창작됐다면, 이 둘 중 하나가 <허준>이나 <구암 허준>에 등장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의학 사극에 자주 나오는 성이 유씨가 아닌 양씨나 안씨가 돼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제목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조선 정신과 의사 양세풍>이나 <조선 정신과 의사 안세풍>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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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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