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돌핀 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돌핀 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포스터. ⓒ 넷플릭스

 
2015년 3월 7일, 스페인의 팔마 데 마로르카 공항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세계적인 동물보호운동가이자 돌고래 조련사로 유명한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가 자신의 차량에서 죽어 있었던 것이다. 경찰 당국은 정황상 자살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사인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미국 애틀란타의 조지아 수족관 부관장으로 채용되어 경력의 황혼기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같은 해 2월경 TV에 방영된 충격적인 영상으로 논란이 된 후 오래지 않아 실종되었고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문제의 영상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바르베로가 돌고래들을 학대하는 영상으로, 그가 돌고래에게 욕하고 때리고 발길질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SNS는 그를 향한 온갖 욕설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바르베로는 즉각 반발하며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영상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제의 영상을 올린 측에서 두 번째 영상을 올리겠다고 했고, 그 영상이 올라가기 직전 바르베로가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바르베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다. 유추해 볼 순 있겠다. 40년 가까이 누구보다 돌고래를 아끼고 사랑하며 돌고래 조련사로 일해 최고의 명성을 일궜으나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짙은 의혹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르베로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먼 나라 스페인의 어느 유명인, 사건도 사건이지만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의 영상 하나로 단편적으로 엿보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접근이 이 사건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는 방법이겠다.

최고의 돌고래 조련사에서 돌고래 학대범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돌핀 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자못 촌스럽고 직설적인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스페인의 세계적인 돌고래 조련사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들여다봤다. 바르베로가 돌고래를 학대하는 90여 초짜리 문제의 영상이 TV에서 방영된 후 한 달여가 지난 후 실종되고 이어서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 말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사건보다 염두에 둔 건 바르베로의 돌고래 조련사로서의 삶이다. 제목처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보다 그가 돌고래 조련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 방식이 이 사건을 보다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환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작품을 보면 그 방식이, 사건의 당사자 바르베로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르베로는 누구일까, 어떤 삶을 살았나. 우선 그의 어린 시절을 엿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 때 엄마를 잃고 할머니와 이모의 품에서 키워졌는데 10대 초반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재혼한 아빠에게 가야 했다. 누구한테든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각별한 사연으로, 바르베로의 성격을 형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겠다. 그렇다, 바르베로는 과도하게 열정적이었다.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는 누구인가

작품은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가 실종되어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의 2015년 3월 현재와 세계적인 돌고래 조련사로 성장해 가는 예전을 번갈아 보여 주며, 할 수 있는 한 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근접하고자 한다. 인터뷰이도 다양한데, 바르베로의 동료와 가족은 물론 그를 파멸로 이끈 문제의 동영상을 찍고 유포한 이들도 모두 나와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바를 여과없이 내보였다. 다만,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이라 할 만한 '아스프로 오시오' 측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스프로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밝히기 전에 바르베로의 성장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다. 그는 1970년대 개장한 스페인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 마린랜드에서 웨이터로 일하다가 돌고래 조련사로 발탁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바르베로는 실력 좋은 선배들한테 배우며 빠르게 성장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묘기를 자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국제해양동물조련사협회, 일명 이마타가 매년 여는 컨퍼런스였다. 전 세계 조련사들의 꿈의 무대.

바르베로는 다른 나라의 조련사들이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묘기를 선보이며 1990년 이마타 컨퍼런스에서 최고의 돌고래 쇼와 최고의 조련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돌고래 조련사로 우뚝 선 것이다. 그는 누구한테든 엄격하기 짝이 없었는데, 덕분에 실력이 급상승하는 후배들도 있었으나 그를 질색하며 싫어하는 후배들도 생겼다. 훗날 사건의 불씨가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스페인 경제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마린랜드가 아스프로 오시오라는 유한책임회사에 팔린다. 그들은 마린랜드를 매입한 후 많은 직원을 자르며 기존과 완전히 다른 정책 기조를 이어갔다. 마린랜드의 간판 바르베로는 더욱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현상도 보되 본질도 봐야 한다

바르베로는 이후 몇 곳의 수족관을 옮겨다녔는데 마요르카에서 또다시 아스프로와 엮기고 말았다. 그는 아스프로와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해고 당할 줄 알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그를 자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스프로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돌고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오직 돈만 버는 데 혈안이 되는 쇼를 구성해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열정적이고 직설적인 바르베로가 문제의 영상 속 행동을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조련사 누군가가 보인 행동이니, 돌고래 쇼와 돌고래 조련사를 향한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하지만 문제의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범 돌고래 조련사 또는 조련 자체가 아닌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 개인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영상을 찍고 배포한 이들의 애초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행동이 벌어진 것인데, 어느 누구 혹은 집단의 100% 잘못이라고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인 것이다. 최대한의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은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프로 오시오에 있다고 봤다.

현상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말이 있는데, 현상도 보되 본질도 봐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현상 속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메인 사건, 즉 호세 루이스 바르베로의 동영상 파문과 실종 그리고 자살(로 추정되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당사자 바르베로의 성향뿐만 아니라 아스프로 오시오의 물질만능주의에 기반한 압박 등이 얽히고설킨 양상을 띠는 것이다.

돌핀 킹,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충분히 알았다. 이제 또 다른 그가 나오지 않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때다. 이 작품이 크게 일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돌핀 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현상 본질 돌고래 조련사 동물보호운동가 돌고래 학대 영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